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인 1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도 지역 간부가 법원 앞에서 분신했다. 노동계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를 비판하며 총력 투쟁을 예고했다. 2일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1면에 이 소식을 올렸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를 상대로 전방위 수사 압박에 나서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아왔다고 보도했다.
1일 오전 9시35분께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강릉·속초·고성·양양 지역을 맡는 3지대장 양아무개씨가 강원 강릉 춘천지법 강릉지원 앞에서 분신했다. 양 지대장은 전신 화상을 입었으며 한 차례 심정지가 왔고, 심박이 돌아온 뒤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중태에 빠져 있다.
양 지대장은 건설 현장에서 조합원 채용과 노조 전임비 지급을 요구했다는 혐의(공동 공갈)로 지난 2월부터 수사를 받아왔고, 검찰은 이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지대장은 노동절인 이날 3시 강릉지원에서 다른 간부 2명과 함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었다.
양 지대장은 분신하기 앞서 건설노조 간부들이 모인 SNS에 올린 글에서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라며 “제 자존심이 허락되지 않네요”라고 적었다. 양 지대장의 가족들은 한겨레에 “계속 압박수사를 받아왔다. 화물노조 파업 이후부터 몇 개월을 계속 시달렸는데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도 이렇게 압박수사를 하면 어떻게 버티겠나”라며 “혼자 앓으며 무척 힘들어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 소식을 1면 <‘건폭몰이’에 노동절 비극…윤 대통령은 ‘법치’ 강조만>이란 제목의 기사로 보도했다. 한겨레는 “지난해 건설노조의 지역 대표격인 지대장을 맡은 양 지대장은 건설현장에서 건설사와 단체협약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며 “(검·경은) 전임비 지급, 조합원 채용 등 단협 체결 관련 사항 전부에 공동공갈 혐의를 적용했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1면 <건설노조 간부 “정부, 노조활동 탄압” 노동절에 분신 시도>에서 “검찰은 지난 3월 초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를 압수수색했다. 또 A씨(양씨)를 포함한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간부를 수차례 소환조사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이어지는 기사에서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건설노조를 겨냥해 벌여온 전방위 수사 압박을 요약했다. 한겨레는 “경찰은 지난해 12월 ‘200일 특별 단속’ 등을 통해 1계급 특진 등을 내걸고 건설노조의 불법행위 수사에 힘을 모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 기계 노동자를 사업자로 보고 공정거래법을 적용해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했다.
한겨레는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도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월례비와 태업, 건설 현장 불법채용 등을 문제 삼으며 조사에 나섰다”고 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검찰과 경찰은 건설노조에 13회 압수수색을 벌였고, 950여 명을 소환조사했으며 15명을 구속했다.
한겨레는 “건설노조는 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계절적 실업을 반복하는 등 일자리가 불안정한 건설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반발했다”며 “양씨에게 적용된 혐의인 노조의 채용 강요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건설현장은 다단계 불법하도급과 불안정 고용이 만연한 탓에, 노조가 건설업체에 직접 노동자를 공급하고 단협을 체결해 투명한 고용관계를 요구해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3만명(주최측 추산, 경찰 추산 2만5000명)이 모인 가운데 ‘2023 세계 노동절 대회’를 열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은 검찰공화국을 만들어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압수수색은 일상이 됐고 건설노동자들의 구속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며 “불법·비리·폭력·간첩 등 온갖 낙인을 찍어 민주노총을 공격하는 저들의 목적은 결국 민주노조의 말살”이라고 했다.
한국노총도 서울 여의대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대정부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김동명 위원장은 “(정부는) 회계장부를 뒤지고, 과태료를 부과하고 노동복지회관을 노동조합에서 빼앗는 걸 소위 노동개혁이라 강변한다”며 “근로시간 개편도, 임금체계 개편도, 파업권 무력화도 결국 사용자와 자본을 위한 선물 보따리”라고 했다. 한겨레는 “한국노총의 노동절 집회는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지침 등에 반대하며 연 노동자대회 이후 7년 만”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12면에 노동절 집회를 다루며 교통체증과 소음을 제목에 올렸다. <민노총 2만명 점거…교통체증·소음에 갇힌 도심>이란 제목의 기사를 냈다. 양경수 위원장 발언을 전하면서 “강릉지원 앞에서 민주노총 건설지부 간부 양모씨가 분신을 시도했는데, 이를 현 정권 탓으로 돌린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첫 문단에선 “민주노총은 집회 도중 연막탄을 터뜨리기도 했다”고 밝혔고 기사 끝무렵엔 “도심은 이날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윤석열 “법치 확립” 입장에 “선택적 법 적용, 노조 옥죄기”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진정한 노동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하고, 기득권의 고용세습은 확실히 뿌리뽑을 것”이라며 “더 많은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노동을 유연화하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타파할 것”이라고 썼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정부·여당은 걸핏하면 노사 법치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그 실체는 선택적 법 적용에 따른 ‘노조 옥죄기’로 보인다”며 “기득권 노조가 문제라고 연일 외치지만, 정작 노사정 대화를 복원하고 노동시장의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노동 존중’ 없이 법치를 논해선 안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사설 <노동절에 노조 간부 분신… 노사정 대화·상생의 길 열어야>에서 “법치주의가 틀린 말은 아니나 실제 내용은 노조 압박이고, 노사 타협은 실종된 채 문제를 악화시키니 걱정스럽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노조를 적으로 몰아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도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조들이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모습을 보인 적 있”다며 “노조 또한 노동자 전체 이익을 대변하기 바란다”고 했다. 정부가 전방위 수사를 벌이고 있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은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다.
‘요란한 빈수레’로 끝난 KBS 감사에 신문들 “정치감사”
감사원이 지난 7개월 간 공영방송 KBS를 감사한 결과 “중대한 위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1일 발표했다. 다수 신문이 “감사가 ‘빈손’으로 끝났다”고 보도한 한편 일부 신문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한편 국민의힘은 같은 날 KBS의 라디오 출연진 섭외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감사원은 KBS 복수노조 중 1곳과 보수단체 청구를 받아들여 ‘KBS 이사회의 사장 검증 태만’ 등 5개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지난해 9월부터 벌였으나 “5건 모두 중대한 위법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시민단체와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 때 임명한 김의철 사장이 제대로 된 검증 과정 없이 최고위직에 올랐다’며 의혹을 제기해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소식을 전했다.
이번 감사는 KBS 소수노조와 보수단체들의 국민감사 청구로 시작됐다. 감사 대상은 △KBS 이사회의 사장 후보자 검증 태만 의혹 △KBS 이사회의 경영 악화 계열사 부당 증자 의혹 △방송용 사옥 신축계획 무단 중단 의혹 △특정 직원 해외여행 시 병가 처리 의혹 △20대 대선 직후 증거인멸 목적의 문서 폐기 의혹 등이었다.
다만 감사원은 KBS 사장 후보자의 정당 가입 이력을 검증하는 과정이 없는 허점이 발견됐다며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경향신문은 “위법·부당 행위는 없다는 감사에서 별건의 꼬투리를 잡은 걸로 보인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이를 두고 ”윤석열 정부 코드에 맞춘 표적 감사나 공영방송 장악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에 할 말이 없게 됐다. ‘정치 감사’ 시비만 키운 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그간 여권의 사퇴 압박을 받는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한 무리한 감사로 독립성 논란을 빚었다”며 “감사원이 중립 원칙을 깨고 정권의 이익에 부화뇌동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의 공영방송 흔들기와 언론 장악 시도 역시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KBS 라디오 출연진 섭외가 편파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 의장은 보수성향 전·현 언론인 단체인 언론인총연합회가 KBS 게시판에 올린 글을 인용해 “KBS 시사 라디오 5개 프로그램에서 좌파, 야당 친화 출연자는 80명인 데 비해 우파 또는 여당 친화 출연자는 11명”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두고 “양곡관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간호법에 대해서도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남발한다는 비판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방송법 개정안이 다음 본회의에서 표결을 앞두고 있으며, 공영방송별로 9~11명인 이사회를 21명으로 늘리도록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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