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지키는 사람들: 꺼지지 않는 촛불법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꺼지지 않는 촛불법회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여수령 김정현 기자
승인 2017.09.2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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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차 조계종 적폐청산 촛불법회가 21일 사부대중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신각 광장에서 봉행됐다.

“저희들이 지금은 비록 미약할지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반드시 청정하고 화합하는 승가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굽어 살피시고 가피를 내려 주시옵소서.”

조계종 적폐청산을 염원하는 불자들이 다시 보신각 광장에 모였다. 지난 9월 14일 범불교도대회를 치러낸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와 ‘청정승가공동체 구현과 종단개혁 연석회의’는 21일 오후 6시 30분 서울 보신각 광장에서 제8차 조계종 적폐청산 촛불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사부대중 1000여 명이 참석했다.

법사로 나선 전국선원수좌회 부의장 원근스님은 종단의 답답한 현실에 ‘할’을 외치고 법회에 참가한 불자들을 “이 시대 진정한 관세음보살”이라고 격려했다. 스님은 “선원에서 화두를 들고 있어도 온 몸이 답답하다. 이 답답함을 여러분 앞에서 소리 한 번 질러 해소하겠다”며 ‘할’을 외쳤다.

전국선원수좌회 부의장 원근스님.

원근스님 “수행자가 재물에 빠져 화합 못해”

이어 35년 전, 남해 보리암에서 만난 한 스님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스님은 “사찰 분규로 쫓겨난 어느 스님이 저에게 8만원을 주시며 ‘절대 스님은 분규에 끼어들지 말라’고 당부하더라. 당시 객비로 1500원 정도를 받던 제가 그렇게 큰돈을 받고 나니 누가 가져갈까 두려워 잠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신발이나 옷 같은 것들을 사드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재물은 우리 삶의 윤활유와 같은 흐름이다. 그 흐름을 멈추면 우리도 적폐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은 수행자들이 재물에 빠져 화합하지 못하고, 각자 소외된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원근스님은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을 많은 스님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리에 연연하고, 탐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진정한 관세음보살이요 보현보살”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제가 그간 많은 허물을 갖고 살았으나 이 자리를 계기로 제 삶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여러분들도 종단 현실에 분노하고 개혁하는데 머무르지 말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올바른 수행관으로 정진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지난 3개월 간 조계사 앞 1인 시위와 단식정진단 외호에 참여해 온 보명 김용배 거사.

보명 거사 “스님 기본권 보장하는 종단 만들자”

다음으로 조계사 앞 1인 시위와 단식정진단 외호에 참여하고 있는 보명 김용배 거사가 무대에 올랐다. 보명 거사는 ‘바른 도반의 길’이라는 자작시를 낭송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정신 따라 길은 늘 새로워져야 하오리다. 황홀한 유혹에도, 쏟아지는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길을 부디 함께 가자”고 말했다. 수좌스님들에게는 “각자도생하는 종단이 아니라 스님들의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종단으로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한주영 불교환경연대 사무처장은 단식 정진 중인 비구니 선광스님과 석안스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주영 사무처장은 “승가는 평등하고 화합하는 무리라는 뜻임에도, 지금의 조계종은 평등하지 못하다. 단지 비구니라는 이유로 소외받고 있다. 평등이 깨지면 화합할 수 없다. 우리가 매주 촛불을 들고 이 자리에 모이는 이유는 청정하고 화합하고 평등한 교단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길을 가는데 때로는 힘들고 실망하고 의혹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 때 잠시 흔들릴 수 있지만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함께 하자”고 말했다.

10일간의 단식정진을 회향한 용상스님은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용상스님 “적폐청산은 바위로 계란치기”

10일간의 단식정진을 회향한 용상스님은 사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대안스님과 함께 자승스님을 도박장 개설 혐의로 고발한 용상스님은 “사법부는 절규하는 많은 불자와 스님들의 외침에 귀 기울여 자승 원장의 의혹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적폐청산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이 아니라 바위로 계란치기”라며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바로 시대를 이끄는 마중물”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발원문을 통해 “그동안 저희들은 불교공동체가 병들고 썩어가고 있어도 내 일이 아니라고 눈감고 귀 닫았다. 나에게 돌아올 피해를 걱정했고 때로는 경멸하고 무시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참회했다. 그러면서 “저희들이 지금은 비록 미약할지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루는 것처럼 반드시 청정하고 화합하는 승가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굽어 살피시고 가피를 내려 주시옵소서”라고 발원했다.

21일 단식 8일째를 맞은 허정스님.

허정스님 “깨어 있는 불자들에 감사…유종의 미 거두자”

발원문 낭독을 마친 참가자들은 ‘적폐청산 자승퇴진’ ‘국정원 종교개입 총무원장 조사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촛불 행진을 시작했다. 행렬은 보신각 광장을 출발해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와 안국동 사거리를 돌아 단식정진단이 있는 조계사 앞에 멈춰 섰다. 단식 8일째를 맞은 허정스님이 정진단에서 참가자들을 맞았다. 단식 6일차인 비구니 선광스님과 석안스님은 은사스님이 단식을 만류하기 위해 찾아와 잠시 자리를 피한 상황.

허정스님은 “지난 범불교도대회를 마치고 다시 이렇게 촛불법회에 동참해 적폐청산을 외치는 여러분들의 모습에 감동을 느낀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어 “우리가 자승 퇴진을 외치고 적폐청산을 외치지만 그 뜻이 이뤄지지 않아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운동을 통해 깨어있는 불자가 생겨나고, 적폐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이 우리의 성과라 생각한다. 더 많은 분들이 이 운동에 동참해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7시께 포털사이트 다음의 실시간이슈 1위에 '보신각 촛불법회'가 올랐다. 제9차 조계종 적폐청산 촛불법회는 9월 28일 오후 6시 30분 보신각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