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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2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송년 통일전통음악회'가 열렸다. 남북 예술인들이 합동공연을 선보였으며, 마지막 곡 '우리의 소원'은 7차례 부르는 등 '통일 화음'을 이뤘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지난 9일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 북측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민족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로 만들겠다며 고위급대표단과 올림픽 대표단.선수단은 물론, 응원단, 예술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을 대거 파견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15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북측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을 열고, ‘삼지연 관현악단’ 140여 명을 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파견, 서울과 강릉에서 각각 공연하기로 남북이 합의했다.
북측의 예술단이 방남하는 것은 2002년 8.15민족통일대회 당시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등으로 구성된 예술단원 공연 이후 16년 만이다. 평창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 됨은 물론, 단절된 남북 예술교류를 여는 물꼬가 될 것인가. 남북 예술 교류사를 돌아보자.
1980~90년대, “총알 대신 예술로”
남북 예술교류는 198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 적십자사는 1985년 5월 8.15광복절 40년을 계기로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남측은 이산가족상봉, 북측은 광복절 축하 예술단 교류 및 전통가무 공연을 각각 제시했고, 이를 모두 포함한 합의서를 채택하기에 이른다.
결과, 1985년 9월 21일부터 22일까지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이산가족상봉과 함께 예술공연이 펼쳐졌다. 남측에서는 가수 김정구, 나훈아, 김희갑, 남보원 등 50명이 평양대국장에서, 북측에서는 무용가 김명득, 차영희, 박복희 등 50명이 서울 국립극장에서 이틀에 걸쳐 각 120분 동안 공연했다.
광복 40년, 분단 40년 만에 남북은 예술교류로 통일을 꿈꾼 것. 당시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을 부른 김정구 씨는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리며 “총알 대신 예술을 선보이려고 했다”고 소회를 밝혔고, 가수 나훈아 씨는 이때의 기억을 더듬어 노래 ‘평양아줌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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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9월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북측 예술단. 광복 40년,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남북 예술단 교류가 시작됐다. [사진출처-e영상역사관] |
1990년 남북은 처음으로 당국이 아닌 민간차원의 예술을 교류했다. 작곡가 윤이상 씨가 1988년 7월 ‘남북음악제전’을 제안한 이후 그의 노력으로 1990년 10월 평양에서 ‘제1회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열렸다.
평양 2.8문화회관, 봉화예술극장 등 6개 공연장에서 열린 음악회에는 남측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씨를 단장으로 서울전통음악연주단과 북측 김원균 작곡가를 단장으로 한 평양음악단이 함께 합동 연주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서울에서 ‘송년 통일전통음악회’가 열렸다. 북측 성동춘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30여 명이 내려왔는데, 여기에는 월북 작곡가 조영출의 부인 명창 김관보 씨도 포함됐다.
당시 공연을 두고 언론은 ‘통일 화음’이라고 기록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민요를 남북 예술인들이 뽐내며 동질성을 확인했음은 물론, 남측 황병기 씨와 북측 성동춘 씨가 공동작곡한 노래 ‘통일의 길’을 북측 승영희 씨가 처음 불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에서 남북 출연진 2백47명은 손을 잡고 무대에 나와 ‘우리의 소원’을 불렀고, 출연진과 객석은 7차례가 합창해, 예술로 통일을 이뤘다.
이후 1998년 5월 2일부터 12일까지 리틀엔젤스 공연단이 평양에서 공연을 펼쳤고, 같은 해 10월 31일부터 11월 7일까지 윤이상통일음악회 평양공연이 열렸다.
1999년 12월 5일에는 대중예술인들이 평양에서 공연했다. 가수 패티김, 설운도, 태진아는 물론, 댄스그룹인 핑클, 젝스키스 등이 평양 봉화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2000년 평화친선음악회’가 열렸다. 여기서 미 빌 클린턴 대통령의 동생인 가수 로저 클린턴도 노래를 불렀다.
같은 해 12월 20일 평양 민족통일음악회, 12월 23일 평양교예단 서울공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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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5월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서울에서 공연했다. 1998년 리틀엔젤스 평양공연의 답방 형식이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2000년대, 남북 예술로 하나되다
2000년 6.15정상회담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남북교류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간헐적으로 있던 남북 예술교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계기가 됐다.
6.15정상회담 직전, 2000년 5월 24일부터 30일까지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이 방남했다. 1998년 리틀엔젤스 평양공연 답방 형식이었다. 최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비서를 단장으로 1백여 명이 방남, 예술의 전당에서 5회 공연을 열었고, 매회 2천 2백 명이 관람했다.
이어 5월 29일부터 6월 11일까지 평양교예단이 서울에서 공연했다. ‘NS21’(회장 김보애)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합의에 따라, 김유식 평양교예단 예술부단장을 단장으로 1백여 명이 방남했다. 잠실체육관에서 11회 공연을 펼쳤고, 평균 1천 2백여 명이 관람했다.
6.15선언 발표 이후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서울에서 남북교향악단 합동 연주회가 열렸다. KBS교향악단과 조선국립교향악단은 KBS홀과 예술의 전당에서 4회를 공연했는데, 이 중 북측 단독 공연 2회, 남북 합동공연 2회로 진행됐다. 총 7천 4백여 명이 관람했다.
12월 11일부터 21일까지 재일 총련 소속 ‘금강산가극단’이 서울과 부산에서 초청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2001년 2월 1일 남측 ‘춘양문화선양회’가 추진한 ‘춘향전’이 평양 봉화예술극장 무대에 올랐다. 남원시립창극단 창무극 ‘춘향전’을 선보였고, 이어 2일 북측 민족예술단 민족가극 ‘춘향전’이 공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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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4월 북한에서 두 차례 공연을 한 김연자 씨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그해 4월 가수 김연자 씨는 7일 평양 공연, 11일 함흥 공연을 가졌는데,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연을 관람해 화제가 됐다.
2002년 8.15민족통일대회를 계기로 북측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등으로 구성된 예술단원이 방남, 공연을 선보였다. 그리고 9월 20일 KBS교향악단 평양공연, 9월 25일 가수 이미자, 최진희 씨와 윤도현밴드 등이 출연한 MBC 평양특별공연이 있었다. 2002년 9월 KBS교향악단은 또 방북해 평양연주회를 열었다.
2003년 8월 <KBS> 전국노래자랑 평양 공연, 10월 제주도 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 2005년 6월 가극 ‘금강’ 평양 공연, 8월 가수 조용필 평양 공연, 9월 뉴서울오페라단 창작오페라 ‘아, 고구려-광개토호태왕’ 평양 공연, 10월 제24회 윤이상음악제 평양 공연, 2006년 4월 금강산 윤이상음악회 등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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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 남북 예술교류에 자주 등장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
하지만 2007년 이후 남북 예술교류는 중단됐다. ‘10.4선언’이 발표됐지만, 이어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예술인의 만남도 없었다. 2011년 9월 서울시향 음악감독인 정명훈 지휘자가 방북, 남북합동공연은 협의했지만, 2012년 3월 북측 ‘은하수관현악단’이 프랑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합동연주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2018년 2월, 남북 예술교류가 다시 기지개를 켠다. 북측 ‘삼지연 관현악단’ 140여 명이 오는 2월 평창올림픽 축하 공연 형식으로 파견된다. 2002년 이후 16년만의 북측 예술단의 방남공연이 남북 예술교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남북관계 호시절, 남북의 예술인이 손을 잡고 관객과 함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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