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에 쫓긴 얼룩말…미꾸라지처럼 뛰어야 산다
포식자 속도, 가속, 감속 능력 압도적
피식자는 저속 급격한 방향전환 유리
» 사냥감을 향해 달려드는 사자 암컷. 사자는 얼룩말보다 가속력은 37%, 감속력은 72%나 뛰어나다. 얼룩말은 속도를 높일수록 살 가능성이 떨어진다. 쉴퍼 쉐퍼드/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숨을 곳 없이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서 초식동물이 사자나 치타로부터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작정 속도경쟁만 한다면 느린 쪽은 모두 잡아먹히고 결국은 먹이가 없는 포식자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능력의 차이에도 포식자와 피식자가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밝힌 실증적인 조사결과가 나왔다.
앨런 윌슨 영국 왕립수의대 동물학자 등 영국과 보츠와나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네이처’ 25일치에 실린 연구에서 야생상태의 포식자와 초식동물이 어떤 신체능력을 보이는지 특수 제작한 무선 측정기를 목걸이에 부착해 조사했다. 사자 9마리, 치타 5마리와 각각의 주요 먹이인 얼룩말 7마리, 임팔라(영양의 일종) 7마리에 측정기를 달아 5562차례에 걸쳐 사냥 질주 순간의 속도, 가속 능력, 감속 능력, 회전 능력을 측정했다. 또 각 동물의 뒷다리 근육 표본으로 근육이 어느 정도의 힘을 내는지도 측정했다.
그 결과 사자와 치타는 얼룩말과 임팔라에 견줘 잘 뛰는 육상 능력이 뛰어나, 근육힘은 20%, 가속력은 37%, 감속력은 72%나 우월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전 능력은 둘 사이에 비슷했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은 어떻게 이런 포식자를 피할까.
» 무선측정 목걸이를 착용한 얼룩말. 포식자보다 한발 앞서 가며 저속에서 급속한 방향전환으로 도망치는 게 최선이다. 앨런 윌슨 제공.
연구자들은 컴퓨터 모의조작 결과 초식동물이 먹이가 되지 않는 길은 느린 속도에 있음을 발견했다. 전력질주로는 승산이 없었다. 느린 속도로 달아나다 포식자가 접근하면 요리조리 방향을 트는 ‘미꾸라지 기동’ 전략이 초식동물에게 가장 유리했다. 특히 포식자가 붙잡으려는 마지막 순간에 날카로운 각도로 방향을 트는 전략이 최선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사냥에서 경주를 정하는 것은 피식자”라고 밝혔다. 초식동물은 포식자보다 한 발자국 앞서 언제 방향을 틀지 얼마나 빨리 달릴지를 결정한다. 포식자는 달리기 능력이 앞서기 때문에 초식동물을 가능한 한 빨리 달리도록 몰아대는 것이 유리하다. 속도가 빨라지면 회전반경이 크고 방향전환 각도가 작아지기 때문에 사냥감을 붙잡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를 아는 초식동물은 속도를 높이지 않은 상태에서 비틀고 방향을 바꾸어 추격 불확실성을 높이는 전략을 쓴다. 실제로 측정 결과 얼룩말과 임팔라는 포식자가 추격하는 상황에서 최대 속도의 절반 정도밖에 내지 않았다.
» 치타의 발톱. 집어넣었다 뺐다 할 수 있어 재빠른 기동을 할 때 접지능력을 키워준다. 앨런 윌슨 제공.
이번 조사결과 사자가 정면 승부로 재빠른 임팔라를 추격해서 사냥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도 사자는 우연히 걸려든 기회가 아니면 임팔라는 거의 사냥하지 못한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사자와 치타의 육상 능력은 먹이인 얼룩말과 임팔라의 능력과 밀접하게 맞춰져 있어 지속가능한 사냥 성공과 피식자와의 공존이 가능하게 되어 있다”며 “이는 진화적 군비경쟁의 결과”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lan M. Wilson et al, Biomechanics of predator–prey arms race in lion, zebra, cheetah and impala, Nature 2018, doi:10.1038/nature25479, http://nature.com/articles/doi:10.1038/nature2547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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