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노총이 올해 26억원 규모의 정부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에서 탈락했다. 정부가 노조 회계자료 미제출을 빌미로 노동계 압박을 위해 본격적으로 돈줄을 쥐고 흔들고 나선 것으로, 노조 도움을 받던 ‘노동 약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고용노동부는 지난 28일 한국노총 본부에 보낸 ‘2023년 노동단체 지원사업 심사결과 알림’ 공문에서 “보조금 신청에 대한 선정 심사위원회 심사 결과, 지원 대상 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는 해마다 노사 상생·협력 증진 명목으로 노동단체와 비영리법인을 선정해 국고보조금을 지원한다. 올해는 지난 3월 노동단체 44억7200만원, 비영리법인 11억3천만원 규모로 지원사업 공모 신청을 받았다. 한국노총도 매년 26억원 규모로 지원을 받아왔는데 올핸 탈락한 것이다.
지난 28일 고용노동부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에 보낸 공문. 한국노총 제공
정부가 한국노총 본부에 지원사업 탈락을 통보한 배경에는 ‘노조 회계 미제출’이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회계 관련 법령상 의무를 준수하지 않는 단체는 (지원사업) 선정에서 배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회계자료 관련 내지 제출 요구는 자주성을 침해하는 반헌법적 행위”라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문제는 지원사업 선정 중단이 총연맹 본부가 아니라 지역의 취약 노동자 권리 보호에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사업 대가로 받은 보조금 26억원 중 14억7700만원을 전국 19개 지역노동교육상담소 운영(법률상담·구조 사업)에 썼다. 나머지 보조금은 노조 간부 교육, 정책연구 사업 등에 쓰였다. 지난해에만 2만5천여명의 노동자가 한국노총이 운영하는 전국의 지역 상담소를 이용했다. 정부 보조금 중단으로 상담 업무를 하는 상담소 직원 30여명은 고용 불안에 놓이게 됐다.
이동철 한국노총 부천교육노동상담소 상담실장은 “가장 취약한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지푸라기를 붙잡는 심정으로 방문하는 곳이 지역 상담소”라며 “안 그래도 인력이 늘 부족한데, 예산이 끊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상담 서비스의 질을 더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당분간은 총연맹 일반 예산으로 상담소를 운영하려 하지만 이후 사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노동부는 회계 법령을 지키지 않은 노조 대신 올해 지원사업 예산의 50%를 신규 참여 기관에 배정한다고 밝혔으나, 이들의 신청률은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지원사업 선정과 관련한 예산 44억원 중 8억원 규모의 기관만 선정 통보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회계 관련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단체는 이번 공모에서 선정되지 못했다”며 “(44억원 중) 남은 예산과 관련해서는 (5월 중) 2차 공모 신청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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