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성향이나 동향을 조사했다는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지난 두달여간 조사를 벌여온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문건을 다수 발견했다고 22일 밝혔다.
문건들은 모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작성된 것이다. 일선 판사들의 성향이나 동향을 뒷조사한 것은 물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재판에 대해 청와대와 이야기 나눈 내용도 문건에 담겨있다.
추가조사위는 이날 “인사나 감찰 부서에 속하지 않는 사법행정 담당자들이 법관의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해 작성한 문서 가운데 정보 수집의 절차와 수단에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고 그 내용이 사법행정상 필요를 넘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다수의 문서를 보고서에 담았다”며 보고서를 공개했다.
추가조사위가 공개한 문건에는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을 뒷조사한 문건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2015년 8월18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ㄱ판사 게시글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 문건을 보면 ㄱ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 올린 글과 해당 글에 달린 댓글 분석, 이에 대한 판사들의 반응 등이 차례로 정리돼있다. 뿐만 아니라 ㄱ판사의 성격과 스타일, 가정사, 고민하는 테마의 내용, 독일 유학 복귀 후의 동향 등도 기재돼있다.
2015년 1~2월쯤 작성된 또 다른 문건에서는 ㄴ판사가 코트넷에 게시한 글과 함께 ㄴ판사의 성향을 정리해놨다. ㄴ판사가 정세판단에 밝은 전략가형이며 법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 및 의혹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선동가·아웃사이더·비평가 기질이 있다는 평가도 덧붙여있다.
법원행정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을 맡은 재판부 동향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 전 원장의 항소심 선고 다음날인 2015년 2월9일 작성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 문건을 보면 선고 이전에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한 경위와 내용, 선고 이후 외부 여론과 판사들의 평가를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청와대가 원 전 원장 재판에 대해 문의해왔고 법원행정처가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는 부분도 있다. 추가조사위는 “선고 이전에는 외부기관(BH)의 문의에 대해 우회적·간접적으로 항소심 담당 재판부의 동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을 알렸다”며 “선고 이후에는 외부기관(BH)의 희망에 대해 사법부의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는 내용의 기재가 있다”고 밝혔다.
추가조사위는 “법관이 사법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법행정 담당자가 법관들에 관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해 이념적 성향, 인적 관계와 행적 등을 분석·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했다면 이러한 문서는 그 대응 방안이 실현되었는지 또는 인사상의 불이익 조치가 있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러한 경위와 목적으로 작성됐다는 자체만으로도 법관의 독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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