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영 2018.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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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 전문 흰죽지, 날면 살고 잠수하면 ‘밥’ 돼
물속서 기진맥진한 흰죽지를 간신히 끌어냈지만…
물속서 기진맥진한 흰죽지를 간신히 끌어냈지만…
»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흰꼬리수리의 늠름한 모습.
해마다 경기도 팔당호를 찾아오는 터줏대감 흰꼬리수리 부부가 있다. 이들은 팔당의 환경을 속속들이 꿰고 있다. 사람보다 정확하게 자연현상을 이해한다. 날카로운 발톱만이 삶의 방편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 흰꼬리수리가 팔당에 모습을 드러낸다.
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내려간 팔당의 아침이다. 흰꼬리수리는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 흰비오리, 흰뺨오리, 댕기흰죽지와 수면성 오리인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알락오리 등을 사냥하고 물 위에 뜬 물고기를 건져가는 모습도 종종 관찰할 수 있다. 미사대교와 팔당댐 사이 10㎞ 구간에 걸쳐 사냥하기 때문에 어디 있는지 예측하기가 곤란하다. 사냥하는 모습을 관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흰꼬리수리 오른쪽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부부는 이른 아침 일찍 사냥감을 물색하고 있다. 맹추위에 부리에서 입김이 피어오른다.
» 흰꼬리수리 수컷이 먼저 사냥에 나선다.
사냥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해도 팔당은 역광, 아지랑이, 물로 인한 빛 산란, 물안개가 잦으며 거리가 멀고 유난히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곳이기도 해 촬영하기에 최악의 환경이다. 매서운 추위도 한몫을 했다.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해 흰꼬리수리의 생태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촬영에 임했다. 지난 12월 26일 흰꼬리수리 부부가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를 사냥하는 모습을 마침내 관찰할 수 있었다. 사진을 얻는 데 4년이란 시간이 걸렸기에 만족스럽진 않지만 다행이었다.
» 물 위에 모여있는 잠수성 오리인 흰죽지, 흰꼬리수리의 사냥감으로 많이 희생된다.
» 흰꼬리수리 부부가 사냥에 나섰다.
흰꼬리수리는 사냥 전 오리들이 무방비 상태가 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곤 무리에 갑작스럽게 달려든다. 오리들은 몹시 놀라 겁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져 정신없이 날아간다. 잠수성 오리들 가운데는 다급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물속으로 잠수해 몸을 숨기려는 개체가 있다. 바로 이 순간이 죽느냐 사느냐를 갈라놓는다. 잠수한 오리는 흰꼬리수리의 표적이 된다.
» 흰꼬리수리를 피해 물속으로 잠수했던 흰죽지가 고개를 내민다.
» 흰꼬리수리 부부의 협력 사냥에 흰죽지가 재빠르게 물속으로 잠수한다.
흰꼬리수리는 암수가 서로 힘을 합쳐 사냥한다. 오리가 물속에서 나와 도망갈 길을 앞서 차단하거나 사냥감 위에서 정지비행을 해 물속에서 나올 수조차 없게 한다.
오리가 얼굴을 내밀면 흰꼬리수리가 즉시 급하강해 놀란 오리가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도록 반복한다. 사냥감은 흰꼬리수리 부부의 치밀한 전략 앞에 오도가도 못하고,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떨어진다. 흰꼬리수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발톱으로 사냥감을 움켜쥔다.
» 흰죽지는 흰꼬리수리 부부의 추적에 지쳐 결국 고개를 내민다. 순간적으로 사냥 동작 자세를 한 흰꼬리수리가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 흰죽지를 향해 쏜살같이 급강하하는 흰꼬리수리.
» 흰꼬리수리의 몸 전체가 세차게 물속으로 파고든다.
쫓고 쫓기는 가혹한 살육 현장이지만 삶을 위한 투쟁이요 자연의 질서이니 어쩌랴. 흰꼬리수리는 오리류를 사냥할 때 채가기보다는 건져낸다. 사냥감이 흰꼬리수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죽기 살기로 저항하기 때문에 바로 채가기가 힘들다.
물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치는 사냥감을 건져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사냥감이 완강히 버틸 때는 흰꼬리수리도 물속으로 끌려들어가 몸이 물에 거의 잠기기도 한다.
» 흰죽지가 버티다 힘이 빠졌다. 그때를 기다리던 흰꼬리수리가 잽싸게 낚아채 올라온다.
» 흰꼬리수리는 흰죽지의 목을 정확히 움켜쥐었다.
흰꼬리수리는 물속에서 사냥감을 바짝 조여 쥐고서 수면 위로 날개를 펼쳐 물에 몸을 맡긴다. 부력에 의해 흰꼬리수리는 물 위에 뜨게 되고, 숨을 고른 다음 힘들이지 않고 물가로 헤엄을 쳐 끌어내거나 사냥감의 저항을 이용해 솟구쳐 날아올라 물 밖으로 끌어낸다. 사냥감의 목을 바로 움켜쥐었을 땐 쉽게 건져내는 경우도 있다.
» 흰꼬리수리가 흰죽지를 바라보며 사냥에 성공해 만족한 얼굴이다.
» 사냥감 흰죽지를 다듬어 먹기 위해 바위로 옮기는 흰꼬리수리.
흰꼬리수리는 사냥감을 손질하고 먹기 위해 적당한 장소나 가까운 바위에 안정적인 자리를 마련한다. 사냥감을 잡고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와중에 사냥감은 죽음의 문턱에서 공포에 질려 발버둥치며 오로지 살길만을 생각한다. 흰꼬리수리도 사냥이 끝났다고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단숨에 죽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틈만 있으면 사냥감이 탈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 흰죽지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흰꼬리수리의 발톱에서 빠져나갈 생각만 하고 있다.
» 바위는 사냥감을 손질하기에 제격이다.
흰꼬리수리 부부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치밀한 사냥이라도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먹이를 강탈하기 위해 노리고 있던 주변의 참수리나 흰꼬리수리들이 쏜살같이 나타날 수 있다. 방어자세를 취할 때 사냥감이 탈출하거나 잡은 사냥감을 강탈 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 발버둥치는 흰죽지.
» 주변을 경계하는 흰꼬리수리. 사냥감을 노리는 적들이 많아 언제나 불안하다.
흰꼬리수리 부부가 협공할 때는 10분 이내에 사냥이 끝나지만 혼자 사냥할 때는 15분 이상이 걸려 힘을 모두 소진할 정도로 쉽지 않다. 맹렬한 공격보다는 지속적으로 사냥감을 몰아 물속에서 지치게 하여 기회를 포착하기 때문이다. 맹금류는 암컷보다 수컷이 다소 작고 날렵해 빠르고 날쌔다. 수컷이 주로 사냥을 마무리한다.
» 흰꼬리수리는 적절한 바위 터를 고르는데도 신경을 쓴다.
» 쥐었던 목을 놓고 사냥감 흰죽지를 먹기 위해 준비하는 흰꼬리수리.
» 흰죽지의 등을 움켜잡았다.
흰꼬리수리가 수평으로 수면 위를 낮고 빠른 속도로 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잠수를 했던 잠수성 오리가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 쉽게 사냥을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흰꼬리수리는 비행속도와 거리, 높낮이를 조절해 적당히 오가며 자연스럽게 오리들을 한쪽으로 몰아넣는다. 오리들이 살기를 느끼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여 가까운 거리에서 기다리다 오리들의 경계심이 풀릴 때 기습해 사냥하는 교묘한 사냥법도 사용한다.
■ 죽음의 문턱까지 간 비오리
» 흰죽지의 등을 움켜잡고 깃털을 뽑기 위해 부리를 가까이 들이댄다.
» 부리를 벌려 가슴 깃털을 뜯어내려는 순간이다. 흰죽지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 앗! 죽음의 문턱에 있던 흰죽지가 도망친다. 흰꼬리수리가 화들짝 놀란다.
» 갑자기 나타난 참수리는 흰꼬리수리가 사냥한 흰죽지를 강탈하러 맹렬히 날아들고 있었다.
» 흰꼬리수리가 흰죽지를 다시 잡아와도 참수리의 몫이 될 것이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다. 흰꼬리수리가 사냥감을 놓아준 것은 방어였다.
이토록 냉혹한 사냥 장면을 지켜보면서 이런 자연 현상이 어쩌면 야생의 생명력을 유지해 주는 근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특히 죽음을 코앞에 둔 흰죽지가 정신을 잃지 않고 탈출에 성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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