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1.07 09:10:03
“무엇보다도 부모들이 달라졌다. 87년의 부모들은 거리에 데모하러 나가지 말라고 했다. 데모를 하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지난해 겨울 탄핵 촛불시위 때 부모들은 자녀들의 손을 잡고 나왔다. 자신들이 못 나가면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의 말이다. 오 연구위원은 6월항쟁 30주년을 맞아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진행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조사의 책임연구원이었다. 2017년의 부모들은 1987년 부모들의 자식들이었다. 그들 386세대가 부모가 된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보고서를 읽다보면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평화로운 집회’라는 정도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근본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세대의 변화가 한국 사회를 바꾸고 있다.”
영화 <1987>이 다루지 않은 미완의 승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FGI 참가자 섭외는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한 소위 ‘운동권’으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이 세대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당시의 인구, 학력, 성별 구성을 얼추 맞췄다. 대학 재학생이라고 하더라도 데모 참여자뿐 아니라 비참여자를 섭외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영화 <1987>의 개봉. 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에서부터 이한열 죽음까지의 과정을 다룬 영화다. 당시 거리에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엊그제의 일 같을 것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그후 한국 사회는 정말 바뀐 것일까.
영화에서 민주화세력은 승리했다. 하지만 미완의 승리다.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은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6월항쟁의 매우 아름다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는 영화다. 만일 끝부분 자막에 한 줄만 덧대도 이 영화는 아예 다른 영화가 된다. ‘그해 12월 군사정권을 승계한 노태우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이어 그는 그때 그 광장에 모여 외쳤던 ‘386’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덧붙인다. “그 광장에 모여 외쳤던 사람들을 소위 386세대라고 하는데 그 이후 386들이 어떻게 살았나. 아파트값을 이렇게 올려놓고. 나는 이 영화가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대체 그 순수함은 어디로 갔느냐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는 영화이기를 바란다.” 장준환 감독은 89학번이다. 1987년 6월항쟁이 이뤄질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다수, 2040세대 대부분은 이미 87년 6월항쟁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다.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1월 4일 <경향신문>에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가 기고한 글이다. 글은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의 ‘주류’는 보수였다. 진보를 지배하는 의식은 좋게 말해 비판의식이었고,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비주류의식이었다. 예를 들어 정권을 잡고 집권당이 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보수가 순식간에 급속도로 몰락했다. 박 대표에 따르면 이미 그 징후는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1987년 이래 ‘선거’는 치를 때마다 보수의 아성을 무너뜨려 왔다. 2010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는 보수가 20대에서 40대까지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는 50대마저 잃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보수 몰락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60년간 한국을 지배해온 보수의 두 축, 세상을 ‘반공’과 ‘돈’의 프리즘으로 보는 안보보수와 시장보수가 1987년과 2017년의 광장에서 탄핵당했다는 것이다. <주간경향>은 2주 전 ‘대한민국 대개혁과 연속 집권의 길’이라는 제목의 더불어민주당 내부 교육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박 대표의 주장은 민주당의 현 정세 인식과 일맥상통한 인식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진보의 미래’ 전망과 관련해서는 비관적 인식이 컸다. 박근혜 당선 이후 보수 장기집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선거지형에 대한 평가에서도 ‘기울어진 운동장론’이 대세였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거친 이후 나오는 주장은 반대다. 보수 궤멸론과 진보 20년 집권론의 ‘우려’가 나오는 것은 자유한국당 쪽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 궤멸론’으로
“(민주화)운동이 주류가 된 것이 아니라 운동권 출신들이 주류가 된 것이다.” 김선철 미국 에모리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한국의 민주화와 사회운동>이라는 제목의 영문저서를 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이 경향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나 브라질, 68운동이 벌어진 유럽과 미국에서도 ‘운동권 출신’이 정권을 잡거나 정치권에 들어오면서 운동의 언사, 담론까지 같이 가지고 들어온다. “자신들의 운동 경험을 자원으로 삼으면서 제도의 영역은 확장되지만 여전히 사회운동하는 사람들은 주변화된다. 한국의 경우, 제도권에 들어간 386들이 그 주체였다.”
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들은 지금도 민주화운동 ‘경력’을 이야기하지만 1980년대라면 그들에게 던져졌을 질문, 예를 들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파인텍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나 그 밑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내가 그들을 대변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들 중 몇 사람이나 있는지 묻고 싶다” 김 교수가 볼 때는 그것이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다. 비주류 약자, 언더도그가 권력을 가진 주류가 되었을 때는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거나 정치적 자유를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재’나 ‘현실’과는 여전히 괴리된 착각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여전히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헬조선’이다. “사람들이 자기를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긍정적 정체성을 찾을 기재가 없다는 것이 헬조선의 핵심이라고 보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찾는다. 지금까지 내가 발견한 것, 즉 불확실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해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것은 ‘나이’였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민주주의가 사회로 확산되면 서열문화가 완화될 줄 알았는데 거꾸로 한국 사회는 더욱 심해졌다.” 정치나 K팝 등의 팬덤도 자기 긍정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팬덤 사이의 연대감을 보이는 데 가장 쉬운 방법은 불링(bullying), 즉 누군가를 적으로 상정하는 것인데, 일상의 좌절이나 분노를 그런 식으로 치환해 표출하는 것이다.”
주류 교체의 원인, 인구 구성 변화
한국 사회의 주류 교체에서 구조적 조건은 인구 구성의 극적인 변화다. 50대가 더 이상 보수계열 정당을 지지하지 않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87년 6월’이라는 강력한 코호트(cohort)를 공유하고 있는 386의 대부분이 이제 5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에 따르면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보수화된다’고 말하는 연령효과와 ‘특정 시기의 경험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태도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코호트 효과를 보이는 연령대가 교차되는 지점이 이미 훨씬 전부터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는데, 그 시점이 1963년생이라는 것이다.
<주간경향>은 이 극적인 인구 구성 변화가 한국 사회에 가져올 충격과 관련해 ‘장기 386시대’라는 개념을 내놓은 바 있다. 2차에 걸친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의 코어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386집단이 사회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핵심 위치에 일단 올라서면, 급속하게 고령화되는 인구 구성 변화와 맞물려 이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시기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그 서막은 상당히 빠르게 왔다. 그 이전 20대 국회의 경우 이미 50% 이상의 의원이 386세대에 속한다. 장기 386세대는 그 세대들의 독특한 연대, ‘그 시절’을 경험한 동료의식, 세대 간 결속보다 세대 내의 결속을 전제로 한다.
‘헬조선’ 담론은 다른 말로 한다면 사회 변화를 추동하는 혁신이 없는 사회를 말한다. 이 주제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3개의 문예지에 10년 동안 발표된 비평문들을 취합해 평론가들이 어떤 단어 꾸러미를 쓰느냐, ‘지형도’를 분석한 연구다. 이 연구에 참여한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직위가 있어야 자유를 느낀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혁신은 다시 말해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고 나오는 것인데, 젊은 세대라고 딱히 개성이 있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가, 문예지 편집위원이라도 직위가 생기고 난 다음에서야 개성이 있는 단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면 평론은 가장 진취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단어를 써서 기존의 해석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과정인데, 새로 진입한 젊은 그룹이 쓰는 단어들이 평균적 단어로 수렴되는 것은 기존의 ‘평단권력’에 그들이 포섭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연구 결과다.”
앞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FGI 결과를 보면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386세대는 자기 세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드러내는 한편, 정치권에 진출한 386세력에 대해서는 신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를 진행한 오세제 연구위원은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아주 깊게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선출되는 과정이 온전히 자기 실력에 의해서라기보다 기성정치인, 이를테면 YS나 DJ에 의해 발탁되는 방식의 비민주적인 형대로 정치에 입문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정하고 있다”며 “발탁과정의 일방성뿐 아니라 그 이후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민생이나 민주주의와 관련한 입법이나 의정활동을 다른 세대에 비해 탁월하게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분노와 탄핵’이 적폐청산으로 귀결된 이유
분노와 탄핵. 장덕진 교수팀이 지난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촛불시위가 열린 24주의 SNS로부터 추출해낸 핵심 키워드다. “전체적으로 보면 분노와 탄핵으로부터 진화하지 못했다. 촛불이라는 광장이 열리면서 그 전까지 주목받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이슈가 아주 무질서하게 결합했는데,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이 있었기 때문에 여야 모두 불신과 비판을 받았다. 2008년 촛불과 2016∼2017년 촛불이 다른 점은 2008년 촛불이 대선 직후였다면, 이것은 촛불이 끝나자마자 대선이었다는 것이다. 대선국면에서 홍준표 후보는 생각보다 선전했고, 결집할 절박성에 문재인 후보로 결집하는데 지금까지 조직화한 방식으로 의제가 쌓인 것이 없다보니 모든 요구를 아울러 하나의 두루뭉술한 부대자루에 담는 담론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 논리적 결론은 적폐청산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장 교수의 SNS 데이터 분석에서 더 중요한 함의를 드러내는 부분은 다음의 언급이다. “전국적인 범위에서 민주당 지지나 386 정치인 내지는 실세에 대한 지지는 그 세대가 대표해온 가치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의제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우리가, 우리의 대표인 대통령이 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 대표적인 슬로건과 수단은 적폐청산이었다. 여기서 문재인이라는 핵심적 연결고리가 빠지면 이 모든 것의 결합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세제 연구위원은 ‘1987년 6월의 경험과 세대효과’의 지속성을 깊게 천착해 왔다. 박사논문을 통해 성별이나 학력, 재산의 유무와 상관 없이 다른 세대와 구별되는 87세대들의 코호트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주장해온 오 위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386이 우리 사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주체가 되려면 세대이익을 넘어서야 하며, 특히 20대에서 40대까지의 아랫세대와의 연대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지금 제일 고통받는 세대가 386의 자식세대, 취업하지 못하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청년실업자다. 이들에 대한 집단적인 사회적 배려와 그것을 강제하는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가진 집단은 현재 없다. 나는 386세대가 그것을 주도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을 할 때만이 미완의 87년 정신을 마무리하고 실현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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