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5-08-16 17:11수정 :2015-08-16 18:00
고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66)씨.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영원한 광복군’ 장준하 선생 40주기…장남 장호권씨 인터뷰
“박 대통령, 가족의 친일 행각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김무성 대표의 ‘부친 행적 미화’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기득권 누려온 친일파 후손들, 또다시 ‘이완용’ 될 수 있어”
“진정한 광복은 외세 영향 없이 자주독립과 통일 이뤄져야”
“박 대통령, 가족의 친일 행각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김무성 대표의 ‘부친 행적 미화’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기득권 누려온 친일파 후손들, 또다시 ‘이완용’ 될 수 있어”
“진정한 광복은 외세 영향 없이 자주독립과 통일 이뤄져야”
“진정한 광복은 외세의 영향 없이 자주독립과 통일이 이뤄져야 가능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을 하는 정신으로 자주독립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합니다.”
‘영원한 광복군’으로 불리는 장준하(1918~1975) 선생의 40주기를 맞아 장 선생의 장남인 장호권(66)씨는 “광복 70년이 지났지만 수도 한복판에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친일파 후손들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장악하는 등 진정한 광복을 맞지 못하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씨는 지난 14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민족의 미래를 위해, 일제에 충성한 친일 민족반역행위자들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그들을 최소한 지배세력에서 몰아내고 정통성 있는 세력이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씨는 “독립운동가 자손들은 70년 동안 숨죽여 지낸 반면 친일 민족반역행위자 후손들은 기득권을 누려왔다. 이들은 또다시 이완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동생 박근령씨의 최근 ‘친일 발언’과 관련해 장씨는 “혈서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한 만주 군관학교 출신의 아버지 박정희에게 세뇌되어 뼛속까지 친일임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가족의 친일 행각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홍영표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나의 조상은 친일파였다’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 또 우장춘 박사(1898~1959)는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가담한 부친 우범선의 죄과를 씻기 위해 좋은 자리도 마다하고 평생 농업 연구에 몰두해 국민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업적을 남겼다. 가족의 망언에 대해 사과조차 못하면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박근령씨는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황폐하’라는 칭호를 거듭 사용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문제 삼는 것은 내정간섭이다’, ‘일본에 위안부 문제 사과를 자꾸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 바로 가기 : 박근령 “일본에 사죄 요구는 바람피운 남편 소문 내는 것”
200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다는 그는 “박근혜 자체가 밉다기보다는 아버지의 친일 반민족행위와 군사독재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우장춘 박사가 걸었던 삶처럼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며 조용히 살기를 바랐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친일·독재세력이 부활해 대한민국 역사를 후퇴시켰다”고 말했다.
‘독립운동 왜 했냐’ ‘일본 지배 덕분에 근대화’ 등
최근 젊은 세대 역사 인식에 안타까움 토로하기도
그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부친 행적 미화 논란에 대해서도 “일본에 충성한 사람을 독립군이나 애국지사인양 탈바꿈시키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며 “홍 의원처럼은 못하더라도 친일파 후손으로서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에 대해서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초청강연을 해온 장씨는 “민족 정통성이 없는 친일세력들이 나라를 관리하면서 범죄사실을 숨기기 위해 진실과 역사를 왜곡시켜왔다. 왜곡된 역사를 배운 젊은 세대들로부터 ‘독립운동을 왜 했냐’는 얘기가 나오고, 심지어 ‘일본이 지배하지 않았으면 근대화가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며 역사 바로 알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아버지가 광복군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임시정부에 찾아간 것이 26살 때였다. 아버지가 뜻을 못이루고 돌아가실 때 내 나이가 26살이었다”며 “광복 70년과 아버지의 40주기를 맞아 마음이 착잡하고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사무총장직을 그만둔 그는 다음달 서울 마포에 장호권근현대사문제연구소를 열고 본격적으로 자주독립과 통일문제를 파고들 예정이다.
오는 10월께는 장준하 선생의 항일 수기인 <돌베개> 후편을 발간할 계획이다. <돌베개>는 조국 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장준하 선생의 회고록으로, 중국 쉬저우 일본군 병영에서 탈출해 임시정부 광복군에 투신한 6000리 대장정과 1945년 11월 임시정부가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2년에 걸친 독립운동 활동상이 담겨 있다. <돌베개> 후편은 장 선생이 남긴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자료와 기억을 더듬어 해방 이후 이승만 정권의 난맥상, 한국전쟁, <사상계> 발간, 4·19혁명, 5.16군사쿠데타에 이어 유신철폐 100만인 서명운동까지 장 선생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한국현대사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정권에 맞서 유신철폐운동을 벌이다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부는 실족사라고 발표했지만 2013년 3월 장준하 선생 사인 진상조사공동위원회는 ‘외부 가격에 의한 두개골 함몰’이 사인이라는 유골 정밀감식 결과를 내놨다.
2008년 8월15일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묘역에서 열린 육영수씨 제34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 일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박근령씨. 그 옆으로 박지만씨와 부인 서향희 변호사도 보인다. 자료사진
최근 젊은 세대 역사 인식에 안타까움 토로하기도
박정희 독재에 저항하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두 사람의 숙명적인 대결은 1945년 8월 첫 만남 때부터 비롯됐다. 장준하(왼쪽)는 광복군 제3지대 소속의 육군 중위로, 박정희(오른쪽)는 일제의 괴뢰국 만주군의 육군 소위로 베이징에서 해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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