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대책위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 강요... 앞으로 벌어질 일들 두렵다"
- 윤정헌 기자 yjh@vop.co.kr
- 발행 2023-05-25 19:18:28
분위기는 침울했다. 농성장 한편에는 희망을 잃은 듯 넋을 놓고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보였다. 본인이 양천구에서 오피스텔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밝힌 한 피해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다. 정부와 국회가 합의한 반쪽짜리 특별법이 오늘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걸 알지만, 정말 뭐라도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어제도 또 한 분이 돌아가셨다. 정부와 국회가 특별법으로 그분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줬더라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와 국회의 특별법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피해자들의 작은 희망마저 빼앗아 간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여기서 죽어 문제가 해결될 수만 있다면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라고 울먹였다.
국회 본회의 시작을 20분가량 앞두고 이어말하기 마지막 주자로 마이크를 잡은 김주호 피해자 전국대책위 실무지원 활동가는 “잠시 후에 국회에서 특별법이 처리된다고 한다. 근데 피해자들과 저희 시민사회는 그 특별법을 막을 수 없다. 분명 그 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이 법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반드시 추가 입법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특별법 테두리에 들어가지 못한 피해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 목소리 빠진 ‘전세사기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 피해자대책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두렵다”
6시간에 걸친 ‘이어 말하기’가 무색하게 이날 국회는 본회의 시작 20여분만에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켰다.특별법안은 지난 22일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통과된 그대로다. 피해 인정 대상 폭이 다소 넓어지고 일부 지원 방안이 추가되긴 했지만, 피해자들의 핵심 요구사항은 빠졌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보증금의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선보상 후회수’ 방안을 도입을 요구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보상 후회수’ 방안은 공공기관이 피해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할인된 가격으로 매입해 먼저 보상해 주고, 이후 경·공매 등을 통해 매입비용을 회수하자는 내용이었다.
또 최우선 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을 위해 ‘지원대상 확대’ 방안도 요청했지만 특별법에선 제외됐다. 최우선 변제금이란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매·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우선 배당받을 수 있는 돈이다.
통과된 특별법은 보증금 회수와 관련해 최우선 변제 대상에서 빠진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최우선 변제금만큼의 돈을 최장 20년간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별법 적용 대상 요건은 소폭 확대됐다. 근린생활시설, 불법건축물, 이중계약, 신탁사기 등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다만 ‘입주 전 사기(이중계약으로 주택 미점유 포함)’는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 4억5천만원 이하로 제한했던 특별법 적용대상 요건의 보증금 규모는 5억원 이하로 확대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통과된 특별법안에 반발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은 특별법 본회의 통과 직후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몇 가지 대책을 소극적으로 채택한 뒤 선구제 후회수를 비롯한 핵심대책은 완전히 외면했고, 국회는 합의라는 이름으로 이를 용인했다”면서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한 지금, 우리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두렵다. 특별법 통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피해자들의 고통이 눈앞에 선명하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부의 편의와 임의에 따라 복잡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만들어지면 특별법의 실효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라며 “추가 조치 및 특별법 개정이 조속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는 향후에도 이를 감시하는 한편, 조속한 추가 행정조치와 특별법 개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정부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재발방지를 노력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