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출신의 황당 지시, 이제라도 사과하라"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9년 12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그날 나는 서울 충무로의 허름한 술집에서 당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아래 진실위)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던 김성수 박사(57)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순배의 술잔이 돌아갈 때쯤 나는 김성수 박사로부터 생각지도 않은 하소연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하소연으로 시작된 일이 사건이 되고, 이후 만 6년하고도 3개월간의 끈질긴 법적 분쟁의 시초가 될 줄은. 김성수 박사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도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김성수 박사를 만나 '이게 말이 되나' 싶어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던 것이 때론 후회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뉴라이트 출신 진실위 위원장의 황당 지시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하소연으로 시작된 일이 사건이 되고, 이후 만 6년하고도 3개월간의 끈질긴 법적 분쟁의 시초가 될 줄은. 김성수 박사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도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낸 김성수 박사를 만나 '이게 말이 되나' 싶어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던 것이 때론 후회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뉴라이트 출신 진실위 위원장의 황당 지시
▲ 이영조 전 진실화해위 위원장. | |
ⓒ 연합뉴스 |
2006년 출범한 진실위는 과거 독재 권력 하에서 발생한 억울한 사건을 진정 받아 이를 조사 후 바로 잡아주는 국가기관이었다. 그런 진실위가 애초 본질과 다르게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였다.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진실위를 불편해 했다. 정치적 태생이 같은 사람들이 과거 자행한 범죄를 다시 조사하여 그 진실을 밝힌다 하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문제가 시작된 것은 여당이었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추천으로 진실위 상임위원이 된 이영조씨가 2009년 12월, 진실위 3대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였다.
그때 신임 위원장으로 부임한 이영조씨는 각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매우 뜻밖의 지시를 내린다. 2009년 3월 진실위가 발간한 영문보고서<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의 배포를 중단하라는 지시였다. 자신의 전임이었던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 제작하여 이미 상당수를 배포 완료한 보고서를 문제 삼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이명박 정부는 진실위를 불편해 했다. 정치적 태생이 같은 사람들이 과거 자행한 범죄를 다시 조사하여 그 진실을 밝힌다 하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문제가 시작된 것은 여당이었던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추천으로 진실위 상임위원이 된 이영조씨가 2009년 12월, 진실위 3대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였다.
그때 신임 위원장으로 부임한 이영조씨는 각 부서별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매우 뜻밖의 지시를 내린다. 2009년 3월 진실위가 발간한 영문보고서<Truth and Reconciliation>(진실과 화해)의 배포를 중단하라는 지시였다. 자신의 전임이었던 안병욱 전 위원장 시절 제작하여 이미 상당수를 배포 완료한 보고서를 문제 삼는 것은 누가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이영조 위원장은 왜 이러한 지시를 했을까. 김성수 박사는 이영조씨가 배포 중단을 지시한 영문보고서의 번역 담당 직원이었다. 그는 자신이 힘들게 만든 영문 보고서를 배포 중지 시킨 이영조 위원장에 대해 심한 분노를 표했다. 특히 그렇게 배포 중지된 영문 보고서가 위원회 복도에 쌓여있는 것을 보며 큰 모욕을 느꼈다고 했다.
김 박사의 항변에 나는 "그럼 이 문제의 부당함을 바로 잡기 위해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또 언론 취재 과정을 통해 이영조씨가 왜 영문 보고서의 배포를 중지시켰는지 그 이유도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해서 <오마이뉴스>에 첫 보도가 나간 때는 2010년 1월 5일. (관련기사:[단독] 좌파정권 흔적 지우려 영문책자 배포 중단?)
반응은 뜨거웠다. 문제는 그 반응이 긍정적인 뜨거움이 아니라 '부정적인 후폭풍'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진실위는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에 대해 "보고서 영문 번역이 엉망이기 때문"이라며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언론에 제기한 김성수 박사에게 계약 만료에 따른 퇴사를 통보한다. 형식은 문제 없어 보이지만 재계약 거부를 통한 '사실상의 해고'로 당사자는 이해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돌은 또 엉뚱하게 튀었다. "영문 보고서의 번역이 엉망"이라는 진실위 해명으로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 당한 김성수 박사 등 번역·감수자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이번엔 아예 이영조 위원장이 직접 돌을 던진 것이다. "전임 위원장이 쓴 부분은 전문 번역가의 도움을 받고 감수를 거쳐서인지 비교적 괜찮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엉망"이라며 번역과 감수 업무를 담당했던 이들을 한꺼번에 모욕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이영조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이었을까. 이상한 것은 "영문 번역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반발하던 김성수 박사 등 번역자들의 항변에 진실위는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을 한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지적해 달라는 번역자들의 요구에 진실위는 단 한 건의 번역 오류 사례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 박사의 항변에 나는 "그럼 이 문제의 부당함을 바로 잡기 위해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또 언론 취재 과정을 통해 이영조씨가 왜 영문 보고서의 배포를 중지시켰는지 그 이유도 정확히 알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해서 <오마이뉴스>에 첫 보도가 나간 때는 2010년 1월 5일. (관련기사:[단독] 좌파정권 흔적 지우려 영문책자 배포 중단?)
반응은 뜨거웠다. 문제는 그 반응이 긍정적인 뜨거움이 아니라 '부정적인 후폭풍'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진실위는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에 대해 "보고서 영문 번역이 엉망이기 때문"이라며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언론에 제기한 김성수 박사에게 계약 만료에 따른 퇴사를 통보한다. 형식은 문제 없어 보이지만 재계약 거부를 통한 '사실상의 해고'로 당사자는 이해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돌은 또 엉뚱하게 튀었다. "영문 보고서의 번역이 엉망"이라는 진실위 해명으로 심각하게 명예를 훼손 당한 김성수 박사 등 번역·감수자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이번엔 아예 이영조 위원장이 직접 돌을 던진 것이다. "전임 위원장이 쓴 부분은 전문 번역가의 도움을 받고 감수를 거쳐서인지 비교적 괜찮았지만, 나머지 부분은 엉망"이라며 번역과 감수 업무를 담당했던 이들을 한꺼번에 모욕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이영조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이었을까. 이상한 것은 "영문 번역은 아무 문제가 없다"며 반발하던 김성수 박사 등 번역자들의 항변에 진실위는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을 한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지적해 달라는 번역자들의 요구에 진실위는 단 한 건의 번역 오류 사례도 제시하지 못했다.
▲ 이영조 위원장이 배포를 중단시킨 진실화해위의 영문책자. | |
ⓒ 오마이뉴스 |
반면 보고서 영문 번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반박은 계속 이어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시드니 모닝 헤럴드>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에디터인 하미쉬 맥도날드씨였다. 그는 '진실이 위험에 처한 한국'이라는 칼럼에서 "이 책자를 읽고 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의 영어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며 "이 책의 영어는 분명하고 올바르다(it is quite clear and correct)"고 번역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영문 보고서가 엉터리라서 배포 중지했다'는 이영조 위원장의 주장과 '사실은 진보 성향인 전임 위원장의 글이 편향적이기에 영문 책자 배포를 중단한 후 파문이 일자 아무 문제없는 영문 번역을 문제 삼아 그 번역, 감수자들을 모욕한 것'이라는 양측의 주장은 민사 소송으로 번지게 된다. 김성수 박사 등 번역자 3명이 이영조 위원장에게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으로 총 6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때가 2010년 5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근 6년 전의 일이었다.
만 6년 3개월 끝에 대법원 "번역 문제 없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민사소송은 이후 근 6년간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거치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16년 4월 28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번역자들의 손을 들어준다.
'문법, 구문상의 오류' 등을 이유로 영문 보고서 배포를 중단시켰다는 이영조 전 위원장의 주장을 배척하고 소송을 제기한 김성수 박사와 박은욱씨, 마이클 윌리엄 하트 등 '번역, 감수자의 명예를 훼손시킨 책임을 물어' 총 2400만 원의 배상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이영조 전 위원장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이에 기자는 근 6년간의 소송 끝에 '영문 번역에 문제가 없음을 최종 확인한' 김성수 박사와 지난 5월 12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인 김 박사는 당시 파문으로 실직 후 상당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음은 김성수 박사와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기억하기에 2010년 1월 당시, 민사 원고 측이었던 이영조 당시 진실위 위원장의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 지시에 많이 분노하고 괴로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심정, 어떠했는가.
"어이가 없었다. '번역이 엉터리'라는 이유로 멀쩡한 진실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금지 시킨 이영조 위원장은 무엇이 엉터리인지 하나도 지적하지 못했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진실위 내부 게시판에 '영어가 엉터리라서 진실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금지 시켰다면 어떤 부분이 엉터리인지는 왜 지적하지 못하냐?'며 공개 질문했기도 했다.
또 이영조 위원장에게 진실위 직원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진실위 영문 보고서 번역 감수팀과 '영어 테스트'를 해서 진 쪽이 천만 원을 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 처음 <오마이뉴스> 보도 후 재계약을 거부당하여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진실위를 떠나야 했다. 영문보고서 배포를 금지하고 회수하는 조치를 폭로한 것에 대한 보복적인 인사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러했나?
"영문책자 배포 금지는 2009년 12월에 있었고 그 후 나는 곧 진실위 내에서 조사국으로 보내졌다. 나는 특기가 국제협력 전문계약직으로 진실위에 들어 왔는데 그런 나에게 엉뚱한 조사국 배치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지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4개월 후인 2010년 4월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위원회를 떠나야 했다.
그 후 이영조 위원장은 내 후임자를 새로 뽑았다는데 내가 하던 국제 협력과 국제 홍보를 동시에 다 할 수 없어 얼마 후 후임자가 그만 두었다는 말을 내부 직원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그래서 진실위 종료시까지 내 후임자가 없이 공석이었다고 한다.
또 2010년 초, 영문 보고서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릴 때 나는 진실위에서 회계 감사를 받았다. 물론 그 전 해에 감사원 감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영문 번역에 문제가 있다면서 왜 뜬금없이 회계감사를 했을까? 미운 직원 괴롭히기 혹은 길들이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감사 결과는 깨끗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은 2010년 1월 4일 이영조 위원장의 신년사다. 그날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위가 이룩한 성과는 다른 여러 나라에도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미진하다고 보는 분도 있겠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많은 성과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라며 국제협력의 성과를 진실위 전 직원들 앞에서 칭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마이뉴스>에 영문 보고서와 관련한 기사가 보도된 후 국제협력 담당자인 나는 국제협력과는 무관한 조사국으로 보내졌고, 그 후 낮은 인사평가, 재계약 없는 계약 종료로 실업자가 된 것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8개월간 실업자 생활을 했다. 참 억울했다."
"이영조씨,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결국 '영문 보고서가 엉터리라서 배포 중지했다'는 이영조 위원장의 주장과 '사실은 진보 성향인 전임 위원장의 글이 편향적이기에 영문 책자 배포를 중단한 후 파문이 일자 아무 문제없는 영문 번역을 문제 삼아 그 번역, 감수자들을 모욕한 것'이라는 양측의 주장은 민사 소송으로 번지게 된다. 김성수 박사 등 번역자 3명이 이영조 위원장에게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배상으로 총 60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때가 2010년 5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근 6년 전의 일이었다.
만 6년 3개월 끝에 대법원 "번역 문제 없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민사소송은 이후 근 6년간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거치는 치열한 법정 공방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16년 4월 28일,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번역자들의 손을 들어준다.
'문법, 구문상의 오류' 등을 이유로 영문 보고서 배포를 중단시켰다는 이영조 전 위원장의 주장을 배척하고 소송을 제기한 김성수 박사와 박은욱씨, 마이클 윌리엄 하트 등 '번역, 감수자의 명예를 훼손시킨 책임을 물어' 총 2400만 원의 배상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이 정당하다며 이영조 전 위원장의 상고를 기각한 것이다.
이에 기자는 근 6년간의 소송 끝에 '영문 번역에 문제가 없음을 최종 확인한' 김성수 박사와 지난 5월 12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현재 영국에 체류 중인 김 박사는 당시 파문으로 실직 후 상당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 확정 판결이 갖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듯하다.
다음은 김성수 박사와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이다.
- 기억하기에 2010년 1월 당시, 민사 원고 측이었던 이영조 당시 진실위 위원장의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 지시에 많이 분노하고 괴로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심정, 어떠했는가.
"어이가 없었다. '번역이 엉터리'라는 이유로 멀쩡한 진실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금지 시킨 이영조 위원장은 무엇이 엉터리인지 하나도 지적하지 못했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서 진실위 내부 게시판에 '영어가 엉터리라서 진실위 영문 보고서를 배포금지 시켰다면 어떤 부분이 엉터리인지는 왜 지적하지 못하냐?'며 공개 질문했기도 했다.
또 이영조 위원장에게 진실위 직원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진실위 영문 보고서 번역 감수팀과 '영어 테스트'를 해서 진 쪽이 천만 원을 내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답이 없었다."
- 처음 <오마이뉴스> 보도 후 재계약을 거부당하여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진실위를 떠나야 했다. 영문보고서 배포를 금지하고 회수하는 조치를 폭로한 것에 대한 보복적인 인사로 보이는데 실제로 그러했나?
"영문책자 배포 금지는 2009년 12월에 있었고 그 후 나는 곧 진실위 내에서 조사국으로 보내졌다. 나는 특기가 국제협력 전문계약직으로 진실위에 들어 왔는데 그런 나에게 엉뚱한 조사국 배치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지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4개월 후인 2010년 4월 재계약을 하지 못하고 위원회를 떠나야 했다.
그 후 이영조 위원장은 내 후임자를 새로 뽑았다는데 내가 하던 국제 협력과 국제 홍보를 동시에 다 할 수 없어 얼마 후 후임자가 그만 두었다는 말을 내부 직원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그래서 진실위 종료시까지 내 후임자가 없이 공석이었다고 한다.
또 2010년 초, 영문 보고서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릴 때 나는 진실위에서 회계 감사를 받았다. 물론 그 전 해에 감사원 감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결론이 났지만 말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영문 번역에 문제가 있다면서 왜 뜬금없이 회계감사를 했을까? 미운 직원 괴롭히기 혹은 길들이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감사 결과는 깨끗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은 2010년 1월 4일 이영조 위원장의 신년사다. 그날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위가 이룩한 성과는 다른 여러 나라에도 좋은 모범이 될 것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미진하다고 보는 분도 있겠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많은 성과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라며 국제협력의 성과를 진실위 전 직원들 앞에서 칭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오마이뉴스>에 영문 보고서와 관련한 기사가 보도된 후 국제협력 담당자인 나는 국제협력과는 무관한 조사국으로 보내졌고, 그 후 낮은 인사평가, 재계약 없는 계약 종료로 실업자가 된 것이다. 내 생애 처음으로, 두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8개월간 실업자 생활을 했다. 참 억울했다."
"이영조씨,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 김성수 박사. | |
ⓒ 고상만 |
- 이영조 당시 위원장 측과 장기간의 민사 소송을 하면서 혹시 합의를 제안 받거나 또는 사과하겠다는 의사 표시 등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1심 때 법원에서 합의를 하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내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변호사가 '법원에서 합의를 하라고 했으니 그 제안을 받아들이시지요'라고 권고했다. 그래서 판사에게 합의를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영조 위원장 측에서 오히려 합의를 거부했다. 이때도 역시 어이가 없었다. '가해자가 오히려 큰 소리 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 이영조씨를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싱크탱크 경기연구원 이사로 새로이 영입했다. 어떻게 보나?
"이영조씨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광주민중반란', 제주 4.3항쟁을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제주 폭동'이라고 매도해서 지난 19대 국회 총선 당시 새누리당 강남을 공천이 취소된 인물이다.
그런 이영조씨를 경기연구원 이사로 임명한 남경필 지사에게 묻고 싶다. 남 지사는 광주시민을 반란군이라 생각하는가? 또 제주도민을 폭도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광주 5.18운동 관련단체와 제주 4.3 항쟁 단체에서 남 지사에게 강력하게 이영조씨 영입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준하 선생님 말씀처럼 '못난 조상이 될 순 없지 않은가?' 김대중 전 대통령 말씀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진실위 영문 보고서 배포 중지 지시로 파생된 이 사건의 중요한 의미를 정리한다면?
"진실위 영문 보고서 사건의 의미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문제다. 둘째는 누구보다 진실해야 할 진실위원회 위원장이 허위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영조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태도다.
사실 이 영문 보고서를 발간하기 전, 나는 이영조 당시 상임위원에게 영문 원고를 검토해 달라고 2008년 11월부터 무려 3개월간 시간을 줬다. 하지만 그 기간 중 이영조 위원장은 단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을 수정하라고 지시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보고서 발간을 위한 결재도 그가 했다. 그런데 위원장으로 취임 하자마자 갑자기 '영어 오역'이라고 배포 금지를 지시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셋째는 현재에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문제다. 나는 소송자이면서 번역자의 한 사람으로서 '과거 억울한 사람의 누명을 풀어주고 해결해 줘야 할 진실위'가 오히려 거짓과 허위로서 억울한 사람을(나를 포함한 번역 및 감수자들) 만들어 낸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나는 이영조씨가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머리 숙여 깊이 사죄하기를 기대한다."
- 무려 6년여 만에 사건은 일단락되었는데 향후 계획은?
"한국 역사를 크게 후퇴시킨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비록 몸은 영국에 있지만) 계속하고 싶다. 그리고 향후 진실위가 또 생긴다면 귀국하여 진실위 활동을 해외에 알리는 국제협력과 국제 홍보 일을 다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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