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참된 의미는 통일에 있다. 광복 70년과 함께 분단 70년이 따라 다니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통일할 것인지를 결코 묻지 않는다. 통일의 방법이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의 통일에는 오직 결과만 있을 뿐이다. 이에 가장 앞장서 있는 사람이 현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가 '통일대박'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모두 대통령처럼 통일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다. 이들에게 통일은 오직 “북한만 무너지면” 되는 것이다. 북한이 어떻게 무너질 것인지, 왜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북한 붕괴에 의해 이루어지는 '통일대박'에만 함몰되어 있다. 겨우 찾은 대답이 “동독이 갑자기 붕괴되어 통일되었기 때문에 남북한의 경우에도 그럴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정말 그럴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너무도 급진적으로 이루어졌기에 독일 통일은 ‘우연의 산물’일까? 아니다, “역사에는 우연이라는 것이 없다. 독일통일에서는 이것이 적용되지 않는다.
결코 가지 말아야할 북한 붕괴의 통일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이 요구한 것이다. 그 요구는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동유럽 국가에 대한 개혁과 개방(페레스토로이카, 글라스노스트)과 연결된 시민혁명을 통해 분출되었다. 그들 모두는 통일을 하면 자유롭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동독 주민들의 그와 같은 믿음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그것은 분단 아래 부단히 이루어진 양독간의 길고 긴밀한 교류·협력을 통해 생겨났던 것이다. 교류협력을 통해 얻었던 대서독의 경험이 통일을 하면 서독과 같이 자유롭고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르바초프를 등에 업고 거리로 나왔고 동서독간 단절의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한사코 통일하려고 했다. 그것도 서독 속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통일 말이다. 서독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평화통일을 쟁취했다. 동독주민의 시민혁명으로 쟁취한 통일. 그것이 “동독의 붕괴”에 의한 통일이라고 한다면, 그 붕괴는 동독 주민 스스로가 원했던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사회적 실험”을 원치 않았다. 서독처럼 당장 풍요롭게 살 수 있는 통일을 원했고, 그것을 서독이 가능케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럼에도 독일통일은 결코 잘못된 통일이 아니다. 비록 많은 부작용과 문제를 가져왔지만, 적어도 동독 주민의 마음을 샀던 통일,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이룬 통일, 그리고 그것을 주변국들이 동의한 통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솔직히 말해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형태의 통일이 어디 있겠는가? 상대가 강하게 원하고, 정부가 완벽하게 받아들이고, 더구나 평화적으로 이루어진 통일. 이것이 어떻게 독일에게 가능했을까? 동독주민의 마음이 서독에게 빼앗겼기 때문이 아닐까? 서독은 스스로도 모르게 동독주민의 마음을 샀고. 통일이 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이었다.
상대의 마음을 사지 못하면 그에게 다가갈 수 없다. 한반도가 통일하려면 동독주민이 통일을 원했던 것처럼 이를 가능케 하는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통일이다. 북한 붕괴를 전제한 통일은 여기에 낄 자리가 아니다. 결코 가지 말아야 할 길이다.
말의 성찬을 거두어라
집권 3년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은 화가 치민다.'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중 무엇 하나라도, 조금이라도 실천되고 있는 것이 있는가? 실천되지 않는 것은 전부 북한 때문이라는 타령만 계속해야만 할까? 북한이 그렇다고 치부하고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말로 아무런 대안도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대안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인가?
왜 대통령은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지 모르겠다. 신뢰 형성을 위해 전제조건을 달지 않고 남북한간 대화를 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김정은과도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스스로 한 약속은 내동댕이치면서 화려한 말의 성찬은 끝닿는 데가 없다. “전력·교통·통신 분야 인프라 구축, 개성공단의 국제화, 지하자원 공동개발, 남·북·러 가스관 부설과 송전망 구축사업, 나선 등 북한의 경제특구 진출, 보건·의료 협력과 녹색경제(농업·조림·기후변화)협력 체계화,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학술ㆍ종교 등 다방면의 교류, 인도적 문제의 지속적 해결, 대북지원의 투명성 제고와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우선 지원, 이산가족 문제에서의 실질적 성과, 국군포로와 납북자 귀환 도모, 남북간 대표부 역할을 할 수 있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서울과 평양에 설치, 북한의 국제금융기구 가입 및 국제투자 유치 지원” 이게 말의 성찬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한나라의 지도자가 이래서야 되겠는가? 뜻도 없고 마음에도 없는 말만 계속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이라도 ‘선(先) 조건 충족, 후(後) 관계개선이라는 구도를 버리라’라고 말하고 싶다. '원칙'으로 질못 포장된 대북 우월적 자세를 바꾸고, 북한이 곧 붕괴할 수 있다는 생각, 못살고 가난하기 때문에 남한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굴복해야 한다는 도그마를 버리라고 하고 싶다. 북한이 수용하지 않고 있다는 상황 그 자체를 먼저 인정하라. 우리 헌법 제4조에 담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을 지부터 생각하고,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대통령이 지고 있다는 헌법 제66조를 한시라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통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통일이 가능하다. 북한 주민들이 모두 남한 사회로 통합하는 데 동의를 하는 것이 통일을 이루는 가장 확실하고 바람직한 방법이다. 북한 사람들 모두의 동의를 얻어 하는 통일이 과연 가능하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건 북한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갖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남북간의 교류와 접촉의 면을 넓히는 일 외 다른 것이 있는가? 영영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북한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 변해있다. 개성공단에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내심 그 곳에서 오래 일하기를 원한다. 남한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고맙게 생각한다. 일하는 동안 우리에게 동조하는 의식을 갖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는 돈 주고도 얻기 힘든 효과다. 이것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북한과는 어떤 형태의 통일을 추진해야 할까? 다름 아닌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다. '사실상의 통일'은 남북한이 경계를 초월하여 서로 넘나드는 상태다. 남북간에 자본·기술·노동력이 왕래하고 자유 방문과 관광이 가능한 상태가 ‘사실상의 통일’이다. 남북교류협력이 부모라면 ‘사실상의 통일’은 그 속에서 태어나는 아이와 같다. 교류협력이 활성화하면 할수록 북한은 그만큼 빨리 '부식(erosion)'된다. 그런 어느 순간 정치·제도적인 통일은 요식 행위가 될 것이다.
서독의 브란트 수상의 대동독 정책과 같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조처가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을 서로 다른 체제의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그들 스스로 체제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통일을 말하지 않는, 북한의 체제변화를 원하나, 강요하지 않는. 이것이 북의 진정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을 인정한다는 것이 북한의 모든 것, 모든 행위를 다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북이 존재하고 있음을 인정하라는 이야기다. 북한 인권이 참혹하고, 경제가 어려운데 도발만 일삼는다고만 이야기하지 말고, 대화도 하고 협상도 해서 그들의 변화를 조금이라도 능동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의 통일’에 다가서는 것이다.
북한을 추동해 내듯 미국을 추동해 내라. 북미관계 개선에 한국이 앞장서야 한다. 적어도 남북관계개선과 미·북관계 개선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하라. 우리가 남북관계개선을 하겠다는 데 미국이 막는다면 그것을 하지 말게 하라. 그만한 힘이 있지 않는가? 지금이라도 주어진 6자회담의 틀을 한반도의 평화를 실천해 나가는 발판으로 삼아라. 북한 핵문제는 이미 국제문제다.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국제 차원에서의 공조 유지가 더 중요하다. 다자간 안보협력체제의 형성에 남한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유럽의 CSCE(유럽안보협력위원회)와 같은 '동북아 안보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한국이 반드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남북한간에는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제2차 남북정상선언 합의문은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제4항)고 명시해 놓고 있다. 왜 이를 이용하지도 실현시키려고 하지도 않는가? 제발 북한의 비핵화에만 모든 것을 걸지 마라. 우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아니 잘못된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은 남북 쌍방을 하나로 묶는 수단이다. 상호 긴장을 완화하고 민족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다. 남북관계가 정치적·군사적인 관계로 인해 악화되어도 민간차원의 남북경협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당장이라도 그 바탕을 마련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구축하라, 악화된 정치·군사 환경에서도 기업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투자된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경제협력의 바탕을 마련하라. 이것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민간단체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남북경협은 공공재다. 정치·군사적 긴장완화를 추동하는 기능을 한다. 개성공단 건설과 금강산 관광을 위해 군사 분야의 합의 도출이 필수적이었던 것이 그 예다.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특구를 활성화하고 북한의 타 지역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실질적인 남북경제공동체 건설의 시작이다. ‘사실상의 통일’은 경제특구건설을 통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경제특구는 북한 지역에 남한의 생산 환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집단적 진출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기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남측 요구가 그대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 지역 특구는 남한과 필수적으로 연결된다. 해로, 육로, 항공로, 통신으로 남북이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물적 교류와 인적교류, 정보교류가 궁극적으로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심적인 변화를 일으키게 할 것임이 틀림없다. 이것이 북한 변화의 원동력이다. 작은 규모라도 좋다. 경제특구를 평양·남포를 비롯, 점차 신의주나 나진·선봉지역에 조성하고, 남쪽과 연결시키자. 베를린이라는 동독 내 ‘섬’이 독일통일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라.
이것은 명령이다
꼭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북한과 통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대북 교류협력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가 통일,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내용과 형태의 통일이기에 우리는 한사코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
교류협력이 돌아가는 것 같지만 가장 빠른 통일의 길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먼저 통일과 같은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북한을 방문할 수 있고, 소규모라도 여행할 수 있고,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통일이다. 사업을 위해 언제든지 인원과 물자가 육로를 통해 오고갈 수 있게 되면 그 때가 통일의 적기다. 정치적인 통일, 제도적인 통일은 언제든 하면 된다. 오히려 더 쉽다. 이런 통일을 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북한 주민의 마음은 이미 우리를 향해 우리보다 먼저 와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감히 바깥으로 피력하지 못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그들 모두는 남한으로 안겨올 것이다. 동독 주민이 서독으로의 통일을 원했듯이. 그런 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금이라도 바로 교류와 협력으로 들어가자. 교류와 협력이 ‘대북한 퍼주기’라는 말은 그만하라. 그동안 우리 사회는 비판을 통해 크게 성숙했다.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이상, 보다 나은 방안은 얼마든지 마련될 수 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져라. 지금, 바로 지금. 이것은 명령이다.
*이 글은 지난 8월 6일 광복 70주년 기념 경제정의실천연합이 주최한 '염원에서 실천으로'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발표한 토론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며, 남북물류포럼과 공동으로 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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