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08 20:07l최종 업데이트 15.02.08 20:07l
▲ 8일, 화가들이 하늘과 땅 위의 노동자들의 연대를 상징하기 위해 걸개그림을 그리고 있다. | |
ⓒ 강민수 |
낮 기온도 영하 8℃에 머문 8일 정오, 물감도 얼어붙었다. 황토색 물감을 잔뜩 머금은 붓도 얼기는 마찬가지다. 보온병 온수를 이용해 물감을 녹였다. 화가 김천일씨가 길이 4m짜리 종이에 붓을 올렸다. 뻣뻣했지만 붓은 사람 손 하나를 그려냈다.
김씨 반대편에서 화가 최수연씨가 이보다 작은 손 10여 개를 그렸다. 큰 손과 작은 손은 서로를 향했다. 두 화가를 돕던 박은태 화가는 "하늘과 땅 위의 노동자가 서로에게 연대의 손을 내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큰 손은 고공 농성자 2명의 것이다. 지난 6일 새벽,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 20m짜리 광고탑에 올라간 민주노총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강세웅(46) 조직부장과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장연의(43) 연대팀장이다. 작은 손들은 두 사람 아래에서 두 사람과 연대를 약속한 동료, 300여명의 것이다.
지상 20미터의 두 노동자 "박근혜, 우리가 왜 올라갔는지..."
▲ SK-LG 비정규직 노동자, 15m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 서광주지회 강세웅 조합원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 인천계양지회 장연의 조합원(왼쪽)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 광고탑에 올라가 원청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직접고용 책임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
ⓒ 유성호 |
▲ SK-LG 비정규직 노동자 고공농성 돌입, 한걸음에 달려온 동료들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 서광주지회 강세웅 조합원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 인천계양지회 장연의 조합원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 광고탑에 올라가 원청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직접고용 책임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자, 동료 조합원들이 소식을 들고 달려와 함께 하고 있다. | |
ⓒ 유성호 |
다시 노동자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불법 하도급 근절 ▲장시간 노동 단축 ▲고용 보장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또 원청인 두 업체가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 파업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다. 광고탑에는 '진짜 사장 LG, SK가 통신 비정규직 책임져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간접고용의 그늘 속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목숨을 건 농성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와 협력업체에 고용된 인터넷·아이피티브이(IPTV), 전화 설치·수리기사로 지난해 11월부터 다단계 하도급근절, 고용보장, 장시간노동 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여왔다. 이들과 함께 파업을 벌이다 먼저 고공농성을 시작한 씨앤앰 노동자 2명은 지난해 12월 31일, 농성 50일 만에 땅을 밟게 됐다(관련기사: "세상 바꿀 수 있다는 증거됐다"... 씨앤앰 고공농성 철수).
강세웅 조직부장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간밤의 추위를 언급하며 "일어나 보니 물티슈와 생수가 얼어 있었다, 씻지를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광고탑에 오를 때를 떠올리며 "마음이 편안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땅에서 노동자로서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라며 "노동자의 권리를 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각오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LG유플러스 전남 서광주 고객센터의 수리기사다.
그는 "원청인 대기업들이 협력업체를 쥐어짜니까 협력업체 사장은 다시 수리기사들을 쥐어 짤 수밖에 없다"라며 "정부가 통신 비정규직에게는 하도급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말로만 서민을 위한 공약을 말하지 말고 진짜 서민을 위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70대 부모는 아들의 농성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는 "혹시 알게 되더라도 잘 하고 돌아 갈테니 걱정 마시라"고 말했다.
장연의 연대팀장의 어머니는 아들의 농성 사실을 알고 있다. 장 팀장은 "농성 전 어머니에게 지방에 내려가서 며칠 집에 못 들어간다 말했다"라며 "하지만 뉴스를 보시고 농성 소식을 알게 됐다, 어머니에게 죄송하지만 걱정하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비정규직 보호하라고 했더니 기간 연장을 시켜 아예 비정규직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약자의 편에 서지 않고 자본가들의 얘기만 듣고 있어요.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뭐만 하면 더 상황을 나쁘게 만드니까요. 저희들이 왜 하늘로 올라가게 됐는지 그 이유라도 듣기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인천 계양구 SK브로드밴드 센터에서 설치와 수리 업무를 맡아왔다. 2013년 협력업체는 그를 업체에 고용된 기사가 아닌 건당 수리비를 받는 하도급기사로 일방적으로 전환했다. 지난해 8월, 바뀐 협력업체는 그에게 도급계약을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고 이를 이유로 해고 당했다.
땅에서 손 내민 동료들..."내가 강세웅이다, 내가 장연의다"
▲ 서울 중구 서울중앙우체국 앞 광고판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협력업체 노동자들. 8일 오후2시부터 노조 조합원들과 함께 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 |
ⓒ 강민수 |
고공농성과 동시에 동료들은 길바닥 농성에 돌입했다. 300여 명의 동료들은 광고판 아래 길바닥에 스티로폼 등을 이용해 자리를 깔았다. 동료의 농성을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집회를 열었다. 강추위에도 모자를 눌러쓰고 담요로 온 몸을 감은 채 동료들을 지켜봤다.
이 자리에서 동료들은 하늘과 땅, 모두의 승리를 기원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민성 LG유플러스 구로·양천지회 부지회장은 "10년 동안 회사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말그대로 개처럼 일했다"라며 "그런데 노조를 만들어 권리를 찾겠다고 하니 회사가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왕 길바닥 농성을 시작한 것, 끝장을 보자"라며 "목숨을 걸고 올라간 두 동료를 위해 우리도 밑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영 SK브로드밴드지부 상황실장은 강추위를 원망했다. 그는 "그동안 봄이 오는 것처럼 따뜻하더니 다시 12월의 한겨울로 돌아갔다"라며 "하늘이 우리의 투쟁을 방해하는 것 같다"라고 한탄했다.
이어 그는 "여기 이곳의 동지들이 자랑스럽다"라며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길 것임을 자신한다"라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결과는 승리 하나 뿐"이라며 구호를 외치자고 했다. 하늘과 땅 위의 두 곳의 구호가 울려퍼졌다.
"내가 강세웅이다!"
"내가 장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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