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주공원에서 5.1유가족, 야당 정치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36주년 5.18민중항쟁 전야제 민주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 |
ⓒ 권우성 |
5.18민주화운동 36주기를 맞았다. 올해도 변함없이 가장 핵심적인 '5.18 문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기념식에서 제창하는가, 합창하는가'가 되고 말았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줄곧 제창해왔던 노래를,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국론분열을 이유로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국 수구정권의 수준을 보여주는 유치하고 졸렬한 처사다.
그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광주시민은 물론 야권세력, 심지어 여당까지 바로잡기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국론분열이 우려되니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해마다 5.18주간이 다가오면 온 야당이 나서서 정부여당에게 노래 부르게 해달라 청원을 하고, 정부여당은 기다렸다는 듯 거부하는 희한한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오월 문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하는 것 말고는 모두 해결됐는가? 오월 문제의 핵심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느냐 마느냐'인가?
1993년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5.18관련 단체들은 '5·18문제 해결 5대 원칙'을 합의한다. 그동안 '폭동'과 '사태'로 취급당하던 오월항쟁을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성격 규정하려는 김영삼 문민정부와 궤를 같이 하는 흐름이었다.
'5·18문제해결 5대 원칙'은 ▲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명예회복 ▲ 집단 배상 ▲ 기념사업이다. 이 가운데서도 5·18당사자들과 시민사회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은 것은 ▲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명예회복이었다.
명령받아 학살 가담한 자는 있는데 명령자가 없다니
'5·18문제해결 5대 원칙'은 ▲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명예회복 ▲ 집단 배상 ▲ 기념사업이다. 이 가운데서도 5·18당사자들과 시민사회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은 것은 ▲ 진상규명 ▲ 책임자 처벌 ▲ 명예회복이었다.
명령받아 학살 가담한 자는 있는데 명령자가 없다니
▲ 12·12 및 5·18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1996년 8월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시작에 앞서 기립해 있다. | |
ⓒ 연합뉴스 |
우선 5.18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살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됐는가.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 5·18 학살관련자 16명을 기소했다. 1997년 4월 대법원은 전두환·노태우·황영시씨에게 '내란죄'를 적용, 무기 등 중형을 확정 판결했다.
그러나 검찰이 작성한 10만여 쪽에 달하는 신문조서 그 어디에도 '발포 명령자'는 없었다.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수백 명인데 총을 쏘라고 명령을 내린 자는 없다니…. 광주 금남로 등 도처에서 학살을 직접 실행한 현장 지휘책임자들이 단 한 명도 기소당하지 않았던 것은 이들이 '상부 명령에 따라 행동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명령을 받아 학살에 가담한 자는 있는데 제 나라 국민을 죽이라고 명령한 자는 없다니….
지난 17일 발간된 <신동아> 6월호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그때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하겠어,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라면서 "사실 광주사태하고 나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된 5.18을 여전히 '광주사태'라고 칭하는 그는 "역사적 책임감으로 사과할 의향은 없느냐"는 질문에 "광주에 내려가 뭘 하라고요"라고 반문했다. 이 짧은 반문에 가득 차있는 5.18에 대한 조롱을 본다. 섬뜩하다, 제대로 진상규명하지 못한 결과다.
진상규명이 엉망이니 책임자 처벌도 엉망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됐을 리 없다. 책임자 처벌은 곧 발포명령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광주학살과 관련돼 기소돼 처벌 받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군대 위계에 따라 살상을 저지른 충실한 군인만 있을 뿐, 제 나라 국민을 도륙한 학살자들은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발포 명령자도 밝혀내지 못하고 책임자도 한 명 처벌하지 못했는데 명예회복이라도 제대로 됐겠는가. 전 전 대통령이 침묵을 깨고 그토록 민감해하던 '광주 문제'를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떠벌일 수 있는 것은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로,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베'라 불리는 '우익 꼴통'들이 광주희생자들을 홍어로 조롱하는 짓거리와 큰 차이 없는 역사에 대한 조롱이다.
우리가 정부여당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게 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는 사이, 저들은 한 패가 돼 광주를, 오월을 조롱하는 영역을 확대해왔다. 학살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주시민을 학살하라고 명령한 자를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금 같은 가족과 이웃을 도륙한 살인마들을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은 오월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과제인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을 희석시키는 물매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청원하는 사이, 우리들의 청원을 집권세력이 유치한 논리로 거부하는 사이, 학살에 책임 있는 자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골프를 치고 돌아다니고, 이 피맺힌 오월에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나보고) 광주에 내려가 뭘 하라고요"라며 실컷 조롱을 하고 있다.
'학살자'들을 처벌의 심판대에 세우자
▲ '임을 위한 행진곡' 목청껏 부르는 5.18유가족들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금남로에서 열린 '제36주년 5.18민중항쟁 전야제'에서 유가족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껏 부르고 있다. | |
ⓒ 권우성 |
부탁컨대 이제 더 이상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해달라고 청원하지 말자. 5.18기념식에서 노래 제창하는 것이, 광주를 학살한 발포명령자 한 명 밝혀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제발 광주여, 오월이여. 더 이상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해달라고 구걸하지 말자. 오월 광주는 저들이 쳐놓은 외로운 죽음의 수렁 속에서도 빵을 나누고 주먹밥을 나누며 행복했다. 노래 부를 힘을 모아 학살자들을 끝까지 추적해 처벌의 심판대에 세우자.
세월은 흘러갔다. 강산도 변했다. 그러나 밝혀진 건 하나도 없고, 바뀐 건 역시 없다. 이것이 2016년 5.18 민주화운동 36주기의 민낯이다. 다시 금남로에서 <오월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 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실려 어디 갔지
망월동에 부릅뜬 눈 수천의 핏발 서려있네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산자들아 동지들아 모여서 함께 나가자.
욕된 역사 고통 없이 어찌 깨치고 나가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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