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펼쳐보면, 제재란 사전적 의미로 ‘일정한 규칙이나 관습의 위반에 대해 제한하거나 금지함’이라고 나온다. 또 ‘법이나 규정을 어겼을 때 국가가 처벌이나 금지 따위를 행함’이라는 법률적 용어로도 사용된다. 한 사회가 정한 규칙이나 혹은 그 사회가 지켜오던 문화와 관습을 위반했을 때 내리는 처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확대시키면 국제사회가 한 나라의 국제적인 규칙과 규정의 위반에 대해서 내리는 벌칙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제재란 용어가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지난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되었다. 원유 공급의 감축과 섬유류 수출의 봉쇄,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금수 등이 포함되었고, 박영식 인민무력부장이 제재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이로써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11번의 유엔 차원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또한, 이번의 제재 조치는 6차 핵실험 이후, 9일 만에 결의가 이루어짐으로써 역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제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결국 북한의 ‘도발 – 제재 – 더 큰 도발 – 더 큰 제재’라는 악순환의 전통(?)이 그대로 유지되게 되었다. 제재를 당하는 쪽에서는 더 큰 보복을 말하고, 제재를 하는 쪽에서는 더 큰 제재를 위협하고 있는 전통도 아울러 이어가게 되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제재 결정 이후 3일만에 북한은 또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그런데 이번 제재의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바로 우리 정부였다. 특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제재를 역설하는 우리(?) 대통령은 과연 우리가 촛불로 뽑은 대통령인가 싶을 정도였다.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신념일까? 아니면 전술적 태도였을까? 국제사회보다 더 앞장서서 제재를 역설하는 것에 대해 ‘전략적 이해를 위해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기는 것’이라는 안쓰러울 정도의 두둔하는 입장이 나오는가 하면 여론을 빌어 ‘사드 배치’의 찬성이 더 높다고 역설하는 모습에서는 ‘저 멀리 떠나버린 님’을 생각나게 만든다.
푸틴 대통령 앞에서 원유 공급 차단을 역설하는 용기가 있었다면, 이런 용기를 미국을 향해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미국을 향해 북한과 진지한 협상에 나서라고 할 수는 없었을까? 사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다 더 과감한 결단과 모험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바뀌었고, 무엇보다 남북한이 바뀌었다면 그에 맞는 대북정책을 펼쳐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초기에 보여주었던 모습은 과거의 레코드판을 재탕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단순히 외교안보진영의 문제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현실 인식과 북한-통일문제에 대한 사고의 깊이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잘못된 정보에 기초해 원유공급 중단을 역설하는 대목에서는 아연이 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제재에 올인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과거 정권과 달라진 점을 하나도 찾을 수가 없다. 때마침 일본 <조선신보>의 논평에서는 ‘북남관계를 파탄시킨 그전 정권보다 나은 게 뭔데요?’라는 글이 실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 질문은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그리고 통일안보 분야에서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되고 말았다. 더욱이 6차 핵실험 이후, 전술핵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광분에 가까운 정치권의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더 더욱 그렇다.
무엇을 해야 할까? 혹자는 더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한을 굴복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끝까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북한이 우리의 대화 제의를 받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실제, 북한의 반응은 ‘끝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었다. 미국과 전략적 균형을 이루겠다는 포부까지 밝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실상 우리 정부의 대응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현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으며, 또 그렇게 하다가는 소위 말하는 ‘코리아 패싱’에 직면할지도 모르는 위험성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문에는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동시에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보자. 지금의 시점에서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미국에게 대화로 문제를 풀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푸틴 대통령의 면전에서 원유공급 중단을 용기(?)있게 말한 것처럼,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진지한 협상과 대화에 나설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이 유엔 결의문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다.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는 것만큼, 강력한 대화의 요구도 같이 가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는 우리 정부가 나서서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이미 이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협상의 주체임을 오래전부터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북한에게만 손짓을 하고, 말할 것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한가한 판단을 내리고, 제재에 올인하는 그런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금이 북한과 미국을 마주 앉혀놓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중국-러시아와 협력하여 소리 높여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미국에 NO!라고 말하는 그런 식의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함께 이 문제를 풀기위해서도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고, 북한과의 협상과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결국 향후의 남북관계를 위해서도 지금은 미국을 향해 말해야 할 때이다. ‘전쟁이 나더라도 한반도에서 죽는 것’이라는 무책임한 말을 내뱉고 있는 미국을 향해, ‘전쟁은 결단코 안 되며, 군사적 옵션은 문제 해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임을 말해야 한다. 푸틴 앞에서 근거도 없는 정보를 가지고 ‘원유공급 중단’을 말할 용기가 있다면, 미국에게도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소위 말하는 ‘골든 타임’을 놓쳤고, 미국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중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리 생각해도,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것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문학박사, 2001)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 대학 방문연구원(2002-2003) 서울대 국제대학원 연구위원(2004-2006)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객원연구원(2007) 현재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주요저서로 북한의 개혁·개방: 이중전략과 실리사회주의(2004), 김정일 리더십 연구(2005), 서울과 도쿄에서 평양을 말하다(2008), 북한과 미국: 대결의 역사(번역서, 2010)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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