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대표)
지난해 4월 21~28일 평양에서 열린 OSJD(국제철도협력기구)회의에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참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관련이 있다.
OSJD 비회원국인 한국이 남-북-러와 남-북-중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 실현을 위한 첫 단추를 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철도연맹의 회원국 가입은 가맹국 27개국 만장일치 찬성으로 가입할 수 있다.
북한은 지난해 4월 평양에서 열린 29차 OSJD 사장단 정례회의에 비회원국인 남측 대표단을 초청해 주었으며, 분단 70년 사상 처음으로 철도를 이용한 방북에 협조하는 등 적극 호응해왔다.
우리로서는 SRX 구상의 실현을 위해 2015년말 OSJD 가입을 목표로 비회원국 옵저버 자격으로 사장단 정례회의에 참석해 지지표를 다지고 북한의 의중을 타진하기 위해 대표단을 파견한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이 세월호 사건으로 빚어진 국정 난맥으로 유야무야 된 사이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일대일로(日帶日路), 이른바 ‘신 실크로드’ 정책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전 중국을 철도로 연결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와 중동,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 건설과 중국 동남 연해지대에서 출발해 동남아시아-인도양-아프리카까지 연결하는 해상 운송로를 건설하는 ‘해상 실크로드’ 구축이라는 어마어마한 국책사업이다.
시진핑 주석은 집권 초반인 지난 2년간 해외순방 시 중국 식 표준설계 방식의 철도 건설 지원을 해당 국가에 약속했고, 지난 1일에는 이를 중점 추진하기 위한 ‘업무영도소조’ 구성회의가 중국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인 장가오리(張高麗) 부총리 주재 하에 개최됐다.
중국은 막대한 자금력과 축적된 기술을 무기로 ‘선 건설 후 사용권 확보’ 전략을 내세워, 자원 또는 농산물로 건설비를 상환받는 조건으로 주변의 후진국과 개도국의 철도 주권을 확보하고 나섰다.
여기에 북한도 예외일 수는 없다. 북한과 중국은 2011년 8월 북.중 간 새로운 노선의 고속철도 건설을 중국식 설계표준으로 진행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북한은 약 45억 톤의 철광석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산광산의 개발권과 75%의 개발이익금을 중국에 주는 조건으로 철도 건설권을 주기로 협의됐던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종 재가 과정에서 무산광산의 개발이익 지분률이 불합리하다는 점과 남측이 참여하지 않을 경우 경제성과 한반도 종단 철도의 전략적 의미가 퇴색한다는 점을 들어 재검토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남측 기업이 참여하는 국제컨소시엄그룹과 BOT 방식*으로 한국식 설계와 한국식 신호체계로 고속철도를 건설키로 2013년 12월 합의서가 체결됐다.
남북관계의 경색과 남측의 5.24 조치로 인한 대북제재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남북 간 물밑작업을 진행 중, 중국 정부는 2014년 철도건설 사업 협의차 중국을 방문한 남측 기업인을 체포, 구속했다.
신의주-개성 간 철도 건설에 중국식 설계표준과 신호체계를 한국식으로 변경하게 된 것과 지분률을 변경하게 된 계약서 내용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였다는 이유(중국국익 위해 혐의)로 8개월간 구속수사 후 충분한 소명이 되었다는 판단아래 무죄 석방시키고 앞으로 긴밀한 협력을 요청했다.
한편, 한.중 정상은 지난해 7월 한.중 경제통상협력포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과 시진핑 주석의 ‘일대일로’ 사업을 연계할 필요가 있다고 합의한 바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산-서울 간 고속도로와 철도 건설이 한반도 남측의 경제발전의 시금석이요 원동력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부친의 미완성 사업인 한반도 동맥을 잇는 서울-신의주 간 고속철도.도로 건설에 나서는 것이 기승전결의 역사를 완성하는 것이리라 믿는다.
남북을 가로지르는 동북아 교통망 건설은 북방으로의 출구 개척과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기틀을 놓는 사업으로, 박 대통령이 주창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입각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상을 현실화하는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동북아 교통망이 구축되면 15억 인구의 새로운 시장과 직접 연결됨은 물론 침체된 건설경기의 회복과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 북한 자원의 공동 개발과 활용으로 저성장기에 들어선 한국경제의 신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남북의 장기간 대치로 북한과 중국의 참여만으로 신의주-개성 철도가 중국 식 설계방식과 신호체계로 건설되고 운영 된다고 가정해 보자. 철도 주권의 상실은 물론 후대들이 비싼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 또한 그 만큼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난 시기 불거졌던 ‘퍼주기’ 논란과 국민세금 낭비라는 부담이 없는 방식으로 북의 자원을 담보로 국제금융기구 자금을 활용한다면, 단군 이래 한반도 최대 건설 프로젝트로 남북 쌍방에 사회.경제적인 엄청난 이익이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5월 북.러 정상회담이 예상되고, 이보다 먼저 3월 중에라도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중 합의로 남측 건설기업의 참여 없이 중국식으로 철도.도로 사업이 진행된다면 엄청난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북측에서 전단 살포 등에 대해 ‘단호한 응징’을 경고하고 있다. 이는 최악의 경우 개성공단 폐쇄와 함께 북방으로의 통로를 차단, 남측을 섬나라로 고립시키겠다는 경고이다. 고립이 장기화되면 저성장 기조 탈출의 유일한 출구가 막히는 셈이다.
일본이 섬나라라는 한계를 못 벗어나 20년 이상 장기 불황과 저성장을 겪고 있는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북.러,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 결자해지 차원에서 남북대화를 조속히 재개하길 바란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복귀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를 분명히 한다면, 6자회담 당사국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수혜자가 되는 남북을 통과하는 교통 인프라 건설 사업을 남북이 공동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 BOT(Build-Own·Operate-Transfer) 방식 도로·항만·교량 등의 인프라를 건조한 시공사가 일정기간 이를 운영해 투자비를 회수한 뒤 발주처에 넘겨주는 수주방식. 건설(Build)하여 소유권을 취득한(Own) 후 국가에 귀속시키는 즉 기부채납하는 방식(Transfer)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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