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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8일 목요일

이념보다 사람, 종교보다 사랑이 먼저다


남오성 목사 2016. 02. 17
조회수 1318 추천수 0
불교도-이슬람교도-동성애자라도 어떠리

rain_80431_80144_ed.jpg» 가톨릭과 성공회 수녀, 불교 비구니 스님, 원불교 여자 교무 등 다양한 종교의 여성수도자들 모임인 삼소회원들이 함께 세계 종교순례에 나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걷고 있다.
현진이는 내 초등학교 친구다. 덩치가 크고 운동도 잘했던 그녀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 악동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였다. 당시 고무줄 끊기, 치마 들치기, 브래지어 뒷끈 잡아당기기 등의 주범이었던 나는 결국 붙잡혀 그녀에게 꼬집기 3회의 처벌을 받았다. 그때 얼마나 아팠던지 너무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나는 교회 목사, 현진이는 사찰음식점 사장으로 다시 만났다. 현진이는 불교 음식을 연구하고 전통 채식당을 열어 종교음식 전문가가 되었다. 몇 번 먹어봤는데, 타종교에 배타적인 개신교의 피가 흐르는 내 입맛에도 상당히 맛있었다. 내 아내가 붓글씨 작가라고 했더니 자기가 일하는 평화운동을 도와달라고 해서 주로 불교인들이 참여하는 ‘꼬마평화도서관’의 현판을 써줬다. 그게 인연이 되어 어색한 불교 동네의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대학 시절, 미국 시애틀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영어 선생 피터를 만났다. 피터는 유능한 선생으로 인기가 높았다. 영어를 못하는 외국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세심하게 가르치는 피터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피터가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날부터 나는 피터가 불편해졌다. 전과 같은 자연스런 대화와 시선도 왠지 뜨끔거렸다. 하지만 피터는 여전히 좋은 선생이었다. 훌륭한 인격과 탁월한 실력으로 학생을 감동시켰다. 그렇게 내 기억에 피터는 불편하지만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rain_75359_48255_ed.jpg» 로마의 한 성당에서 같이 기도하는 삼소회 여성 수도자들.
잔낫은 이슬람 여자아이다. 방글라데시로 여름 선교여행을 갔다가 이슬람 현지인 집에서 하룻밤 지낼 기회가 생겨 내 딸과 동갑인 그녀의 집에 묵게 되었다. 토굴 같은 집에서 장애 있는 부모와 사는 잔낫은 귀한 손님 왔다고 명절 특식을 내왔다. 입맛에 안 맞아 힘겹게 손으로 떠먹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어 선풍기가 멈췄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녀는 손전등을 켜고는 연신 내게 부채질을 해댔다. 고맙지만 미안해서 “나도 해주마” 했지만 괜찮다고 웃으며 땀을 뻘뻘 흘리며 부채질을 해줬다. 그러고는 자기 침상을 내게 양보하고 찬 바닥에서 잠을 잤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잔낫은 나를 부둥켜안고 울며 내년에도 또 오라고 했다. 순간 감동되어 그러겠다 약속한 게 일 년 내내 마음에 걸려 이듬해 여름, 여러 일 제쳐놓고 그 집에 가서 또 잤다. 그렇게 잔낫은 나의 이슬람 친구가 되었다.
불교, 동성애, 이슬람. 나와 다른 모든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신영복 선생님의 층간소음 해결법을 응용해보자. 위층 아이가 뛰어서 시끄러우면 올라가서 아이스크림 사주면서 얼굴도 보고 이름도 물어보라는 것이다. 왜냐면 아는 애가 뛰면 덜 시끄럽기 때문이란다.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이념, 종교, 성향이 불편하거든 마음을 열고 친구부터 사귀어 보면 어떨까? 나와 다른 세상의 친구가 있다면 오랜만에 만나 밥이라도 한번 먹으면서 얘기해보면 어떨까? 아는 친구가 있으면 덜 불편하지 않을까? 이념보다 사람이, 종교보다 사랑이 먼저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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