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석회의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대표가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20대 국회 당선자-당무위원 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
ⓒ 권우성 |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불편하다.
박근혜 정부는 심판했지만 어느 야당도 자신 있게 '우리가 승리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절묘한 20대 총선 결과가 나왔다. 그 와중에 그래도 조금 더 미소 지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유승민 의원, 안철수 대표, 김종인 대표일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는 점 말고도 이들을 공통되게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슬로건이다. 그런데 이 슬로건이 너무나 불편하다.
피폐한 민생을 살리기 위해 양극화를 완화하고 과도한 재벌집중의 구조를 개선하는 경제 정책을 추구하되, 안보는 확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의 도발은 단호히 응징하겠다... 구체적인 생각들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뭐 이 정도가 세 정치인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인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한 번 따져 물어보자.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공평한 정치적 언어가 될 수 있는가? 공식적으로 아직 종전되지 않은 상태로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는 분단국가에서 안보는 보수냐 진보냐 하는 '가치'의 문제를 떠나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에게 안보는 생존이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G2와 이에 못지 않은 야심을 가진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언제든 전쟁의 소용돌이로 휩쓸려 들어갈 지도 모르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북한을 어떻게 관리하고 냉혹한 국제정치의 셈법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동북아시아 외교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 해법에 대해서는 각 정치세력마다 다른 노선과 정책을 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견 이전에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합의가 '전쟁은 파멸이요, 우리는 안전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입당원서 제출 후 질문받는 유승민 20대 총선에서 대구 동을 선거구에 무소속 출마한 유승민 당선인(왼쪽 세번째)이 4월 19일 오후 새누리당 대구시당을 찾아 입당 원서를 제출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
ⓒ 연합뉴스 |
'안보는 보수' 라는 말 자체가 보수의 강력한 프레임이다. 생존의 언어가 가치의 언어로 치환되는 순간, 남북관계와 동북아시아 외교에 있어 냉전적인 사고를 넘어서는 제안과 정책은 '진보'라는 이름 이전에 '안전을 포기하는 위험한 행위'로 인식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보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라고 칭하지 말고 '안보'의 자리에 '남북관계' 혹은 '동북아시아 외교'라는 용어를 넣어 생각해야함이 마땅하다.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해나가고 동북아시아 외교를 어떻게 풀어가면서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겠다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주장하고, 또 그것을 대중으로부터 평가받는 공론의 틀이 마련되어야 한다.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경제문제에 있어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한 '말이 통하는 보수'로서의 유승민은 인정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정도로 먼저 사드(THAAD) 배치를 주장하던 그의 국방철학을 용인할 수는 없다.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양당체제에 균열을 내고 나름의 정치적 입지를 세운 안철수 대표는 존중한다. 그러나 그의 많은 슬로건이 그러하듯 알맹이를 짐작할 수 없는 '안보보수'라는 견해는 매우 위험하게 느껴진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찌되었든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존재로 김종인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의 선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북핵 위기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다름 없는 북한궤멸론을 주장하는 그의 낡은 대북관은 단호히 반대한다.
경제는 진보적으로 하고 안보는 보수적으로 하겠다는 유승민, 안철수, 김종인 세 사람이 이번 총선에서 거둔 소기의 성과가 혹시라도 그 범위를 넘어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을 유지했던 '남북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에 대한 실패 규정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툭 터 놓고 이야기해보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는가? 그렇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벌어진 남북관계의 파탄과 북핵 위기, 한반도 외교에 있어 추락한 한국정부의 위상을 보라. 물론 한반도 문제의 악화에 대한 책임을 한국정부 홀로 뒤집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과 미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은 보수적인 부시 정권과 7년을 함께 했고,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도발적인 북한을 상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위기관리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자 했고 많은 부분 성과를 내었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1969년 시작된 서독의 동방정책이 20년 후 통일의 결실을 맺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보다 훨씬 냉랭하던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 지금의 모습을 보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등장으로 끊어진 9년 세월에 대한 통탄이 어디 한 두 사람의 심정이랴.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책임에 있어 민주정부 10년은 반성을 해야겠지만, 그 이전의 보수정권들과 그 이후의 보수정권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남북화해협력정책은 확실히 차별화되고 충분히 성공한 정책이었음을 김대중과 노무현의 후예들은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퍼주기'라는 오래된 농담과 약발 다한 '종북 프레임'에 더 이상 쫄지 말자.
더불어민주당에 바란다. 선거가 끝났다. 이제는 남북관계에 있어 김종인 대표의 우클릭 행보에 대해 견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민생문제 해결의 관건은 결국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이냐에 달려 있고, 새누리당과 차별화된 경제민주화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핵심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안보문제가 부각되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을 띄울 수 없다는 판단은 매우 수세적인 생각이다. 오히려 두 가지 문제가 사실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경제는 진보적으로 하고 안보는 보수적으로 하겠다는 유승민, 안철수, 김종인 세 사람이 이번 총선에서 거둔 소기의 성과가 혹시라도 그 범위를 넘어서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을 유지했던 '남북화해협력정책'(햇볕정책)에 대한 실패 규정으로, 대중에게 인식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된다.
툭 터 놓고 이야기해보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는가? 그렇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벌어진 남북관계의 파탄과 북핵 위기, 한반도 외교에 있어 추락한 한국정부의 위상을 보라. 물론 한반도 문제의 악화에 대한 책임을 한국정부 홀로 뒤집어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과 미국의 책임이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정부 10년은 보수적인 부시 정권과 7년을 함께 했고, 지금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도발적인 북한을 상대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위기관리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자 했고 많은 부분 성과를 내었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1969년 시작된 서독의 동방정책이 20년 후 통일의 결실을 맺었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보다 훨씬 냉랭하던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한 지금의 모습을 보라.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등장으로 끊어진 9년 세월에 대한 통탄이 어디 한 두 사람의 심정이랴.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책임에 있어 민주정부 10년은 반성을 해야겠지만, 그 이전의 보수정권들과 그 이후의 보수정권들과 비교해보았을 때 남북화해협력정책은 확실히 차별화되고 충분히 성공한 정책이었음을 김대중과 노무현의 후예들은 자신감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퍼주기'라는 오래된 농담과 약발 다한 '종북 프레임'에 더 이상 쫄지 말자.
더불어민주당에 바란다. 선거가 끝났다. 이제는 남북관계에 있어 김종인 대표의 우클릭 행보에 대해 견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민생문제 해결의 관건은 결국 세금을 어디에 쓸 것이냐에 달려 있고, 새누리당과 차별화된 경제민주화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핵심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안보문제가 부각되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실정을 띄울 수 없다는 판단은 매우 수세적인 생각이다. 오히려 두 가지 문제가 사실은 하나로 귀결되는 것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가 4월 26일 오후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하고 있다. | |
ⓒ 이희훈 |
국민의 당에 호소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공신이었던 박지원 원내대표와 통일부 장관으로 2005년 9.19 합의를 이끌어 냈던 정동영 당선자가 남북관계에 있어 안철수 대표와 명확한 대립각을 세워주기를 바란다. 김대중 정신은 호남정치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더민주 탈당이 작은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대의와 새로운 정치 추구라는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남북화해협력정책을 살려내길 바란다.
새누리당에 기대한다. 독일통일 당시 집권당은 보수세력인 기민당이었다. 진보적인 사민당 정권에서 시작한 동방정책을 일관되게 계승하였기에 역사적 순간에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새누리당이 경제/복지정책 뿐만 아니라 이제는 대북정책과 동북아시아 외교에 있어서도 기존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확실하게 차별화된 합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은 없는가.
남북관계는 생존의 문제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경제의 문제다. 남북관계 개선이 곧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허위의 프레임을 깨고, 답답한 남북관계와 위험한 한반도 정세를 담대하게 풀어낼 새로운 대안과 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그 동력으로 경제민주화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모색될 수 있기를 정치권에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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