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를 지난 첫 월요일, 박근혜 대통령이 또 뉴스메이커가 되었다. 현재의 우리 경제를 ‘퉁퉁 불은 국수’로 표현한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3일 자신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 경제를 생각하면 저는 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경제를 진단하는 말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부동산 3법도 작년에 어렵게 통과가 됐는데 비유하자면 퉁퉁 불어터진 국수”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걸 먹고도 우리 경제가, 부동산이 힘을 좀 내서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활성화되고 집 거래도 많이 늘어났다”고 진단했다.
그리고는 “불어터지지 않고 좋은 상태에서 먹었다면 얼마나 힘이 났겠느냐”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뒤 “그래서 우리 경제가 참 불쌍하다. 불어터진 국수를 먹고도 힘을 차리는구나. 그래서 앞으로는 제때 그런 것을 먹일 수 있도록 중요한 경제 활성화 법안들도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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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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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기국회에 제출된 주택법 등 부동산 거래활성화 3법을 야당이 발목을 잡아 늦게 처리되므로 경제 활성화가 늦어졌다는 박 대통령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진단도 틀렸지만 경제정책에 대한 인식 자체가 틀렸다. 그래서 이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곧바로 한국은행의 발표에 의해 엉뚱한 인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한국은행은 23일 가계신용대출이 역대 최대인 1천90조 원에 육박하면서 국민 1인당 가계 빚 2천만 원을 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자료를 보면 지난해에만 은행과 비은행권이 가계에 빌려준 돈이 64조 원 넘게 늘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80%를 차지했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업무현황 자료에 나타난 실상이다.
시중은행, 저축은행, 상호신용금고 등 비은행권의 가계대출 총액이 지난 해 64조3천억 원 늘었으며. 이중 은행권이 37조3천억 원, 비은행권이 27조 원 증가했다. 더구나 여기에는 결제 전 카드 사용금액(판매신용), 보험사, 대부업체, 공적금융기관 등의 가계대출은 빠져 있다.
그렇다면 카드사, 보험사, 대부업체까지 모두 합하면 이미 1천 2~3백조가 넘었을 수도 있다. 은행권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이 채무자라는 대부업계의 대출금만 현재 추계로 약 10조 원에 이르고 있으므로 카드사와 보험대출을 포함할 경우 이는 거의 현실적 액수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국민 1인당 2천100만 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는데, 이중 빚이 없이 현금을 은행에 맡기고 있는 20%의 부자들을 제외하면 4천만 명 정도인 중산층과 서민들의 1인당 평균 빚은 3천만 원이 넘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이런 가계 빛 증가세는 주택담보대출이 주도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부동산 3법이 원인이랄 수 있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부동산금융 규제가 완화된데다 이를 위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가 인하되면서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 1분기 1조2천억 원, 2분기 5조5천억 원, 3분기 10조6천억 원, 4분기 20조4천억 원으로 보면 확인된다. 부동산 3법의 효과로 주택매매가 늘었다는 4분기에 가계대출이 1분기에 비해 무려 스무 배 가까운 큰 폭으로 늘었다. 원흉이 주택담보대출이란 증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은행에서 돈 빌려 집 사라’는 법이 늦어진 관계로 경제활성화가 늦다고 말했는데, 결국 국민들 빚쟁이를 더 빨리 만들지 못해서 경제가 살지 못했다는 말을 한 것이다.
지난 해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50만 명에 육박하면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통계청은 21일 지난달 구직단념자는 49만2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5만5000명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다. 2010년 2월 20만 명대를 기록한 뒤 지난해 3월 30만 명, 5월 부터 40만 명대를 유지하다 지난 달 50만 명에 육박하면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설 연휴 뉴스로도 확인된다. 설 연휴에 우리 국민들을 슬프게 했던 뉴스 중 단연 톱은 경남 거제의 한 자동차 안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일가족 5명의 소식이었다. 경찰은 빚에 허덕인 가장이 설을 쇠러 가려고 잡을 나선 뒤 차 안에서 아내와 자식들 3명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외에도 밀린 월세를 내기 위해 절도를 하다 적발된 사람 등 생계형 범죄와 사망사건 등이 뉴스의 초점이었다. 실태가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모든 문제를 야당의 발목잡기로 돌리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한다. 따라서 조만간 대출금 이자 때문에 벌어질지도 모를 생계형 범죄엔 또 뭐라고 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가 내놓은 공직 후보자들의 불법 백태를 떠나 그들이 인식하는 정국의 현황은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지난 해 연말 나라를 강타한 담배세 인상을 필두로 유리지갑이라는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파동, 그러함에도 이를 두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선별복지를 주장하는 여권의 입들에 힘입어 “증세는 국민배신”이라고 말하는 대통령이다.
담배세가 인상되어 성인 50%라는 흡연 인구의 담세 비율이 높아졌으며, 3개월 분할 납부를 여야 정치권이 합의할 정도로 이미 추가로 세금을 내야 할 직장인이 많아진 것은 확실한 증세임에도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정부다. 이것은 결국 ‘증세-법인세’ 또는 ‘증세-부자세’라는 인식 때문에 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결국 경제가 어렵고, 세원이 부족하고, 정국이 불안하며, 정부와 대통령의 인기가 없는 것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 자신을 비롯한 박근혜 이너서클의 잘못이다. 그런데 이를 엉뚱하게 야당에 떠넘기려고 ‘퉁퉁 불은 국수’운운하는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대통령의 저급함… 이를 지적하지도 않고 나팔수처럼 전파하는 언론들… 설날을 보낸 첫날의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연말부터 지지율이 30% 밑으로 빠졌다. 집권 2년차도 안 돼 30% 밑으로 빠진 것이다, 때문에 덩달아 여당의 지지율이 야당 지지율 밑으로 빠질까봐서 지금 여당의 국회의원들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본인만 독야청청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주택담보대출이 늘면서 가계 빚은 계속 늘지만 정부가 원하는 집값상승을 통한 부동산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있다. 매매건수가 늘었어도 오름세는 없다. 매수 희망자는 급매물 등 시가에 비해 저렴하지 않으면 입질을 하지 않는다. 결국 박 대통령이 말한 시장경기 회복세는 수치상 매매건수가 늘어난 것뿐이다.
집값 상승 예측률이 최소한 은행 금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대출금으로 집을 사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전세 기간 2년마다 이사를 해도 2년 후 전세 원금에서 손해는 없다. 전세금을 대출로 충당해도 이자 외엔 손실이 없다. 최악의 경우 이사 비용과 중개 수수료까지만 손실로 보면 된다.
반면 주택을 구입했을 경우 은행 이자에다 필요할 때 현금화의 불투명, 집값 하락에 따른 원금 손실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더구나 전세 보증금은 만기에 환금에 대한 위험성이 없다. 반면 매매는 필요한 시점에 팔린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필요 시 환금 보장도 되지 않는다.
결국 이익보다 손실이 더 가까운 주택 구입은 필요할 때 현금화도 어려운 이중 고초를 주고 있다는 현실이 주택 매수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무조건 싼 이자에 돈 빌려줘서 집을 구입하게 하는 법안 등을 경제활성화에 대한 특효약 쯤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통령의 경제 지식도 문제지만 그가 사용한 ‘퉁퉁 불은 국수’라는 언어가 더 역겹다는 말이다. 왜? 지금 국민들은 퉁퉁 불은 국수도 먹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이런 저급한 인식을 가진 대통령과 정부 아래에서 ‘퉁퉁 불은 국수’도 못 먹는 국민들만 불쌍하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모두 대통령 자신 때문인데 이를 엉뚱하게 부동산 3법 통과가 늦어진 때문이라는 인식… 그런 대통령의 인식과 진단을 비판도 없이 앵무새처럼 전달하는 언론, 이런 세상에서 사는 국민들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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