[아침햇살28]미국의 승인에 목매는 정부, 이것은 숙명인가① | ||||
친미의존으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건 허상일 뿐 | ||||
기사입력: 2019/05/22 [11:2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
많은 이들이 한반도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가로막는 기본 장애물은 미국이다. 미국은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자신들이 결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바라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미국이 한반도에서 자신의 패권을 쉽게 내려놓지 않으리라는 것은 일종의 ‘상수’였으며 충분히 예상 가능한 모습이었다.
그러면 대체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해 세 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 자주와 민족 자결을 이야기하던 그 문재인 정부가 변하기라도 했는가? 왜 미국의 간섭과 압력에 눈치만 보면서 남북관계를 조금도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답답해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1. 미국의 승인에 목매는 문재인 정부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후 문재인 정부에서 제재해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5.24조치 해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하루 만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며 5.24조치 해제 움직임에 쐐기를 박았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승인’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니, 이건 어떻게 해석해도 명백한 내정간섭이며 한국의 주권을 완전히 짓뭉개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침묵했다. 주권국가의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항의를 하지 않았다. 여당도 침묵했다. 아니,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변호하기에 급급했다. 이해식 민주당 대변인은 “한미 간 긴밀한 공조를 강조한 뜻으로 한 말”이라고 포장했고, 송영길 민주당 의원은 “사전에 긴밀히 협의하겠다 같은 표현이 정확하지, 무슨 식민지 총독이 누구한테 승인하듯이 이런 개념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변호하였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대사로서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언급을 피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그 전부터 미국의 승인에 따라 움직여왔다. 2018년 9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대북제재 완화 요구를 간접적으로 내비췄다. 또 10월 13~21일 유럽 순방에서는 더욱 직접적으로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20일, 27일 등 중간선거 유세에서 거듭 북미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속도조절론’을 강조하면서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다. 그러자 문재인 정부는 그 뒤로 더 이상 제재완화를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래도 불안했던 미국은 아예 2018년 11월 20일 대북정책을 하나하나 ‘승인’하기 위한 한미워킹그룹을 출범시켰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미국의 ‘승인’을 ‘공식적으로’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개성공단 기업주들이 시설 확인 차원에서 방북하는 문제까지도 미국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계속 불허하다가 최근에야 ‘승인’을 얻어 허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4월 11일 미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은 ‘승인’ 외교의 정점을 이뤘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볼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 등을 부지런히 만나며 남북정상회담 ‘승인’을 요청했다. 그 결과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또는 남북 접촉을 통해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의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 달라”고 하였다. 남북정상회담을 ‘승인’하면서 동시에 일국의 대통령을 자신의 ‘특사’, 심부름꾼으로 임명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강력한 지지의사를 표명했다”며 “한미정상회담이 큰 성과를 남기고 끝났다”(이해식 민주당 대변인 브리핑. 2019.4.11.)고 높이 평가했다.
물론 문재인 정부가 들고 간 ‘굿 이너프 딜’(북한과 미국의 협상안을 절충한 안)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금은 빅딜을 논의해야 한다”는 발언에 무시당했고, 남북관계의 핵심 이슈인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는 “지금은 적절한 때가 아니다”는 말로 ‘금지’되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대북식량지원을 추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는 5월 7일 밤 한미 정상이 전화통화를 통해 대북식량지원을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했다는 것을 곧바로 공개했다. 또 5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과 회담을 하면서 대북식량지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마치 미국의 ‘승인’이 있으니 야당 등은 시비 걸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가 미국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주권국가의 정부가 맞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미국의 ‘승인’만 기다리고, 혹시라도 미국이 ‘승인’을 해주지 않을까봐 쩔쩔매고, 미국의 ‘승인’이 떨어지면 들뜨는 모습에서 국민은 답답함을 넘어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승인’에 목매다는 한심한 현실은 미국의 일개 국장이 와도 장관급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10월 말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한국을 방문하자 이틀 사이에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강경화 외무부장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총출동했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그렇게 대단한 지위일까? 미 국무부의 수장은 장관이고 그 밑에 두 명의 부장관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6명의 차관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 부차관, 차관보, 부차관보, 과장이 있다. 한반도와 관련된 부서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국인데 줄여서 보통 동아태국이라고 한다. 국장은 차관보가 맡는데 국장이지만 한국의 실장급(1급)이다. 동아태차관보 밑에 한국, 일본을 담당하는 동아태부차관보가 있고 그 밑에 한국과장, 한국부과장이 있다.
원래 대북정책은 한국, 일본 담당 동아태부차관보가 맡아왔다. 그러다가 북미협상에 집중할 필요가 생겨서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분리했다. 과거 6자 회담 시절에는 대북정책특별대표가 6자 회담 수석대표를 맡았다. 여기에 올해 9월 북한 담당 부차관보가 추가됐다.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직급은 불분명하지만 보통 부차관보, 즉 한국의 국장급(2급) 정도로 본다. 그러니 비건은 부차관보, 한국의 국장급(한국에는 부차관보가 없다) 정도로 볼 수 있다.
다시 2018년 10월 말로 돌아가보자. 원래 비건 대표의 한국 측 상대는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다. 관례상 상대국을 방문했으니 한 급 높은 차관보 정도, 백번 양보해도 차관 정도나 만날 수 있지 장관, 실장은 어림도 없다. 역으로 이도훈 본부장이 미국을 가서 누구를 만났는가. 제일 높은 사람이 비건이었다.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조차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비건은 이틀 사이에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강경화 외무부장관,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장관,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등을 한 명씩 차례로 만났으니 쉽게 말해 장관급 인물들을 줄 세워 놓고 만난 셈이다.
이처럼 미국 앞에만 서면 문재인 정부의 국가적 자존심은 여지없이 사라지고 만다.
2. 이들의 항변
문재인 정부의 대미 저자세에 대해 사회 각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주적이지 못하다, 민족의 이익을 말하지 못한다, 민족자주와 민족자결의 원칙을 지키지 않는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간다는 것이다. 지난 4월 27일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아 임진각에서 진행한 노동자 자주평화대회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지켜 외세의존 정책과 단호히 결별하고 민족대단결로의 당사자로 나서야” 한다고 경고했다. 4월 30일에는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미국 눈치 그만보고 기업인들의 공장방문을 허가해 줄 것”을 호소했다. 또 4월 25일 판문점선언 1주년 공동학술회의에서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지 말아야 한다’거나 ‘대북제재 틀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여당측 인사들도 적극 항변한다. 안보와 경제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2018년 9월 25일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정에 서명하면서 “한미동맹을 경제영역으로까지 확장하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평화의 가장 든든한 초석은 한미동맹”이며 “이미 우리의 동맹은 위대하다”고도 말했다. 심지어 “한미동맹은 앞으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나아가서는 한반도가 통일이 되더라도 동북아 전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계속해서 존속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고까지 하였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미국에 구애를 한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2018년 11월 26일 아시아경제가 보도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문재인 정부의 한미동맹, 한미공조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는 우려가 들어있다. 미국에게 버림받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문재인 정부가 계승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도 찾을 수 있다. 2003년 5월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굴종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비판에 대해 ‘한신도 무뢰한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고사를 인용해 답했다. 미국에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는 한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이런 입장을 지금 정부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경제 문제에서 미국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잇따른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으로 우여곡절은 있지만 한반도 전쟁 위기가 일정하게 진정된 상황에서 지금 정부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경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정부 지지율의 발목을 잡는 것도 경제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21일 미국에서 열린 금융·경제인과의 대화에서 “한국은 수출주도의 대외경제를 기반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경제파트너입니다”라며 한국 경제 발전에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 발전을 위해 한미관계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미국의 ‘승인’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구한말 경제 이익을 위해서는 일본에 의존해야 한다는 이완용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이런 입장은 정당성도 없고 현실 타당성도 없다. 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3. 주권은 언제나 경제보다 우선한다
한국 사회는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일제강점기가 경제를 발전시켜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공공연히 언급될 정도로 오랜 기간 사대주의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지배층, 기득권층에서 이런 모습이 두드러지며 그런 이유로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면 주권은 일정하게 포기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적극 유포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나라든 주권이 경제보다 우선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경제를 위해 주권을 희생할 게 아니라 주권을 위해 경제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권이야말로 나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제1조에 주권을 명시하였고 경제에 관해서는 제119조부터 규정하였다. 대통령의 책무도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의 수호라고 하였지 경제 발전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권을 포기한 나라는 하나같이 외세의 약탈에 신음하다 몰락하였다. 상식적으로 나라의 주권이 없으면 자기 나라를 위한 정책을 결정할 수도, 집행할 수도 없으며 국민도, 국토도, 국가 재부도 지킬 수 없다. 주권을 포기하면 경제 발전은커녕 국가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18세기 사상가 루소는 ‘주권자가 입법권을 상실했을 때 국가의 멸망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이유도 독도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주권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오늘 독도를 빼앗긴다면 내일은 한국 땅 전체를 빼앗길 것이다.
주권을 포기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주장은 ‘배부른 노예가 되자’는 주장이나,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고 개돼지가 되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일본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과연 경제가 발전해서 국민이 잘 살게 되었나? 아니다. 전 국민이 노예가 되어 개돼지만도 못한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주권은 나라의 생명이고 경제보다 우선한다는 이 당연한 상식이 도전받는 이유가 있다. 한국이 친미의존경제를 해서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됐다는 생각 때문이다. 과연 사실일까?
4. 친미의존경제를 해야 발전한다?
한국은 출발부터 지금까지 친미의존경제의 길을 걸어왔다. 이를 세 가지 시기로 나눠서 살펴보자.
1950년대는 원조경제 시기다. 당시 미국원조는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31%를 차지했으며 미국은 한미합동경제위원회를 통해 이승만 정권의 경제정책에 직접 개입하였고 미국 원조물자는 주한미대사의 감찰 하에 운용되었다. 당시 미국원조의 69.2%는 군사원조였고 경제원조는 29.6%, 기술원조는 1.2%에 불과했다.(『합동연감』, 서울경제신문, 1974.) 미국의 목적은 한국 경제의 발전이 아니라 한국을 미국의 군사기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승만 정권 시기 경제는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차관경제 시기로 볼 수 있으며 한국 경제가 양적으로 팽창한 시기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한국 경제를 팽창시켰을까? 두 가지 요인을 찾아볼 수 있다.
첫째는 혁명예방 차원이다. 이승만 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의 배경에는 심각한 경제 파탄이 있었다. 당시 유명한 “통일만이 살길이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와 같은 통일 구호가 등장한 이유는 경제 파탄을 극복할 대안으로 통일을 꼽았기 때문이다. 당시 파탄 난 한국 경제와 반대로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통해 급격한 경제 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1960년대 북한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부상하였다. 한국 국민이 통일을 경제 활로로 여긴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대로 놔두면 경제적으로 우월한 북한 주도로 통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 미국은 한국 경제를 서둘러 팽창시켜 통일의 기운을 누그러뜨리려고 하였다.
둘째는 미국의 산업재편 차원이다. 1950년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미국에서는 노동자 임금이 오르고 복지, 환경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미국의 자본은 저임금노동력을 찾아 제3세계로 진출했고 특히 낡은 설비, 공해산업을 주로 이전했다. 여기에 한국도 포함된 것이다. 한국에 차관으로 들어온 산업은 주로 화학, 섬유, 정유 등 공해산업, 단순가공업 위주였다. 이렇게 보면 차관경제 시기는 한국 경제가 미국의 대리생산체제, 하청경제체제로 재편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친미의존경제 덕분에 국민의 소득이 늘어나고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국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한 건 노동자 민중의 가열한 투쟁이었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1979년 YH 무역 노동자의 농성, 1980년 사북탄광 노동항쟁, 1985년 구로동맹파업,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끊임없는 피어린 생존권 투쟁으로 민중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였다.
1987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파업 당시 사측은 본사의 사무직 노동자(일명 화이트칼라)들을 울산 공장에 침투시켜 파업을 와해시키려 하였다. 그러나 사측의 지시와 달리 이들은 은근히 노동자들의 파업을 격려하였다. 공장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 사무직 노동자의 임금도 자연히 오르기 때문이다. 당시 노동자의 임금상승률은 경이적이었는데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된 1987년 11.6%에서 이듬해 1988년엔 19.6%, 1989년 25.1%, 1990년 20.2%로 가히 폭발적이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1987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임금이 무려 4배로 올랐다.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자 공무원 사회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역시 은근히 파업을 지지하며 노동자 임금 상승이 공무원 임금에도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했다. 그러자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는 공무원 임금을 국영기업이나 정부투자기관의 9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처럼 국민 전반의 먹는 문제 해결은 노동자 민중의 치열한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지 친미의존경제가 안겨준 것이 아니다.
한편 노동자 임금이 오르면서 소비력도 늘어 상업이 활성화되고 전반 경제에도 활력을 주었다. 재벌은 아무리 돈을 벌어도 국내에서 별로 쓰지 않는다. 해외에 나가 쓰거나 수입 사치품 구입에나 쓸 뿐이다. 2014년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 시장 상인을 먹여 살린 건 노동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먹여 살린 게 아니다.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미국 자본의 직접 침투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도 한국 경제는 빠르게 팽창하였다. 1990년 198조 원이었던 명목 GDP가 2000년에는 635조 원으로, 2010년에는 1265조 원으로 늘어났다. 실질 GDP도 IMF 사태 여파가 있었던 1998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늘었다. 경제규모로는 이제 세계 11위가 되었다. 실제 1997년 자동차등록대수도 1천만 대를 넘어서고 2009년 1700만 대로 1가구 1차량 시대에 돌입, 2016년에는 2천만 대를 넘어 1가구 2차량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경제 총량이 늘어난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친미의존경제의 덕일까?
1990년대 미국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서비스업으로 산업이 전환되면서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하여 전 세계에 시장개방을 압박하였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1992년 주식시장 개방, 1996년 외국환은행 자유화, 1997년 상장채권에 대한 외국인투자 자유화, 1998년 주식 및 단기 금융상품에 대한 외국인투자 자유화와 외국인의 국내기업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등 단계적으로 금융시장을 개방하였다. 동시에 국유산업, 국영기업을 민영화해 주요산업과 기업들을 외국 자본이 손쉽게 사들일 수 있게 하였다. 이를 통해 미국 금융자본은 손쉽게 한국 경제를 약탈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팽창은 ‘우리’ 경제가 성장한 게 아니라 외국 자본이 들어온 결과로 봐야 한다. 예를 들어 2018년 기준 국내 자산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7.07%에 이른다. 2위인 현대차도 44.71%다. 굴지의 철강회사인 포스코는 54.68%다. 은행으로 넘어가면 더 한심하다. 국내 은행 중 자산총액 1위인 KB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은 무려 67.53%다. (외국인 지분율은 모두 2019년 5월 17일 기준)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은행들을 과연 한국의 기업, 은행이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990년대 김영삼 정권이 규제를 풀고 경제를 개방하는 걸 두고 일부 사람들은 경제민주화의 실현이라고 주장했다. 누구나 주식을 사고 기업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 친미화였다.
이렇게 외국 자본으로 경제가 팽창한 결과 국민의 삶은 나아졌을까? 경제적 이익은 미국자본, 친미자본이 다 가져가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였고 전 국민이 취업대란에 시달리고 있다. 다행히 취직을 해도 생존을 위해 투잡(Two Job), 쓰리잡(Three Job)을 뛰고 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 ‘헬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가 친미의존경제로 우리 경제가 좋아졌다, 우리 삶이 좋아졌다고 하는가.
이렇게 3단계로 나눠서 살펴보면 한국 경제의 변화 과정은 결국 경제의 미국화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경제의 미국화란 다른 말로 미국이 수탈하기 좋은 경제다. 갈수록 미국이 약탈하기 편한, 더 많이 약탈할 수 있는 경제로 되는 과정이다. 또 과거 친일세력이 친미세력으로 전환되고 더욱 공고해지는 과정이다.
그나마 민중의 투쟁으로 생활이 일정하게 나아지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경제 성장의 열매를 챙긴 사람은 극소수고 대부분은 몰락하였다. 중소자본가는 영세자본가로,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으로, 자영업자는 파산의 반복으로, 농민은 미래가 없는 처참한 몰락으로, 이것이 한국 경제의 실태다.
이처럼 친미의존경제가 경제 성장이라는 것은 완전한 허상이다.
(계속)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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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1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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