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귀환. 8일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결과는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새정치연합은 다시 '문재인'이라는 브랜드로 4.29 보궐선거와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르기로 결정한 셈이다.
문재인 신임 새정치연합 대표는 2.8 전당대회에서 최종 45.3%를 득표하며 강력한 도전자였던 박지원 의원에게 3.52%포인트 차 신승을 거뒀다. 승리하긴 했지만, 과반 득표에는 실패해 전 대선후보라는 '이름 값'에 미치지는못했다.
투표 결과는 문 대표 측의 예상대로 대의원 투표에서의 박빙 우세, 권리당원 투표의 다소 열세로 나왔다. 하지만 압도적 결과가 예상됐던 여론조사에서, 일반 당원 조사 결과 43.29% 대 44.41%로 오히려 박 의원에게 뒤진 것은 의외라는 평이다. 비(非)당원 대상 조사는 58.05% 대 29.45%로 문 대표가 2배 차의 압승을 거뒀다.
다시 당권파 된 '친노' 그룹, 이번에는?
문재인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지난 2012년 이후 3년 만에 이른바 '친노' 그룹이 제1야당의 당권을 잡게 됐다. 문 대표 본인으로서도 2012년 11월 18일 이해찬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가 사퇴하며 대표 대행 직책을 겸임했다 내려놓은 지 약 2년 만이다.
지난해 3월 2일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의 통합을 결정하며, 친노 그룹이 '구(舊)주류' 취급을 받았던 때가 불과 1년 전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마저 느껴진다는 평이다.
문 대표는 그간 숱하게 '친노 프레임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필요하면 '친노 해체' 선언이라도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문 대표의 주변에 모여 있는 이들은 분명 있다. 물론 이들이 모두 '강경파', '과격파'이거나 김한길-김한길·안철수-박영선-문희상 지도부에서 계속 전횡을 휘둘러 왔다는 것은 문 대표의 말처럼 '과장된 프레임'일 수도 있다.
하지만 19대 총선 후 당내 의석 분포에서 다수가 된 이들 그룹이, 이제 당권까지 가지게 되면서 말 그대로 '명실상부'한 야당의 주류로 재부상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문 대표 주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해야 하고, 정권을 잡고도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세력을 가진 집권'이 돼야 한다"는 취지의 말들이 계속 나왔었다.
이같은 상황은 문 대표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인 계파 갈등 해소의 배경이기도 하다.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 측 등 비주류에서 '당권을 잡은 친노가 우리에게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을 갖지 않게 다독이고, 전당대회의 '저질' 난투로 상처 난 당을 추스르는 일은 시간적으로 가장 선행돼야 할 과제다.
문 대표도 전당대회 기간 동안 "대표가 된다면 친노가 불이익을 받는다 싶을 정도의 탕평 인사를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정치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문 대표가 당선됨으로써 계파 갈등이 더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계파 갈등 해소를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하고, 최대 계파에서 먼저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평했다.
"통합만 외치다 끌려다니면 안돼…그건 문희상·박지원이 할일"
그러나 유권자들이 기대하고 있는 '문재인 당 대표'의 솜씨는 이런 '통합' 작업에만 있지는 않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전대 후유증 수습이야 당연히 해야 하지만, 그게 메인(main) 과제는 아니다"라며 "당 수습이나 4.29 보궐선거 같은 것만 쳐다보면 아무 것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당 혁신"이라는 것.
이 소장은 "의원 기득권 내려놓기, 친노 해체, 탕평 인사, 이런 것들은 아무리 예쁘게 포장해도 답이 아니다"라며 "국회의원들이 제기하는 이런 이슈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 낡은 질서를 깨는 변화의 기수 역할을 문 대표가 해야 가능성이 있지, 적당히 계파 간 관리·안배·조정 역할은 굳이 문 대표가 아니라도 문희상 전 비대위원장이나 박지원 의원 등이 해도 된다"고 했다.
그는 "혁신이란 결국 사람을 바꾸고 정책을 바꿔야 한다. 당직 인사도 의원들끼리 계파별로 나눠 먹는 게 아니라 '뉴 페이스'들을 수혈해 변화를 주도해야 하고, 공천 개혁을 해야 한다"며 "개혁은 국회의원·지역위원장들에게 불이익이 될 테니 저항이 심할 텐데, 여론 지지를 등에 업고 돌파해야 한다. 그런 정치를 문 대표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지금 있는 정파들과 다 사이좋게 잘 지낸다는 건 통합이 아니라 기득권 보장이고 총선 필패의 길"이라며 "새정치연합을 질적으로 재편해 새로운 리더십, 구심력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 내의 혁신과 통합 작업을 서둘러야 하는 것은 4.29 재보선과 '국민모임' 신당 출현으로 인한 야권 재편 바람 등 최종적으로 문 대표가 손을 대야 할 외부 변수들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박근혜 정부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김무성·유승민 비주류 지도부와 국민모임 등 진보정치 세력의 사이에 낀 처지다. 이들과의 뚜렷한 변별점을 유권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인물과 정책 브랜드를 만들어 내놓아야 할 과제가 문 대표에게 주어진 셈이다.
윤 실장은 이와 관련해 "제일 안 좋은 것은 답이 금방 안 나온다고 '이명박근혜' 때리기로 가는 것"이라며 "제일 손쉬운 방법이 그것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만 하면 답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철희 소장도 "당직 인사 등 단기 과제에 집중하지 말고, 내년 총선까지 전 과정을 시야에 넣고 차근차근 프로세스를 밟아 가야 한다"며 문 대표가 '실력'을 보이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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