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월 60만 원으로 살기…가난해 행복하다"
[살림이야기] 인디언플루트 연주하는 봄눈별
김세진 <살림이야기> 기자 2015.02.18 08:21:32
'서울에서 살면 숨만 쉬어도 한 달에 75만 원이 든다'는 기사가 나왔다. 어느 취업 준비생의 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기자가 눈물을 뚝뚝 흘렸더란다. 학자금 대출한 것을 갚고 월세를 내는 것만 해도 그렇게 든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살기 힘든 서울에서 '자발적 백수'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봄눈별'은 2011년 잡지 <발밤발밤>에 '자발적인 가난뱅이 백수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글을 썼다.
"가난뱅이 주제에 돈 안 되는 일만 한다고, 누구나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이 세상에는 아주 많고, 나는 그것들을 직접 겪었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과 함께하는 것, 마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 이것이 직장 다닐 때 얻지 못한 행복들이다.
게다가 나는 시간이 넘쳐 나는 나머지 여기저기 공연과 여행을 다녔다. 사진을 찍었고, 글을 썼다.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삶의 자세를 바로잡곤 했다. 직장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던, 물질만능주의에 감춰져 있던 감수성과 상상이 풍부해져서, 가난해서 불행하다는 일반적인 논리를 멀리하게 되었다. 오히려 가난해서 행복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봄눈별은 2015년인 지금도 가난하고 여전히 행복하다. 느지막이 일어나, 그가 늘 손에서 놓지 않는 악기 인디언플루트와 엄지피아노를 가지고 놀다가 밥을 해 먹고 또 악기를 가지고 놀거나 산책하다가 밥을 먹고 저녁에 글을 쓰고 또 악기를 가지고 놀다가 잠이 든다. 공연을 해 달라는 요청이 오면 전국 각지 어디든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지극히 소박한 일상을 보낸다. 그가 공연을 하는 기준 자체가 '세 명 이상이 모여 요청하면 어디든' 가는 것이라 그걸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 하지만 때로 공연비를 챙겨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전국에 열리는 장터에 가서 사람들에게 '소울 카드'로 카드 점을 보면서 상담을 해 주기도 하고, 마사지를 해 주기도 한다. 그렇게 번 돈은 넉넉하지 않지만 한 달을 살 만큼 나온다.
60만 원으로 서울에서 부족함 없이 살기
그래야 고작 60만 원 안팎이지만 봄눈별은 간소하게 살기 때문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우선 물건은 완전히 망가져 못 쓰게 될 때까지는 버리지 않는다. 면도기는 13년째, 핸드폰은 6년째, 냉장고는 25년째 쓰고 있다. 대형마트를 가지 않고 인터넷 쇼핑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도 보지 않는다. 합성세제를 쓰는 대신 맹물로 세수하고 머리 감고 몸을 씻는다. 휴지 같은 1회용품도 거의 쓰지 않는다. 쓰레기봉투를 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리수거를 철저히 한다.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난방과 냉방도 거의 하지 않는다. 겨울에는 옷을 두껍게 입고 자는데, 몸은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을 느낀다.
미래에 닥칠 일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 적금을 들거나 보험을 들지 않는다. 있던 보험도 일찍이 깼다. 그제야 비로소 미래 일을 걱정하는 데 돈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살기보다 현재에 충실하기로 선택했다. 그때그때 돈이 더 필요할 때는 가지고 있는 것들을 팔기도 하고 때로 돈을 빌리기도 하고 필요만 만큼만 더 일하기도 한다. 하루아침에 이렇게 살게 되진 않았다. 일주일 내내 일하다가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 그리고 일을 그만두기까지, 직장인에서 반 백수, 그리고 백수가 되기까지, 생활 습관을 조금씩 바꾸기까지 2년이 걸렸다.
먹는 것도 바꿨다. 덜 버는 대신 덜 쓰면서 살고, 대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기로 결심한 서른 살 즈음부터 담배와 술, 고기를 끊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문에 촛불집회에 참석하면서 채식을 결심했다. 잔병치레가 잦았기에 건강하기 위해,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명분도 있었는데 하면서 점차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몸과 머리가 맑아지고 요리하는 게 즐거워졌고 또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봄눈별은 두 주에 한 번 '언니네텃밭'에서 받는 꾸러미로 밥상을 차린다. 한 달에 5만 원을 내고 2주에 한 번씩 4인 가족 분량의 유기농 제철 채소와 과일, 두부와 계란 등을 받는다. 그렇게 먹을거리를 해결하는데 때론 너무 풍성해 이웃과 나누기도 한다.
지금 당장 시작하기
"음악을 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꾸었던 건 아니에요. 하고 싶어서 조금씩 했어요. 하루에 13시간씩 주 6일~7일을 피자 배달을 하면서 3년 동안 매일 밤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인디안 로드'라는 음악을 들었어요. 바람 소리 같이 여운을 주는 그 음색이 마음에 들어 인디언플루트를 사서 불기 시작했어요. 그냥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가 있어서 하루에 30분 하던 것이 1시간이 되고 또 몇 시간으로 늘다가 이렇게 지금 음악만 하게 되었죠."
연주하면서 낮은 음역대부터 높은 음역대를 지닌 것까지 악기가 늘었고, 물방울 소리가 나는 엄지피아노나 하피드럼 같은 다른 악기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악기를 가지고 놀다 보니 잘하게 되었고, 그게 이렇게 직업이 되었단다. 뭔가를 시작할 때 거창하게 생각하기에 시작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춤을 배운다면 화려한 무대에 선 나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이 시간 때문에 얼마나 즐거울지, 앞으로 나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기대하는 게 좋다고.
"하고 싶은 일은 쉽게 나타나요. 청년들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면서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하는데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때문에 못 찾아요. 돈을 벌고 대가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는 거죠. 그냥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거창하게 인생의 판을 갈아엎을 필요가 없어요."
또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의 논리를 따르다 보면, 직업의 귀천을 따지다 보면 자기를 성찰할 수 없고 꿈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꿈을 응원하면 나의 꿈도 찾을 수 있다. 종종 택배나 배달 직원, 혹은 성매매 여성이나 청소부 등을 무시하는데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걸 기억하고 그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처음으로 촛불집회에 나간 이후 그는 블로그(http://blog.naver.com/bbesisi)에 사회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록도에 가서 봉사하고 티베트 난민을 지원하는 단체인 '록빠'에서 자원봉사하기도 했다. 2010년 4대강공사로 밭을 빼앗기게 된 팔당 유기농 두물머리 농부들과 함께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목소리를 내고 공연도 했다. 얼마 전부터는 집회 현장에 자주 가지는 않지만 대신 개인의 생활을 최대한 생태적으로 투쟁하며 사는 것 자체를 운동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울려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문제들도 있다. 지난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가 너무 마음이 아파 최근에 앨범 <바다에서 온 편지>를 만들었다. 세월호에 탄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글들을 노랫말로 묶고 치유를 소원하는 연주곡을 담았다. 후원들 받아 만든 450장의 음반을 광화문, 팽목항, 치유공간 '이웃'에 있는 유가족에게 2월 중에 전달하려고 한다. 이별의 아픔을 다 같이 위로하고 슬퍼했으면 한다. "이별을 겪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기 위해서 함께 기도"하는 그의 방식이다.
이별은 그의 삶의 화두이기도 하다. 봄눈별이 '마지막 그 길의 음악'을 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는 죽음을 앞둔 이에게 찾아가 평온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생전 마지막 음악회를 열어 드리고 싶다. 누군가 부르면 어디로든 언제든 그저 찾아갈 생각이다. 일찍이 가까운 사람들과 이별을 겪었던 그는 "모든 이별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예고도 없이 갑자기 허망하게 닥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마음공부 역시 죽을 준비를 잘 해나가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일한 만큼 쉬고, 함께하는 만큼 홀로 있고
그가 생각하는 마음공부는 거창한 게 아니다. "일한 만큼 쉬라"는 게 그것. 하지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일이 끝나도 일을 생각하고 잘 쉬지 못하면 그 스트레스를 가까운 사람에게 풀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잘 쉬기 위해 지난해에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스마트폰을 없앴다. 그랬더니 마음이 한가로워졌다. 스마트폰을 쓰면서는 '이것만 하고 페이스북을 확인해야지', '이것만 하고 카카오톡을 확인해야지' 하는 마음에 쫓겼다. 그리고 많은 정보에 시달렸는데 살펴보면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연예인이나 허무한 정보들이어서 공허했다. 그렇게 스마트폰 때문에 하게 되는 일에서 벗어나니 한가롭고 잘 쉴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하는 시간 대신에 목욕하고 자거나 음악 듣고 책을 읽는 것으로 잘 쉰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가끔 안부를 맺는 인간관계 덕에 안 보이던 앞집 꼬마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외모에 비해 이야기가 깊은 그에게 어른들이 가끔 "잘 자랐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는데 그는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앞으로도 죽 잘 자랄 거다. 올해 타로점을 보았는데 "세계 인류에 공헌하게 된다"는 점이 나왔다. 봄눈별은 "세계에서 가장 다정한 아들이 되는 것"이 그것이라고 받아들였다. 모든 것이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미래가 아닌 현재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그가 자기의 트위터에 남긴 글을 모아 낸 작은 책 <,>(자비 출판)에 있던 글귀가 생각났다.
"생각날 때마다 후회바이러스 예방주사를 본인에게 접종하세요. 예방주사란 오늘,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살림이야기>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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