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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0일 월요일

미국이 5.18광주에 개입한 까닭


[기획연재] 5.18과 미국 (3)
5.18광주항쟁 39주기를 맞아 미국에 학살 책임을 묻는 2단계 진상규명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에 기획연재 ‘5.18과 미국’을 통해 ‘광주의 진실’에 한발 다가서고자 한다. [편집자]
[기획연재] 5.18과 미국
(1) 전두환 하나회의 배후는 누가인가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7289
(2) 5.18 발포명령, 누가 내렸는지 모른단 말인가
http://www.minplus.or.kr/news/articleView.html?idxno=7299
(3) 미국이 5.18광주에 개입한 까닭
자유한국당은 5.18 북한개입설을 프레임으로 수구세력 결집을 위해 애를 썼지만, 39주기를 맞은 5.18광주는 미국개입설이 더 화제다.
12.12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 신군부와 미국과의 관계로 보나, 한미연합사 소속 20사단이 민간인에 총질한 것으로 보나 군사작전통제권을 쥔 주한미군과 미국의 5.18 개입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신군부를 도와 5.18광주학살에 개입했을까?
미국의 5.18 개입은 미국 금융자본과 군수자본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중반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케인즈주의는 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80년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배하게 된다.
신자유주의라는 미국식 자본주의로 일색화하는 데서 한국을 첨병역할로 구상하고 있던 미국으로선 박정희 군부독재 이후 한국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것을 도저히 허용할 수 없었다.
미국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인 군수자본의 입장에서도 한국에 평화통일을 바라는 민주정부가 수립돼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5.18관련 내란음모 등 혐의로 계엄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80년 ‘서울의 봄’로 불리던 민주화의 열기는 당시 가택연금에서 해제(1979.12.08.)된 김대중 씨를 가장 유력한 대통령감으로 꼽고 있었다.
만약 5.18 내란음모죄로 사형이 선고되지 않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80년에 대통령이 됐더라면, 2000년 615공동선언이 20년 당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 군수자본은 무기를 소비해야만 돈을 벌 수 있다. 무기 소비는 오로지 전쟁과 전쟁연습으로 가능하다. 그 때문에 미국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분쟁지역을 만들어 미군을 파견, 전쟁을 대비한 군사훈련을 지속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곧 미국 국익의 심각한 손실을 의미한다.
지난 1월 발표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은 이런 사정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권 시절인 지난 2008~2017년 미국의 무기수출 현황을 보면 한국이 7조원을 넘겨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해방후 미군정 하에서 김구 선생을 암살하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세운 것처럼, 4.19혁명이 일어나자 박정희를 앞세워 5.16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것처럼, 미국은 이번에도 김대중을 5.18내란음모죄로 몰아 제거하고 체육관선거를 통해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만든다.
이후 존 위컴 5.18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민은 ‘들쥐’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어도 따를 것”이라고 자신의 심정을 제법 솔직하게 밝혔다.
지난해 9월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들(한국)은 우리(미국)의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모욕적인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 이제는 알 것도 같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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