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남발 우려? 기업이 사회를 두려워해야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박근혜 대선 공약이었는데
정민경‧손가영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6년 05월 21일 토요일
집단소송법 반대의 역사는 길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집단소송법을 도입하자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고 외환 위기였던 1997년에는 세계은행(IBRD)가 한국에 집단소송법을 도입하라는 조언을 했다. 하지만 도입논의가 된지 거의 30년이지만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계는 ‘소송이 남발되어 기업이 피해본다’는 논리로 집단소송법 도입을 반대해왔다.
전경련은 2000년 초반 증권관련집단소송법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보도자료 등을 통해 집단소송법 반대 논리를 확산해왔다. 전경련의 보도자료 ‘증권관련 집단소송제,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더 크다’(2000)는 “증권관련집단소송제는 순기능보다 남소 및 악의적 소송의 증가, 피소기업의 연쇄도산 등 부작용 많을 것”이라며 “일본·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에서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 사진=전경련 홈페이지 |
2003년 증권관련집단소송법안의 도입 이후에도 전경련은 ‘증권집단소송법안, 남소방지를 위한 철저한 보완 시급’(2003년9월17일), ‘소비자단체소송제도 도입은 시기상조’(2004년9월9일), ‘증권관련집단소송에 대한 기업의 대응수준, 크게 미흡’(2005년3월2일) 등의 보도자료와 연구 자료를 계속해서 발표했다.
가장 최근 자료인 ‘집단소송제 확대 논의 동향과 문제점’(2014년5월9일)에서도 전경련은 “미국의 경우 그 폐해로 인해 지속적인 개정이 이루어져 왔으며, EU의 경우에도 오랜 논의 끝에 미국식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배제하였다. 일본의 경우에도 한때 집단소송제 도입과 관련한 많은 논의가 있었으나, 기존의 일본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며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일반 부분에 확대하는 것을 반대했다.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집단소송법을 반대하는 측의 논리를 정리하자면 △남소 △일명 ‘기업 사냥꾼’같은 전문 변호사가 나타날 것 △기업이 크게 타격을 받을 것 △미국은 부작용이 많아 수많은 개정을 하고 있다는 점 △한국과 법체계가 같은 일본도 집단소송법을 시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 국내외 집단소송법 관련 일지. 디자인=이우림 기자. |
우선 집단소송법을 시행하면 남소가 일 것이라는 지적은 현실과 동떨어져있다. 한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만 봐도 그렇다. 법을 도입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7건의 소송밖에 이뤄지지 않았다. 충분하다 못해 지나친 보완대책을 둬 법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경우다. 집단소송법이 일반 분야로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보완대책이 함께 만들어질 것이고 이는 남소보다는 오히려 제대로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게 할 방향으로 갈 확률이 높다.
또한 ‘기업 사냥꾼’이라는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에 대한 우려는 기업 측이 만든 프레임으로 볼 수 있다. 경실련 금융개혁위원장 정미화 변호사는 이에 대해 “기업은 워치독을 기업사냥꾼이라고 속인다”며 “이는 기업들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예를 들어 교통신호 위반을 하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일명 ‘교통 파파라치’가 많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욕했지만 결국 교통질서는 좋아졌고 교통 파파라치는 사라졌다”며 “기업사냥꾼이 나타나 기업이 지키지 않는 규칙을 지키게 만든다면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 경실련 사무실에 붙어있는 2002년 '증권관련집단소송법' 도입 기자회견 사진. 사진=정민경 기자 |
집단소송제를 일찍부터 시작했던 미국이 부작용 때문에 법 개정을 자주했고, 우리와 법체계가 같은 일본이 집단소송법을 도입하지 않는다는 논리도 기업의 단골멘트다. 하지만 미국의 법 개정은 부작용 때문이라기보다 절차를 매끄럽게 하기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개혁연구소에서 발행한 ‘과연 집단소송의 후퇴인가?’(이지수)라는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개정안은 실체법면에서 바뀐 것이 없어 미국 집단소송의 후퇴인양 소개하는 것은 속단”이라며 “오히려 아직까지 집단소송은 기업들에게 비리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게 하는 억제 기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기업이 자주 드는 일본의 사례도 이제는 틀린 말이 됐다. 일본은 2013년 12월11일 ‘소비자재판절차특례법’을 도입했다. 이 법은 다수의 소비자에게 발생한 재산적 피해를 집단적으로 회복하기 위해 특정적격소비단체가 피해회복 재판절차를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일본에도 재계가 남소의 위험 등을 들며 반대해 미국과는 달리 청구적격을 엄격히 하고 청구 범위를 제한하는 식으로 조치를 더했다. 재계의 논리처럼 미국식 법체제가 맞지 않다면 일본식 소비자집단소송법을 들여오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는 상황이다.
▲ 일본의 소비자재판절차 특례법의 절차. 1단계에서는 사업자가 상당 다수의 소비자에 대하여 공통되는 사실상 및 법률상의 원인에 근거하여 금전을 지불할 의무를 진다는 사업자의 공통의무를 확인한다. 2단계에서는 대상 소비자의 채권을 개별적으로 확정한다. 출처=글로벌 소비자법제 동향 제1권 5호 |
하지만 전경련은 2016년에도 여전히 같은 논리를 반복하고 있다. 전경련 기업정책팀 측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집단소송법과 관련해 긍정적인 부분은 감정적인 측면”이라며 “하지만 기업 활동을 저해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허용하지 않고 있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물으니 전경련 기업정책팀은 역시 남소발생을 들었다. 남소가 과대 포장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도 전경련 측은 “한국은 미국과 달리 어떤 계기만 나오면 침소봉대한다”며 “소위말해 세월호 때, 대한민국의 모든 선장은 파견직이면 안된다고 주장했고, 그게 옳은지에 대해선 모두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10년 시행했지만 7건밖에 소송이 진행되지 않은 점을 지적해도 마찬가지였다. 전경련 측은 “증권관련에 집단소송법을 적용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증권관련집단소송은 주주이거나 기업 관련 인사지만 소비자는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기업의 물건을 썼는지 알 수도 없고 간접적인 피해까지 생각해 변호사가 소를 부추길 수 있는 상황도 있다”고 말했다.
▲ 집단소송제관련 정치권 공약. 디자인=이우림 기자 |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