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페이지뷰

2023년 5월 21일 일요일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지 않는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라는 TV쇼가 있었다. loser라는 단어가 ‘실패한 사람’이라는 뜻이 있어서 뭔 방송인가 싶겠지만 이 프로는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다이어트에 관한 리얼리티 쇼였다. 참고로 여기서 loser는 ‘실패자’라는 뜻이 아니라 ‘살을 많이 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방송은 미국의 비만 시청자들이 캠프에 모여 매주 체중을 얼마나 뺐는지를 겨루는 쇼였다. 6개월 뒤 최종 우승자에게는 25만 달러의 상금을 안겨줬다.

미국에서 이런 쇼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비만 환자가 많은 나라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9년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은 인구의 40%가 비만인 것으로 나타나 2위인 멕시코(36.1%)를 멀찍이 따돌리고 세계 1위에 올랐다.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2022년 UN(국제연합)의 발표에 따르면 세계에는 8억 2,800만 명이 굶주림에 허덕인다. 2021년 국제 구호기구 옥스팜의 조사에 따르면 지금 지구에서는 1분에 11명, 즉 5초에 한 명씩 굶어죽는다.

곡물 메이저

경제학은 오랫동안 “시장경제가 자원을 매우 효율적으로 분배한다”고 가르쳤다(고 쓰고 ‘뻥을 쳤다’라고 읽어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해 UN의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는 80억 명을 넘어섰다. 반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ited Nations)의 조사에 의하면 지구는 약 130억 명이 먹을 만한 식량을 생산할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식량이 효율적으로 분배만 된다면 굶어죽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지금도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유는 바로 사람의 입에 들어가야 할 식량이 어딘가 다른 곳에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량을 생산하는 사람은 농민이지만, 그 식량을 팔아 돈을 버는 곳은 따로 있다. 곡물만을 전문적으로 사고팔아 이익을 챙기는 곡물 회사가 바로 그들이다.

세계에는 이렇게 곡물만 전문적으로 사고팔아 돈을 버는 엄청나게 큰 네 개의 회사가 있다. 이들을 ‘4대 곡물 메이저’라고 부른다. 이들 중 가장 큰 곡물 메이저는 미국의 카길 (Cargil)이라는 회사다. 이 회사 한 곳에서 사고파는 곡물이 세계 곡물 시장의 40%를 차지한다.

지난 201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굶주림을 피해 남부에서 이주해온 한 아이가 영양실조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뉴시스

카길의 뒤를 잇는 곳이 미국의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점유율 16%), 3위가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Louis Dreyfus, 점유율 12%), 4위가 미국의 분게(Bunge, 점유율 7%)다. 이들 4대 곡물 메이저가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은 무려 75%나 된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대부분이 이들 손에서 거래가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식량을 어디에 팔 것이냐, 그리고 얼마나 생산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도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굳이 식량을 충분히 생산하라고 농민들을 독려하지 않는다. 식량이 부족해 곡물 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곡물을 파는 이들의 이익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곡물 파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 때, 이들 4개 회사의 이익은 오히려 40% 이상 늘어났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은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한 가지만 더 추가할 이야기가 있다. 4대 곡물 메이저 외에 ‘가장 참혹한 죽음’이라 불리는 아사(餓死)를 부추기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 바로 돈벌이에 눈이 먼 자본 세력들이다.

앞에서 우리는 지구가 약 130억 명이 먹을 만한 식량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2008년 곡물파동이라는 것이 발생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국제 투기 금융자본이 투기를 벌여 곡물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곡물 선물 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오르는 데에 베팅한 뒤 미친 듯이 곡물을 사들여 곡물 가격을 인위적으로 올려놓았다. 4대 곡물 메이저는 이에 동참하거나 방관했다. 그래서 이들 모두 막대한 투자 차익을 거뒀다. 이게 2008년 발생한 곡물파동의 본질이다.

2007년부터 시작된 바이오 연료 열풍도 곡물 파동의 한 원인이었다. 옥수수에서 나오는 전분을 이용하면 에탄올이라는 물질을 만들 수 있다. 이 에탄올을 가공해 연료로 사용하면 석유나 석탄 등 땅속에 묻혀 있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수많은 자본들이 바이오 연료를 개발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재배된 옥수수는 곧장 공장으로 들어가 에탄올이 됐고, 자동차 연료로 탈바꿈했다. 사람은 굶어 죽는데 소와 자동차는 배가 부른 슬픈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진 셈이다.

적어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최소한 굶어 죽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별에는 4대 곡물 메이저와 금융자본의 횡포에 실로 수많은 사람들이 아사(餓死)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주류 경제학을 옹호하는 자들은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제 기능을 다 해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된다”는 헛소리를 달고 다닌다. 하지만 자본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결국 돈을 향한 탐욕이 인류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먹는 문제조차 제대로 해결을 못 하고 있는 세상을 만든 셈이다. 무려 8억 명이 넘는 사람이 굶주리는 현실 속에서 “시장이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마디로 웃기는 소리다.

“ 이완배 기자 ” 응원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