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이나 말 하는 사람이 명심해야 할 것이, 논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 말도 하고 싶고, 저 말도 하고 싶어 이 말 저 말 다 섞어놓는 것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말 하는 사람이야 후련할지 모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아먹을 도리가 없다. 실패한 문장이요, 실패한 연설이다.
기자나 작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치가도 그렇다. 정치가 중에서도 대통령이 국회에서 하는 연설이야말로 정치연설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의 16일 국회연설이 논지를 흐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날 연설의 주제는 당연히 북한 핵실험과 위성발사로 인한 한반도 위기상황이어야 했다. 위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이에 대해 정부가 취해 온 여러 조치에 대한 설명, 그리고 앞으로 취할 정책방향을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국회와 국민의 협조를 요청하는 데에 집중했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 테러방지법과 북한인권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 4법을 하루속히 통과시켜 주시길 부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다시 북한과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면서 연설을 끝냈다.
전형적으로 논리의 일관성을 잃어버린 실패한 연설이다. 도대체 한반도 위기 상황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법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나. 전혀 딴 이야기다. 테러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북한의 핵과 장거리 로켓이 문제인데 북한이 테러를 하는데 핵과 미사일로 하나. 만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그건 국방부의 문제지, 국정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니 국민들로서는 대통령이 부득부득 국회연설을 하겠다고 한 것이 한반도 위기상황에 대해 꼭 말할 것이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이런 위기상황을 이용해 테러방지법 등을 통과시키라고 국회를 윽박지르기 위해서였는지 헷갈리는 거다.
그런데 바로 어제 그 의문이 풀렸다. 테러방지법 등을 통과시키고 싶어서 현재의 위기 국면을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국정원이 18일 국회에서 김정은이 최근 대남 테러를 위한 역량 결집을 지시했다고 슬쩍 흘리자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바로 “북한이나 국제테러단체의 테러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테러방지법이 조속히 통과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다”고 장단을 맞춘다.
그러면 그렇지, 최고의 연설 전문가들이 모여 있을 청와대가 그토록 중요한 대통령 국회연설의 논지를 흐릴 리 없다. 보아하니 이 기회를 이용해 국정원은 테러방지법을, 재벌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법, 미국은 사드를 하나씩 나누어 줄 심산이다. 장마철에 폐수를 흘려보내는 악덕기업주 같은 수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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