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 서원은 역경(譯經), 현실은 역경(逆境)?
» 파업과 탈레반들로 인해 곧장 남하할 수도, 스와트 계곡으로 갈 수 없어 ‘해방 카쉬미르’를 뜻하는 아자드 카쉬미르를 지났는데 이곳이 슈라이만 산맥 언저리다. 바슈샬 고개 아래에서 지나온 길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벌써 6년 전이다.
지난 2011년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대장경 : 2011년 고려대장경 천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학회에 티벳 대장경에 대해 발표하러 인도에서 잠시 귀국하여 서울에 머물 때 고려대장경 연구소의 이사장인 종림 스님의 옆방에 짐을 풀었다. 하루는 스님께서 당신께서 낙향하실 예정인 고반재(考般齋) 팸플릿을 보여주셨다. 당시 용수의 6대 저작이라는 『중관이취육론』을 티벳어에서 우리말로 옮기는데 한창 빠져 있을 때라, 그 후속 작업인 『중론』 8대 주석, 그리고 쫑카빠나 렌다와의 티벳 주석 등을 우리말로 옮기기에 대학에 적을 두고 있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처럼 보였다.
“그럼 같이 내려가시지요.”
아무 것도 없어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지혜를 생각하는 집’, 고반재(考般齋) 팸플릿.
» 고반재 개관식
그리고 2년 후 무턱대고 들어온 한국 땅, 섬진강 하류에서 자라서인지 남강 상류를 보고 ‘저것도 강이라고!’라며 함양 안의에 와보니 ‘반야(지혜)를 생각하는 집’이라는 고반재는 3×6m짜리 컨테이너 두 동이 전부였다! 이후 2년 여 동안 책 박물관 고반재가 세워질 때는 감독관을, 그리고 공양주, 부목, 매니저로, 때로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대장경에 대해서 설명하는 ‘문화 해설사’로 변신하며 살고 있다. 역경의 서원은 이미 한 귀퉁이로 내팽개쳐 있고 트랜스포머도 아닌 ‘멀티 플레이어’가 된 신세를 한탄하면, 스님께서는 ‘종이 쪼가리 하나에 속은 놈’ 또는 ‘중관사상을 전공한 놈이 그것도 몰랐냐!’라고.
“그러게 말입니다. 괜히 역경의 서원을 세워가지고!”
‘세운 서원은 역경(譯經)인데 현실은 역경(逆境)인 셈이라고? 그렇지 않다. 고통[苦]은 언제나 현재적이다. 지나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오면 파수를 지나치게 된다. 인더스 강의 상류를 따라 내려오면 현지인들이 건너다니는 오른쪽에 놓인 이 다리를 보게 된다.
»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으로 오면 파수를 지나치게 된다. 인더스 강의 상류를 따라 내려오면 현지인들이 건너다니는 오른쪽에 놓인 이 다리를 보게 된다.
» 옛 간다라의 영화를 뒤로 한 탁실라의 다르마라지까(Dharmarajika) 대탑에 앉아 잠시 쉬고 계시는 종림 스님.
그러면 파미르 고원을 넘는 풍경과 간다라가 떠오른다.
불교를 배우러 인도로 오갔던 세 명의 대표적인 승려는 육로로 갔다가 해로로 돌아왔던 『불국기(佛國記)』의 저자 법현(法顯, 337~422?), 육로로 왕복했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저자 현장(玄奘, 602?~664), 그리고 해로로 갔다가 육로로 돌아왔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저자 혜초(慧超, 704~787)라고 ‘조선 3대 천재 중의 한명’이라던 최남선이 정리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파미르 고개를 넘을 때면 법현이 먼저 다가온다.
법현 등 세 사람은 남쪽으로 나아가 소설산을 넘었다. 소설산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눈으로 덮여 있었다. 산 쪽을 올라가고 있을 때 차가운 바람이 사납게 휘몰아치자 사람들은 모두 숨소리도 못 내고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했다. 일행 가운데 혜경은 더 이상 걸을 수 없게 되고 입에서는 흰 거품을 토하면서 법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 또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군요. 빨리 가십시오. 우물쭈물하다가 함께 죽어서는 안 됩니다.” …
-나가사와 가즈도시, 『실크로드 문화와 역사』, 민족사, p. 92에서 재인용.
여기서 말하는 소설산은 파미르 고원을 넘으면 마주치는 힌두쿠시 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슈라이만 산맥(Sulaiman Mountains)을 가리킨다. 법현 일행은 파미르 고원을 무사히 넘었지만 결국 두 번째 고개를 넘다 변을 당한 셈이다. 그리고 인더스 강을 따라 남하하다 마주치는 간다라의 풍경은 한 때의 영광을 뒤로한 채 폐허의 유적으로 변해 있다. 그 풍경은 무상(無常)함을,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항상하지 않음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 산맥, 파미르 고원이나 서티벳의 곤륜 산맥의 그 헐벗은 고산 고원을 지나다 보면 한 때 바다 밑의 낮은 곳이었음을 상기시키는 강바닥의 자갈 위를 걷게 된다. 인간이 쌓고 부순 그 폐허의 역사와 고산의 고갯길의 고운 자갈들 하나 하나가 한 생의 덧없음을 가르치는 큰 스승이었던 지난날이었다.
움켜쥔 모래 한 줌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 놓인 자신의 삶에 대한 직시란 저마다의 몫이고 한 생의 고(苦) 또한 마찬가지, 나는 그저 그것을 육로로 인도를 오가며 뼛속 깊이 새겼을 뿐이다. ‘벽에 못을 박지 않는다.’라는 브레히트의 시의 한 대목처럼 하룻밤을 지내면 떠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한 자리에 머무는 것은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역경의 서원은 그 어떤 것보다 앞선다. 결국 불가역적인 시간의 축을 거스를 수 없는 한 생을 이끄는 역경의 서원은 현재적인 자기 의지를 구현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그렇게 떠돌며 배운 게 고작 책상머리와 밥상머리의 수평 이동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존재의 집인 시간과 공간의 축 위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곧 행복이다. 오직 이것 하나를 알기 위해 떠돌았다면 지나온 길들이 너무 멀고 거칠었던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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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환
- 1993년 이후 파미르 고원을 넘나들며 인도, 네팔, 티베트 등을 방랑하고 인도 ‘평화의 땅’ 샨티니케탄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쳤다. 한국인으로 최초로 타고르 대학으로 알려진 비스바 바라띠의 인도-티베트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며 티베트 스님 등에게 불교 철학, 중관사상을 가르쳤다. 귀국 후 ‘공성의 배움터 중관학당’을 열어 중관사상에 대한 역경과 집필, 대중 강좌를 하고 있다.
- 이메일 : patiensk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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