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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27일 금요일

성추행 당해 자살한 오대위의 마지막 절규


정현환 2015. 02. 27
조회수 3974 추천수 0
“제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누구라도.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병사들, 우리 처부 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단 한 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 한 적 없습니다.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2013년 볕 좋은 어느 가을 날, 젊디젊은 여군은 조용히 흐느끼며 마지막 글을 남겼다. 얼마 후 훌쩍임과 기침소리마저 멎고 화면이 뿌옇게 변했다. 남은 것은 그녀가 생전에 즐겨듣던 음악 소리뿐이었다. 그리고 ... 모든 것이 정지했다. 남부지방 억양 속에 듣기 좋은 울림을 지닌 목소리도, 차 안을 가득 채우던 음악도, 흐느낌도, 언뜻 비치던 부대 안의 초록빛 나무의 흔들림도 이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 그녀의 마지막 절규만 남았다. “제 이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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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를 지켜달라는 마지막 절규 

  많은 꿈을 지녔던 오 대위는 그렇게 생의 무대에서 스스로 떠나갔다. 그토록 밝게 빛나던 오 대위를 한순간에 무너뜨린 것은 직속상관인 노 소령의 성추행이었다. 오 대위는 또래 여군들 중에서도 진급이 빠른 편이었고 당시 근무하던 15사단 여군들 중에서도 계급이 가장 높았다. 그랬기에 성추행이나 성희롱 등 여군들의 어려움을 상담하는 여군 고충상담관의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오 대위는 정작 자신은 구제하지 못했다. 오 대위 사건에서도 보듯이 만만치 않은(?) 계급인 대위도 성폭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물며 부사관 계급의 여군은 어떻겠는가? 실제로 최근 5년간 성폭력 피해 여군 183명 중 부사관이 113명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특성상 보고된 것은 빙산의 일각일 확률이 높다. 이것이 성폭력 문제를 끝까지 주시하고 풀어가야 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2014년 있었던 군인권센터의 군성폭력실태조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설문조사에서 여군의 90%가 성 관련 피해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 47.4%가 소용없어서, 44.7%가 불이익 때문에, 5.3%가 나쁜 평판 때문이라고 꼽았다. 피해 여군의 95.7%는 군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사실이 드러났을 때 35.3%가 집단 따돌림을 경험했으며 23.5%는 가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응답했다. 80%의 여군이 군사재판을 신뢰하지 않았고 92%가 헌병대와 징계위원회를 각각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하여 성폭력 관련 군의 처벌에 대해 강하게 불신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피해 여군이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순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가해자로부터 보복을 당하기까지 하는 군의 현실을 지휘관들은 알고는 있는지, 알려고 하는 의지는 있는지 궁금해진다.
  올 1월 27일 성폭력 대책을 위해 열린 육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여군들도 싫으면 명확하게 의사표시 하지 왜 안 하냐"고 해서 물의를 빚은 1군사령관의 인식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특히 최근에 불거진 임모 여단장의 여군 하사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곳은 1군사령부 예하 부대다.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최고 지휘관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비난하는 것이다. 군의 이런 저급한 인식은 군사법원의 판결로까지 이어져 솜방망이 처벌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국방부가 제출한 자료를 보면 가해자가 장교일 경우 실형 선고율은 2011년부터 2013년 까지 단 1건도 없는 0%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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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의 본질은 권력관계

  성폭력의 본질은 권력관계다. 권력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폭력은 발생하기 힘들다. 성적 매력이 충만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허상에 불과하다. 오히려 장애여성이나 어린이 등 성적 매력과 무관한, 권력관계의 하층부를 차지하는 약하고 아름답지 못한(?)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현실이다.
  성폭력은 모든 범죄들이 그렇지만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다.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성폭력 사건은 여타 범죄들과 비슷하지만 피해자로서 겪는 경험은 사뭇 다르다. 여전히 사회에 팽배한 가부장적인 문화와 낮은 성평등 의식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지지하기는커녕 “왜 밤에 다녀?, 너의 행실이 문제야, 피해 당할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당했겠지”라는 피해자 유발론을 정당화하고 일종의 낙인효과를 가져온다. 다른 범죄 피해자들과 달리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회적 비난을 내면화하여 모든 행동을 자기검열 한다. 가해자가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미풍양속(?)을 어지럽힌 대가로 공동체를 떠나야 한다.
  이것은 군도 마찬가지다. 아니 군은 더 하다. 철저한 계급 사회인데다 외부의 감시견제 기능이 전혀 없는 무소불위의 집단에서 약자의 목소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그림자조차 숨기기를 강요받는다. 실제 군인권센터에서 접한 상담 중에는 다른 여군들의 성폭력 피해문제를 상담하거나 성적 스캔들을 일으킨 룸메이트를 둔 여 부사관이 성적인 문제와 관련한 소문과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가 결국 강제 전역할 처지에 놓인 사례도 있다. 실제적인 피해자가 아닌데도 여성으로서 성과 관련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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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군기 위반이라는 넌센스

  한편 군에서는 성폭력 문제를 성군기 위반 사건으로 보고 있다. 성군기라는 말 자체가 넌센스다. 성이 군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이 문제다. 성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데 이것을 군기의 대상으로 보고 통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성폭력은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면 될 일이다. 또한 성군기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모호함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분을 무화시키고 나아가 피해자를 군기를 어지럽힌 장본인으로 책임 전가할 여지마저 있다. 무엇보다 성군기라는 말 속에는 성폭력이 범죄행위라는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호명하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다. 호명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고 정치적 요구를 하는 행위다. 집안일을 가사노동이라고 호명하는 순간 여성들이 하는 가사 활동이 개인적인 잡일을 넘어서 사회적인 노동의 의미를 획득하듯이 성군기라는 말을 군성폭력이라고 하는 순간 군에서 발생하는 성적 괴롭힘은 범죄행위가 된다. 성군기를 표현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과정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부분이다.
  여군들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은 올 것인가? 여군 창설 65주년과 여군 1만 명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 군의 현실은 참으로 갑갑하다. 군은 여군을 동일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성적 대상화하거나 무시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전투력을 보여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성폭력을 이적행위로 규정하고 엄단하겠다는 육군참모총장의 말은 눈여겨 볼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자정능력을 상실한 군에게 온전히 이 문제를 맡겨도 되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단호하게, ‘아니다’이다. 군에서 일어나는 구타 가혹행위 뿐만 아니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로 문을 열어야 한다. 외부의 감시와 통제가 없으면 모든 것이 의미 없는 시늉일 뿐이다.
 군 성폭력은 가해자 개인의 문제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문제다. 문제 있는 개인만 골라내서 처벌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조건은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데 전체 여군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전 여군을 대상으로 성폭력 및 성차별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실태조사는 일회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군 당국은 무엇보다 성평등적인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성평등교육과 인권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피해자 되지 않기 교육보다 가해자 되지 않기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 수사와 재판은 피해자중심주의 원칙에 입각해서 성역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수사단계 부터 사건 종료 후 보상단계까지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법제도적인 체계를 갖춰야 한다. 실효성 있는 성폭력예방교육, 피해자전담수사관 도입과 피해자와 증인 신상보호, 피해자(일시)보호시설, 2차 가해방지 체계, 판결문에 군성폭력 가해자의 신상정보공개등록과 고지 명시화, 합리적인 피해자 보상체계, 피해자의 사회적 복귀를 위한 정서적 치유가 보장되야 한다.

 오대위와 여군들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

  이것이 오 대위와 여군들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미뤄두더라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것이 숙제다. 지금껏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내 일이 아니라는 핑계로 숙제를 미뤄왔다.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자. 혼자하기 힘든 숙제라면 나눠서 하면 된다. 여군의 안정 없이 우리의 안보 또한 없다. 오늘의 여군 눈물이 내일의 내 눈물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군들의 눈물을 닦아주자. 그런데 시민들의 감시 없이 눈물을 닦아 줄 수 없다. 결국은 시민들이 참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오 대위가 죽어가면서 남겼던 글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본다. 오 대위의 마지막 목소리는 성폭력 피해를 당했거나 어둠 속에서 울고 있는 모든 여군들의 목소리기 때문이다.
 글/ 정현환 디펜스 21 플러스 기자 dondevoy8612@naver.com,
사진/ 박승렬 사진작가 reol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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