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범 복원 청신호…연해주 '표범 땅' 번식 순조
인터뷰 러시아 '표범의 땅' 국립공원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
밀렵단속 성과 지난해 새끼 8마리 등 80마리로 불어
2013년엔 러서 중국 거쳐 북한 향한 발자국도 발견
»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한국표범(아무르표범) 서식지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왼쪽)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 사진=조홍섭 기자
표범은 고양이과 대형 포식자 가운데 특별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데다 은밀하고 적응력이 뛰어나 강인한 인상을 준다. 표범 서식지는 아프리카 사바나부터 사막과 태평양 섬나라, 고산지대에 걸쳐 있다. 또 뭄바이나 요하네스버그 같은 대도시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칫 표범이 아직 흔하다는 오해를 부른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 표범 서식지의 실태를 조사한 앤드류 제이콥슨 영국 런던동물원 연구원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표범의 서식지는 과거에 견줘 25%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동북아의 한국표범(아무르표범)은 역사적 서식지의 98%를 잃어버려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현재 확인된 한국표범의 유일한 서식지는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이다.
» 한국표범의 역사적인 서식지 변천. 회색은 과거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지역, 초록색은 현 서식지. 그림=제이곱슨 외(2016) <피어제이>
한-러 어린이 호랑이 그리기 대회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을 16일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 4년이 지난 표범 국립공원의 현황과 한국표범의 미래에 관해 들었다.
먼저, 기존에 흩어져 있던 3~4개 보호구역을 묶어 북한산국립공원 30개 넓이에 설정한 ‘표범의 땅’이 성과를 거뒀는지 물었다. “밀렵단속 강화 등 덕분에 50마리이던 표범의 수가 80마리로 늘어났다”라고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이 말했다.
두만강 너머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이곳의 보전은 중·소 국경분쟁 덕을 봤다. 잣나무와 신갈나무가 뒤섞인 원시림에서 마지막 표범 집단이 한국호랑이 10여 마리와 함께 살아 남았다. (관련 기사: 연해주에 ‘표범 나라’ 생겼다)
» 무인카메라에 찍힌 '표범의 땅' 수컷 표범. 사진=LLNP
“지난해엔 새끼가 9마리 태어났어요. 모두 크고 통통한 게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요.”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성공적인 번식은 표범의 미래를 위해 좋은 징조다. 이런 사실은 무인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다.
사실, ‘표범의 땅’은 애초 한반도였다. 1919~1942년 사이 일제가 포수를 동원해 잡아죽인 표범의 수는 기록된 것만 624마리이다. 연해주에선 해마다 1~3마리가 잡힌 것과 대조가 된다. 어쨌든 한반도와 연해주의 표범은 같은 종이다.
밀렵꾼을 막는 것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표범 보전에도 핵심 과제다. “공원 감시원 23명이 3명씩 조를 짜 매달 갱신하는 감시지도를 바탕으로 순찰을 합니다. 지난해 모두 17건을 적발했는데 모두 러시아인이었지요. 중국 밀렵꾼도 오는데 밤중에 은밀하게 행동해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라고 바라노브스카야가 말했다.
» 바라노브스카야 '표범의 땅' 국립공원 원장. 사진=조홍섭 기자
뜻밖에 이들의 표적은 표범이 아니다. “사슴과 멧돼지가 주 목표이고 운이 좋으면 호랑이를 노리지요. 표범을 잡다가 잡히면 처벌이 엄해 건드리지 않습니다. 한약재 수요도 없고요.” 중국인 밀렵꾼은 다른 걸 노린다. “강에 약을 풀거나 겨울잠을 자는 곳을 파헤쳐 개구리와 물고기를 잡아갑니다. 또 한국인이 많이 찾는 산삼을 캐러 오기도 하지요.”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표범은 이제 극동 러시아의 상징동물”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 등 최고권력자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표범으로부터 가축 피해를 입은 농가에는 지체 없이 보상을 해 주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 무인 카메라로 찍은 한국표범의 사슴 사냥 모습(동영상: '표범의 땅' 국립공원)
■ 무인 카메라에 잡힌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 표범(동영상: '표범의 땅' 국립공원)
해방 이후에도 한국표범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 표범을 용감하게 때려잡았다거나 모피를 비싸게 팔았다는 신문기사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1962년 경남 합천에서 마지막으로 표범이 산 채로 잡혀 1974년 창경원에서 죽었다.(■ 관련 기사: 한국 마지막 표범 뱀가게에 팔렸다) 한국표범은 한반도에서 부활할 수 있을까.
» 1963년 경남 합천에서 진돗개와 함께 새끼 표범을 돌로 잡은 주민 네 명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살마노바 과학국장의 말이 희망을 준다. “2013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표범 발자국을 확인했는데, 그 발자국은 중국에서 다시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몇 마리가 북한으로 갔는지 등은 아직 잘 모릅니다.”
지난해 10월15일 “러시아 정부가 북한에 아무르표범의 개체수 확인 작업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타스통신>이 보도한 데 대해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그냥 기다릴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 엘레나 살마노바 '표범의 땅' 국립공원 부원장 겸 과학국장
연해주의 표범 개체수가 충분히 불어나면 누가 말리지 않아도 중국과 북한, 나아가 남한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살마노바 국장은 “표범 복원에 가장 중요한 건 먹이동물이 풍부하고 어미가 숨어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은신 공간을 확보하는 등 서식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장차 표범 복원의 유력한 후보지로 강원도 화천·양구의 백암산·백석산 지역과 비무장지대를 잇는 지역으로 꼽는다.(■ 한국표범 복원이 두만강과 DMZ 수호신 될까)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한국표범은 대부분의 다른 아종과 달리 혹독한 추위에 적응했고 덩치가 가장 작은 편인데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라며 “서식지 복원에 앞서 표범을 공존해야 할 우리의 동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자와 시민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생태관광과 교육의 일환으로 ‘표범의 땅’ 국립공원 안에 남아있는 100~150년 전 조선인 문화유적을 복원해 ‘코리아 트레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
밀렵단속 성과 지난해 새끼 8마리 등 80마리로 불어
2013년엔 러서 중국 거쳐 북한 향한 발자국도 발견
»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한국표범(아무르표범) 서식지인 러시아 연해주 '표범의 땅' 국립공원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왼쪽)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 사진=조홍섭 기자
표범은 고양이과 대형 포식자 가운데 특별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데다 은밀하고 적응력이 뛰어나 강인한 인상을 준다. 표범 서식지는 아프리카 사바나부터 사막과 태평양 섬나라, 고산지대에 걸쳐 있다. 또 뭄바이나 요하네스버그 같은 대도시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칫 표범이 아직 흔하다는 오해를 부른다.
그러나 최근 전 세계 표범 서식지의 실태를 조사한 앤드류 제이콥슨 영국 런던동물원 연구원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표범의 서식지는 과거에 견줘 25%밖에 남지 않았다. 특히 동북아의 한국표범(아무르표범)은 역사적 서식지의 98%를 잃어버려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현재 확인된 한국표범의 유일한 서식지는 러시아 연해주에 있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이다.
» 한국표범의 역사적인 서식지 변천. 회색은 과거 서식지, 연두색은 서식 가능 지역, 초록색은 현 서식지. 그림=제이곱슨 외(2016) <피어제이>
한-러 어린이 호랑이 그리기 대회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타티아나 바라노브스카야 원장과 엘레나 살마노바 과학국장을 16일 이항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나 4년이 지난 표범 국립공원의 현황과 한국표범의 미래에 관해 들었다.
먼저, 기존에 흩어져 있던 3~4개 보호구역을 묶어 북한산국립공원 30개 넓이에 설정한 ‘표범의 땅’이 성과를 거뒀는지 물었다. “밀렵단속 강화 등 덕분에 50마리이던 표범의 수가 80마리로 늘어났다”라고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이 말했다.
두만강 너머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지대인 이곳의 보전은 중·소 국경분쟁 덕을 봤다. 잣나무와 신갈나무가 뒤섞인 원시림에서 마지막 표범 집단이 한국호랑이 10여 마리와 함께 살아 남았다. (관련 기사: 연해주에 ‘표범 나라’ 생겼다)
» 무인카메라에 찍힌 '표범의 땅' 수컷 표범. 사진=LLNP
“지난해엔 새끼가 9마리 태어났어요. 모두 크고 통통한 게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요.”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성공적인 번식은 표범의 미래를 위해 좋은 징조다. 이런 사실은 무인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다.
사실, ‘표범의 땅’은 애초 한반도였다. 1919~1942년 사이 일제가 포수를 동원해 잡아죽인 표범의 수는 기록된 것만 624마리이다. 연해주에선 해마다 1~3마리가 잡힌 것과 대조가 된다. 어쨌든 한반도와 연해주의 표범은 같은 종이다.
밀렵꾼을 막는 것은 호랑이와 마찬가지로 표범 보전에도 핵심 과제다. “공원 감시원 23명이 3명씩 조를 짜 매달 갱신하는 감시지도를 바탕으로 순찰을 합니다. 지난해 모두 17건을 적발했는데 모두 러시아인이었지요. 중국 밀렵꾼도 오는데 밤중에 은밀하게 행동해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라고 바라노브스카야가 말했다.
» 바라노브스카야 '표범의 땅' 국립공원 원장. 사진=조홍섭 기자
뜻밖에 이들의 표적은 표범이 아니다. “사슴과 멧돼지가 주 목표이고 운이 좋으면 호랑이를 노리지요. 표범을 잡다가 잡히면 처벌이 엄해 건드리지 않습니다. 한약재 수요도 없고요.” 중국인 밀렵꾼은 다른 걸 노린다. “강에 약을 풀거나 겨울잠을 자는 곳을 파헤쳐 개구리와 물고기를 잡아갑니다. 또 한국인이 많이 찾는 산삼을 캐러 오기도 하지요.”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표범은 이제 극동 러시아의 상징동물”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 등 최고권력자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표범으로부터 가축 피해를 입은 농가에는 지체 없이 보상을 해 주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 무인 카메라로 찍은 한국표범의 사슴 사냥 모습(동영상: '표범의 땅' 국립공원)
■ 무인 카메라에 잡힌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있는 어미 표범(동영상: '표범의 땅' 국립공원)
해방 이후에도 한국표범은 보호를 받지 못했다. 표범을 용감하게 때려잡았다거나 모피를 비싸게 팔았다는 신문기사가 드문드문 이어졌다. 1962년 경남 합천에서 마지막으로 표범이 산 채로 잡혀 1974년 창경원에서 죽었다.(■ 관련 기사: 한국 마지막 표범 뱀가게에 팔렸다) 한국표범은 한반도에서 부활할 수 있을까.
» 1963년 경남 합천에서 진돗개와 함께 새끼 표범을 돌로 잡은 주민 네 명이 동네 주민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살마노바 과학국장의 말이 희망을 준다. “2013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표범 발자국을 확인했는데, 그 발자국은 중국에서 다시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습니다. 몇 마리가 북한으로 갔는지 등은 아직 잘 모릅니다.”
지난해 10월15일 “러시아 정부가 북한에 아무르표범의 개체수 확인 작업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타스통신>이 보도한 데 대해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그냥 기다릴 뿐”이라며 말을 아꼈다.
» 엘레나 살마노바 '표범의 땅' 국립공원 부원장 겸 과학국장
연해주의 표범 개체수가 충분히 불어나면 누가 말리지 않아도 중국과 북한, 나아가 남한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살마노바 국장은 “표범 복원에 가장 중요한 건 먹이동물이 풍부하고 어미가 숨어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은신 공간을 확보하는 등 서식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장차 표범 복원의 유력한 후보지로 강원도 화천·양구의 백암산·백석산 지역과 비무장지대를 잇는 지역으로 꼽는다.(■ 한국표범 복원이 두만강과 DMZ 수호신 될까)
바라노브스카야 원장은 “한국표범은 대부분의 다른 아종과 달리 혹독한 추위에 적응했고 덩치가 가장 작은 편인데다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라며 “서식지 복원에 앞서 표범을 공존해야 할 우리의 동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연구자와 시민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생태관광과 교육의 일환으로 ‘표범의 땅’ 국립공원 안에 남아있는 100~150년 전 조선인 문화유적을 복원해 ‘코리아 트레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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