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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0일 화요일

“한달 110만원…최저임금 비판하는 분들 이 돈으로 살아보라”

등록 :2018-01-31 05:00수정 :2018-01-31 08:56

최저임금 생활자들에게 들었습니다
전기장판 고장나도 구매 망설여
창피하지만 이게 생계비 전부
‘최저임금 생활자’ 3인의 목소리
“많은 돈 벌겠다는 욕심 없어
삶 지탱하려면 최저임금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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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오른 지 꼭 한달이 됐다. 최저임금 16.4% 인상 뒤 ‘기업 부담이 커지고, 고용이 줄고 있다’는 비판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약속했던 ‘최저임금 1만원’(2020년) 목표가 자칫 흐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당수 ‘최저임금 노동자’의 목소리는 숱한 논란에 묻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가구 생계를 대부분 책임지는 ‘핵심 소득원’의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는 대형마트 노동자와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 인디뮤지션 등을 만나 그들의 눈에 비친 ‘최저임금 논란’을 따라가봤다.
통장이 아닌 ‘텅장’(텅 빈 통장)이었다. 월급은 매달 10일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왔다. 그러나 입금과 동시에 사라졌다. 꼬박 10년을 일했지만 남는 것은 마이너스 통장 대출 1천만원이 전부다. 올해 마흔여섯, 중학생 아들을 혼자 키우는 여성 마트노동자 박성실(가명)씨의 삶은 팍팍했다.
박씨는 10년 전 남편과 이혼했다. 당시 5살인 아들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30대 중반에 일자리 구하기는 만만치 않았다. 겨우 자리잡은 곳이 대형마트인 홈플러스 매장이었다. 첫 2년은 시간제로 일했다. 이후 무기계약직 자리를 얻었다. 박씨는 마트 영업시간에 따라 하루 7시간씩 3교대로 하루 종일 서서 일했다. 환불과 반품 처리 등 주로 고객상담 업무를 맡았다.
박씨 임금은 늘 시급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 고작 몇원 많았다. 지난해 세금 등을 떼고 통장에 찍히는 돈은 한달 110만원 남짓에 그쳤다. 월급은 통장을 ‘스쳐가는’ 것만 같았다. 임대주택 임차료와 관리비 16만원, 아들 학원비 25만원, 보험료·통신비 등 고정지출로만 월급 절반이 훌쩍 날아갔다. 한창 자랄 나이인 아들 식비는 차마 줄이지 못한다. 통장에 현금이 없다는 것이 박씨한테는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최대한 아껴 쓴다고 해도 월급보다 지출이 많으니까 현금 거래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가끔 경조사 생기면 현금서비스를 받았어요. 저축도 거의 못 했는데 빚만 남았네요.”
2013년부터 경기도 안산의 한 제조업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김미애(34)씨도 최저임금 생활자다. 하루 종일 서서 조립과 검수 업무를 한다. 원청업체 쪽의 물량 압박 탓에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물도 못 마시고 일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받는 임금은 최저시급보다 50원 많은 수준에 그쳤다. 월급은 130만원 남짓이다.
남편도 학원강사를 하며 한달 120만원 남짓을 벌어, 가구 소득은 250만원을 조금 넘었다. 두 사람이 살기에는 빠듯했다. 신혼집 전세자금 대출 2천만원도 갚는 중이고 최근엔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원비도 보태야 했다.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다.
“월급 받으면 장부터 보는데 먹는 것도 줄여야 했고, 마트를 갈 때에는 늘 할인되는 품목만 샀어요. 병원비도 제법 나갔는데 그럴 때면 휘청하는 거죠.”
김씨한테는 최근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3월 출산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육아용품도 사야 하고, 산후조리원 비용도 엄청 비싸잖아요. 자연분만을 할 수 있으면 다행인데 제왕절개하면 병원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 테고요.”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고령 노동자한테 노후 준비는 먼 이야기다. 김미애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심아무개(56)씨는 1년 넘게 투병하던 남편을 5년 전 떠나보내야 했다. 자녀는 이미 충분히 컸지만, 자신이 퇴직하거나 병원 신세라도 지게 되면 그들한테 짐이 되지는 않을지 그게 걱정이다.
심씨는 “남편의 입원 기간에 정작 치료비보다 간병비가 더 많이 들었다”며 “그 이후 의료실비보험에 간병인보험까지 들어,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만 해도 꽤 된다”고 말했다.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노동을 11년째 하고 있는 심씨는 손가락·허리 등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다. 빠듯한 생활에 노후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해 걱정이다. 그는 “생계를 꾸려나가기에 바빠 정년퇴직 이후에는 얼마 안 되는 국민연금으로 살아야 할 형편”이라며 “의료비와 노후 준비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인디뮤지션 임솔잎(가명)씨는 1인 가구다. 음반 작업과 생계 활동을 함께 하려고, 지난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한달 160시간 정도 해서 120만원 정도를 벌었다.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집세·공과금·생활비를 감당하고 있다. 작업비를 모아야 하는 만큼, 임씨의 살림살이는 더욱 빠듯했다.
“겨울에는 난방비만 해도 아무리 아껴도 7만~8만원씩은 나가서 더더욱 부담이 돼요. 전기장판이 고장났는데도 구매를 망설일 정도였어요.”
최저임금이 곧 임금의 전부이고 이 돈으로 생계를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이들한테 최저임금이 갖는 의미는 더없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한겨레>가 한국노동패널조사 결과를 살펴보니, 최저임금 수준 임금을 받는 노동자 10명 가운데 7~8명은 가구의 ‘핵심 소득원’(가구주나 그 배우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보조 소득원’으로, 최저임금을 ‘알바 시급’쯤으로 여기는 일각의 분위기에 이들은 갑갑함을 느낀다.
“최저임금으로 한달이라도 살아본 뒤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저임금 때리기’에 몰두하는 정치권과 언론 등을 향해 여러 최저임금 생활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형마트 노동자 박씨는 “안 아픈 곳 하나 없이 골병이 들 정도로 몸과 마음을 상해가면서 고작 ‘용돈벌이’에 나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창피해서 말을 잘 못 한다뿐이지 다들 생계를 위해 나와서 일한다”고 말했다. 사내하청노동자 심씨도 “본인들이 와서 직접 (최저임금만으로) 살아보면 차마 그런 얘기를 못할 것”이라며 “정신 나간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저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한테,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어떻게 다가올까? 인디뮤지션 임씨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라고 답했다. 임씨는 “계속 시급 6500원에 머물러 있었으면 아르바이트를 계속하지 못하고 음악 작업을 미루는 상황이 왔을 것”이라며 “같은 시간을 일해도 한달에 20만원을 더 벌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크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내하청노동자 김씨도 “주 8시간을 일하면 월 150만원은 벌 수 있으니 생활이 조금은 나아지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대출금 빨리 갚고, 남편과 한달에 하나씩 자신을 위한 선물을 사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청노동자 심씨는 “월 20만원이 오른다고 해도 애초 받던 월급이 워낙 적어 많은 여유가 생길 것 같지는 않다”며 “상여금을 기본급에 녹여서 최저임금 인상에도 실제 임금이 오르지 않은 곳도 많은데 정부에서 이런 ‘꼼수’를 규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원 감축이나 휴게시간 증가 등 ‘꼼수’ 없이 최저임금 인상폭만큼 월급이 많아졌다는 서울 광진구의 한 아파트단지 경비노동자 우아무개(60)씨는 “돈이 모이면 사는 게 생동감 들고 재미있다”며 “그동안 애들 키우느라 노후 준비는 생각도 못했는데,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저축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이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빼놓지 않았다. 마트노동자 박씨는 “나처럼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한테 최저임금은 정말 절실하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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