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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31일 수요일
2018년 1월 30일 화요일
“한달 110만원…최저임금 비판하는 분들 이 돈으로 살아보라”
등록 :2018-01-31 05:00수정 :2018-01-31 08:56
최저임금 생활자들에게 들었습니다
전기장판 고장나도 구매 망설여
창피하지만 이게 생계비 전부
‘최저임금 생활자’ 3인의 목소리
“많은 돈 벌겠다는 욕심 없어
삶 지탱하려면 최저임금 절실”
전기장판 고장나도 구매 망설여
창피하지만 이게 생계비 전부
‘최저임금 생활자’ 3인의 목소리
“많은 돈 벌겠다는 욕심 없어
삶 지탱하려면 최저임금 절실”
2차례 방북 취재 “있는 그대로 취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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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1 09: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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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 연희미용고 학생이 ‘미용사’란 꿈 대신에 마주한 세상
졸업 앞두고 폐교 날벼락… 수업거부에 나선 학생들 “우리 선생님들 돌려주세요”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01-30 22:42:46
수정 2018-01-30 22:42:46
이 기사는 728번 공유됐습니다
“우리들의 선생님들을 돌려주세요.”
30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에 위치한 미용 전문 고등학교인 서울연희미용고를 찾았다. 학교 입구에서부터 게시판과 계단벽면, 심지어 학교 교무실에도 “선생님을 돌려달라”는 수많은 쪽지와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지난 26일 금요일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은 담임 선생님 다섯 분의 복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였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400여명의 전교생은 수업을 거부하고 지하 1층 예배당에 모였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부당한 해고를 철회하고, 학교 법인화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 모인 학생 대부분은 졸업 후 미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진학했다고 말했다. 꿈을 위해 통학시간이 왕복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군포나 통학이 불가능한 전라남도·광주·제주도에서 온 학생들도 있었다. 이들은 하 나 같이 최초로 세워진 미용학교의 명성과 학생들을 위해 온갖 열의와 성의를 다하는 선생님들을 믿고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선생님들 중 상당수가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다. 사실상 학교는 폐교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학교 졸업식을 앞둔 지난 26일(금요일) 학교 측은 이들 선생님들에게 해고통지서를 나눠줬다. ‘신분증명서 반납과 업무 인수인계, 출근은 29일(월요일)까지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아직 학생들 생활기록부조차 작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해고 선생님 중에는 학생들의 학교생활정보를 담당하는 선생님도 포함돼 있었다. 최근 설립자로부터 학교를 상속받은 박모씨 등은 학생들의 올바로 교육받을 권리나, 선생님들의 교권은 안중에 없었다. 학교를 이어갈 생각이 없던 이들은 부동산 매각하듯 팔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폐교절차를 밟아갔다. 해고사유 또한 황당했다. ‘2018년 학생 수 감원에 따라 학교 존속을 위한 경영상 해고’가 그것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을 돌려 달라”며 일어선 이유다.
헤어디자이너를 꿈꾸던 17세 학생의 호소
“우리 선생님들이 왜 해고당해야 하나요”
“우리 선생님들이 왜 해고당해야 하나요”
연희미용고에서 만난 2학년 최은진(17) 양의 꿈 역시 ‘미용사’였다. 경기도 군포에서 통학을 한다는 최양은 꿈을 이루고 싶은 마음에 반대하는 부모님을 수차례 설득시켜 지원을 하게 됐다고 했다. 최양은 처음 학교에 합격했을 당시를 심정을 떠올리며 말했다. “학교 발표가 있는 날, 시간을 딱 맞춰서 홈페이지에 접속했어요. 합격이었어요. 함께 있던 친구들도 모두 기뻐해주고, 저도 좋아서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담임 선생님도 잘 됐다고 해주셨어요. 꿈에 한 걸음 다가가게 됐다는 희망을 느꼈어요. 그런데…”
그만큼 가고 싶었던 학교이기에, 지각과 결석 한 번 없이 1년을 열심히 다녔다고 했다. 수학선생님은 자신 없던 수학에 처음으로 흥미를 갖게 해줬고, 헤어미용·피부미용·네일아트·메이크업 선생님들은 끊임없이 기술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지도해줬다고 말했다. 그런데 학교설립자이자 교장이 지난해 7월22일 숨지면서 폐교 소식이 돌았고, 불안과 혼란스러운 상태로 그동안 수업을 받아왔다고 지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던 중 지난 26일 선생님 다섯 분이 한꺼번에 해고를 당하면서 “학생들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폐교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부모님께 어떻게 어디서 어디까지 설명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졸업은 보장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애들도 다 갈팡질팡 못하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7~8월 계속됐어요. 두려움에 떨었어요.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시면 항상 학교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어요. 그러면 선생님들이 저희를 안심시키며 그렇게는 절대 안 될 거라고 했어요.”
그나마 학교 폐교를 막고자 애썼던 선생님들이 해고를 당하자, 최양을 비롯한 모든 학생들이 분개했다. 최양은 “금요일(지난 26일) 선생님들이 부당해고를 당하고 단톡방에 미안하다는 글을 올렸다”며 “이 소식을 듣고 선배들과 힘을 합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교에 비리가 정말 심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며 “이번에 학교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은 물론, 선생님들은 계속해서 부당해고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양의 말처럼 학교 설립자이자 지난해 숨을 거둔 박모 교장은 그동안 학교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내 쓰듯 함부로 유용해 왔다. 현재 학교를 상속받은 자녀들을 각각 국제협력팀장과 부팀장으로 허위 임명시킨 뒤 학교 돈으로 해외 현장학습에 동행시키는가 하면, 자신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에 회비 6천여만원을 냈던 것이 시교육청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잠시 교육당국으로부터 받아왔던 인권보조비가 끊기기도 했다. 학교는 뻔뻔하게도 운영을 잘못한 지점은 감추고, 교사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하면서 인건비를 삭감했다.
이런 학교의 행태에 분노한 연희미용고 학생들은 주말에 피켓을 만들었다. 한 학년 높은 선배들은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준비를 했다고 최양은 전했다. 그리고 월요일(29일) 선배들을 따라 수업을 거부하고 시위를 시작했다. 현 교장이 있는 5층 교장실로 올라가 선생님들의 부당해고를 철회하라고 외쳤다. 이 같은 사태를 설명하는 최양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다. “선생님들이 잘못한 것도 없고, 해고할 만한 사유도 없는데, 저희와 계속 함께 했던 선생님들인데, 그 선생님들이 갑자기 떠난다고 하니까 모두가 울컥하고 슬퍼하고… 정말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에요.”
‘학교의 횡포’, ‘교육청의 무책임’에 짓밟힌 학생들
최양은 답답한 마음에 교육청에 전화를 걸었다. 최양은 담당자를 찾고 “저희 한 번만 더 와주셔서 저희 학교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요청했다. 돌아온 담당자의 답변은 “이 상태로는 안 된다”였다. 다짜고짜 수업에 복귀하란 말 뿐이었다. 이에 최양은 “수업을 하려면 선생님들이 필요한데, 안 계시다”고 했지만, 담당자는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학교기물을 마음대로 부수고, 지금 질서를 유지하지 않기에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협박조에 가까운 목소리로 몰아 부칠 뿐이었다. 학교 곳곳에 대자보와 쪽지를 붙이긴 했지만, 기물을 부순 것은 없다고 학생들은 황당해 했다.
또 교육청 담당자는 “교감선생님과 선생님들이 지도하지 않냐, 당장에 모여서 전화만 하라고 지도하고 있나”라며 마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시켜서 교육청을 압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쏘아 붙였다. 교육청 담당자와 통화했던 내용을 쏟아내는 최양은 교육청에 큰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최양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하는 거고, 이 시위도 그렇고, 선생님들은 학교에 오도록, 수업에 들어가도록 계속 얘기한다. 왜 선생님들이 시키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묻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양을 비롯한 많은 학생들이 전날 학교상황을 살피러 온 교육청 관계자의 행동에도 실망하고 있었다. 29일 오후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학부모들도 학교에 찾아와 사태해결을 촉구하자, 교육청 관계자들은 이날 학교를 방문했다. 학교 상속자인 현 이사장 두 명도 참석한 자리였다. 학생들과 학부모·선생님들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교육청 관계자들은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은 사유재산이어서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진학한 학교에서 최은진 양이 만난 세상은 ‘부당해고로 무참히 짓밟힌 선생님들이 교권’, ‘폐교 수순에 따른 진로진학에 대한 위협’, ‘학교 권력자의 교비유용’, ‘정부기관 관계자의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삼키듯 주먹을 움켜쥔 최양은 “학생들 의견 하 나도 안 들어주는 교육청에 전화를 할 때마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들 부당해고 당하고, 마음도 추스르기 어려웠을 텐데, 학교는 가족들에게 해고통보사실을 먼저 알려버리고. 가정까지 건드리는 게 너무 속상해요. 그리고 저희도 한 가정의 자녀고 대한민국의 미래잖아요. 이렇게 어렵게 용기내서 아우성 치고 있는데, 이 소리를 듣고 저희에게 좀 관심을 가져줬으면…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한편, 학부모들은 31일 오전 11시 학교에 모여 함께 서울시교육청을 방문할 계획이다. 또한 해고당한 5명의 교사들도 해고철회를 요구하며 계속해서 출근을 이어갈 예정이다. 학생들은 교육청 앞 집회시위를 오는 2월2일 경찰서에 신고한 상태며, 해고 교사들의 복직과 학교 법인화가 해결될 때까지 수업거부와 집회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지현 검사의 8년과 안태근 검사의 8년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지난해 6월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의 부적절한 '돈 봉투 만찬' 파문으로 면직 처분됐다. 이전까지 그는 검찰과 법무부에서 주요 요직을 거친 전형적인 '엘리트 검사'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박근혜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과 연결된 검찰 실세였다. 피해자 서 검사가 고통 속에 보냈던 8년 동안 그는 어떻게 살았을까?
국회의원에게도 뻣뻣했던 검찰 실세
국회의원에게도 뻣뻣했던 검찰 실세
▲ 안태근 검찰국장 정상출근 '돈 봉투 만찬사건'의 당사자인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이 19일 오전 경기도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017.5.19 | |
ⓒ 연합뉴스 |
안 전 국장은 지난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 서울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 검사,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대검 정책기획단당, 서울서부지검 차장 등을 지냈다. 2013년에는 박근혜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됐고, 2015년에는 검찰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이 됐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고검장 승진 1순위로 꼽히며, 검찰총장추천위원회에도 참석하는 최고 요직이다.
안 전 국장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것은 '돈 봉투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2016년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출석해 '부산 엘시티 비리 의혹' 사건과 관련해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질문을 받았다. 노 의원이 "엘시티 사건에 대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가 되고 있느냐"라고 묻자 안 전 국장은 "기억이 없다"라고 답했다.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의 검찰 수사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에 노 의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 안 했으면 안 한 거지, 보고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라고 질책하자 "보고 안 했을 수도 있고. 아니, 제가 보고한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다. 노 의원이 "답변을 그따위로 하는가?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라고 하자 "그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국회의원에게 성의 없는 답변만 늘어놓자 노 의원은 "막장입니다. 막장"이라고 혀를 찼다.
안 전 국장은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우병우 라인'이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안 전 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으로 우 전 수석의 최측근 역할을 했다. 그리고 수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압수수색 정보가 새어 나가는 등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번번이 어긋나자 안 전 국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팀은 안 전 국장과 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2016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1000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 등을 압수수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안 전 국장은 "우 수석과 업무상 통화를 했다"라고 해명했지만, 4개월간 1000차례 통화는 하루 8건 이상을 했다는 것으로 단순 업무상 통화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의원 앞에서도 뻣뻣하고, 정권 실세와도 막역했던 안 전 국장이 시련을 겪은 것은 지난해 6월 '돈봉투 만찬'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다. 지난해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에 따르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특별수사본부(특수본) 간부 6명, 검찰국 과장 2명이 참석한 만찬 자리에서 돈봉투를 돌렸다. 안 전 국장은 특수본 간부들에게 70만∼100만 원씩, 이 전 지검장은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 원씩 격려금을 줬다.
이에 안 전 국장은 곧장 사의를 표명했지만, 징계절차가 진행되면서 우선 대구지검으로 좌천됐다. 결국, 지난해 6월 법무부는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에게 중징계인 면직을 의결했다. 면직이 확정됨에 따라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퇴직금과 연금은 정상적으로 받지만, 2년간 변호사 개업은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면직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행정 소송을 낸 상태다.
안 전 국장은 이후 최근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검사는 지난해 10월 온누리교회에서 간증(신앙고백)을 하며 "30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며 나름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뜻하지 않은 본의 아닌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선후배·동료·친지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 주었다"라고 말했다.
'돈봉투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공직을 떠났다는 얘기다. 그는 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얼마나 마음고생 많냐고 묻지만, 하나님을 영접할 기회를 주시고, 교만을 회개할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하니 처음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도 사라졌다"라며 "믿음 없이 교만하게 살아온 죄 많은 저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올린다"라고 말했다. 안 전 국장의 간증 영상에는 그가 울먹이는 모습도 담겨 있다.
"그날 '그 사람'의 그 눈빛이 떠올라..."
이에 노 의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고 안 했으면 안 한 거지, 보고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라고 질책하자 "보고 안 했을 수도 있고. 아니, 제가 보고한 기억이 없다"라고 말했다. 노 의원이 "답변을 그따위로 하는가? 보고한 사실이 없는 게 아니라 기억이 없다고?"라고 하자 "그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을 대신해 질문하는 국회의원에게 성의 없는 답변만 늘어놓자 노 의원은 "막장입니다. 막장"이라고 혀를 찼다.
안 전 국장은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우병우 라인'이었던 셈이다. 그중에서도 안 전 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검찰국장으로 우 전 수석의 최측근 역할을 했다. 그리고 수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압수수색 정보가 새어 나가는 등 우 전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가 번번이 어긋나자 안 전 국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박영수 특검팀은 안 전 국장과 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2016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 1000차례 이상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 등을 압수수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안 전 국장은 "우 수석과 업무상 통화를 했다"라고 해명했지만, 4개월간 1000차례 통화는 하루 8건 이상을 했다는 것으로 단순 업무상 통화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의원 앞에서도 뻣뻣하고, 정권 실세와도 막역했던 안 전 국장이 시련을 겪은 것은 지난해 6월 '돈봉투 만찬' 사건이 터지면서부터다. 지난해 법무부·대검찰청 합동감찰반에 따르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특별수사본부(특수본) 간부 6명, 검찰국 과장 2명이 참석한 만찬 자리에서 돈봉투를 돌렸다. 안 전 국장은 특수본 간부들에게 70만∼100만 원씩, 이 전 지검장은 법무부 과장 2명에게 100만 원씩 격려금을 줬다.
이에 안 전 국장은 곧장 사의를 표명했지만, 징계절차가 진행되면서 우선 대구지검으로 좌천됐다. 결국, 지난해 6월 법무부는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에게 중징계인 면직을 의결했다. 면직이 확정됨에 따라 이 전 지검장과 안 전 국장은 퇴직금과 연금은 정상적으로 받지만, 2년간 변호사 개업은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두 사람은 지난해 9월 "면직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법원에 행정 소송을 낸 상태다.
안 전 국장은 이후 최근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앤조이> 보도에 따르면 안 전 검사는 지난해 10월 온누리교회에서 간증(신앙고백)을 하며 "30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며 나름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뜻하지 않은 본의 아닌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되었고, 주변의 많은 선후배·동료·친지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 주었다"라고 말했다.
'돈봉투 사건'으로 불명예스럽게 공직을 떠났다는 얘기다. 그는 또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얼마나 마음고생 많냐고 묻지만, 하나님을 영접할 기회를 주시고, 교만을 회개할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하니 처음 느꼈던 억울함과 분노도 사라졌다"라며 "믿음 없이 교만하게 살아온 죄 많은 저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해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올린다"라고 말했다. 안 전 국장의 간증 영상에는 그가 울먹이는 모습도 담겨 있다.
"그날 '그 사람'의 그 눈빛이 떠올라..."
▲ JTBC에 출연한 서지현 검사. | |
ⓒ JTBC |
안 전 국장이 권력을 등에 업고 출세 가도를 달리는 동안 서지현 검사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그는 3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지난 8년간 참을 수 없는 수치심에 매일 밤 가슴을 쥐어뜯었다"라며 "그날 '그 사람'의 그 눈빛이 떠오르는데 잠을 이룰 수가 있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안 전 국장을 뜻한다. 서 검사는 또 "그날 충격이 너무 커 화장실에 쓰러져 있다가 집에 있는 아이 생각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귀가했다"라며 "이후 그날의 트라우마로 유산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앞서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을 통해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법무부 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안태근 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라며 "소속청 간부들을 통해 사과를 받기로 하는 선에서 정리됐지만, 그 후 어떤 사과나 연락도 받지 못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 검사는 "갑작스러운 사무 감사를 받은 이후 검찰총장의 경고를 받고, 통상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을 받았다"라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이유를 알기 위해 노력하던 중 인사발령의 배후에 안 검사가 있다는 것을, 안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현 자유한국당 의원인 당시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이 앞장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에 안 전 국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오래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다만 그 일이 검사 인사나 사무감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사실상 성추행 사건 자체는 부정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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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박종철, 31년만에 경관 자필기록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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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30 1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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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9일 월요일
대통령 딸 ‘정의당 당원’ 뉴스, ‘단독’ 붙여야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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