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장인어른 그리고 나
마지막 인사
*메르스 환자 치료 병실의 모습. 신소영 기자
나는 88번 환자 C다. 6번 환자 F의 사위다. 장인은 설사 증세로 갔던 병원에서 제1번 감염자의 옆 병실에 머물렀다.
그 하룻밤이 운명을 결정지었다. 메르스가 뭔지, 격리병동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걱정 마십시오. 병명이 밝혀졌으니 오히려 다행입니다. 감염병 분야에선 최고랍니다.” “그래 고생이 많다.” 그러나 의료진과의 면담에서 기대는 급변했다. 마스크 속 책임자의 입은 선언했다. “이 바이러스는 간단히 치료될 게 아닙니다. 50대는 50%, 60대는 60%, 70대는 70%, 사망할 겁니다.”
장인은 어떤 상황에 직면하셨을까? 5시간 후였다. 주치의로부터 기도 삽관에 동의해 달라는 급보가 왔다. 다음날엔 신장 투석, 그 다음날엔 체외혈액순환장치 사용에 동의했다. 그동안 우리들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고, 아이들이 전하는 그림 메시지를 속달로 보냈다. 환자가 무의식일지라도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손녀들이 보내온 그림책이 여기 있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망 당일. 나는 천재일우의 허락을 겨우 얻어 격리병동에 들어갔다. 알지 못하는 클래식이 울리고 있었다. 간호사들이 두 겹의 방호복을 입혀 주었다. 장갑과 신발과 헬멧을 씌우고 공기정화기까지 착용했다. 나는 영화에서나 보던 우주인이 됐다. 비둔한 몸으로 붉은 선이 그어진 복도를 따라갔다. 장인은 그 5시간 동안 이 우주인들을 만났을 것이다. 사흘 만이다. 병실 자동문이 열렸다. 장인을 만났다. 의식이 없다. 참혹하고 슬픈 육체였다. ‘아버지 접니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통곡이 쏟아졌다.
지난 20년,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장인과 사위였다. 그분은 아들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분을 아버지라 불러왔다. 한 손을 가슴에 얹고 손을 잡았다. 아플 정도로 딱딱했고, 표현할 수 없이 차가웠다. “아버지, 얼마나 추우셨어요? 얼마나 아프셨어요? 아버지를 이렇게 이별할 줄은 몰랐습니다. 드릴 말씀이 너무 많은데, 천추의 한이 될 겁니다.” 순간 환자의 육체에서 찌르르 전류가 느껴졌다. 생명이 끊어지기 전까진 무의식도 의식이라고 카를 융이 말했던가.
시간이 촉박했다. 가족을 대표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다음 세상에서 꼭 다시 만나요. 오직 하늘이 판단하시겠지만, 아버지께 세례를 드리고 싶어요.” 차디찬 이마에 손을 얹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니 육신은 비록 죽어도 영혼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엎드려 큰절을 드렸다. 세상의 마지막 인사였다.
밤늦어 사망하셨다는 전화가 왔다. 향년 71. 시신은 ‘법’에 따라 다음날 곧바로 화장되었다. 격리자인 가족은 올 수 없다고 못박았다. 종일 어지럽고 구토가 났다. 그로부터 7일 후 나 역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일주일 만에 완치 판정을 받고 살아 돌아왔다. 세상은 변한 게 없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니셜로 표기된 지난 기사 속에 떠돈다. 아이들의 그림책은 개봉되지 않은 채 돌아왔다.
가보지 못한 그날이 나를 괴롭힌다. 장인은 화장을 싫어하셨었지. ‘벽제. 이별하기 어려우면 가보지 말아야 할, 벽제. 끊어진 다리.’ 배반의 시간이다.
천정근(안양 자유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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