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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으로 송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평양시민 김련희 씨의 수기와 대담집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가 31일 저녁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예홀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바람아 나를 데려가 주렴 / 우리 아가의 고운 꿈속에 / 사랑하는 나의 고향에..."
지난 31일 저녁 김련희 씨의 수기와 대담집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서울시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예홀. 노래패 '우리나라'가 만들어 이날 처음 부르고 듣게 된 노래가 나즈막히 흘러나오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자리에 앉아있던 김 씨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015년 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해 자진해서 뒤집어쓴 간첩혐의는 수감생활로 이어진 또 다른 분단의 멍에였다. 어머니와 딸, 남편이 있는 고향, '사회주의 조국' 평양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담은 그의 옥중시는 이렇게 노래가 되었다.
김 씨는 지난 2011년 9월 16일 브로커에 속아 한국에 들어왔으나 곧바로 자신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이라며 북으로 송환해 줄 것을 요구했고 그 후 지금까지 남녘땅에서 신형 이산가족으로 살면서 분단 비극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김 씨의 남녘 생활 7년은 분단의 비극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는 간고분투의 분단 극복사이기도 했다.
지난 2015년 간첩이 되어서라도 대한민국에서 추방되어 북으로 돌아가려 했던 김 씨는 재판과정에서 탈북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를 수소문하던 장경욱 변호사와 만나게 되면서 남녘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말할 수 있었다.
그해 7월 3일 하재현 기자와 인터뷰한 한겨레신문 토요판 커버스토리 '나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제하의 기사를 계기로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도 했고 민가협양심수후원회의 목요집회에도 빠지지 않고 나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기독교평화행동목자단의 목사들과 베트남대사관을 통한 망명도 시도해 보았고 남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북의 선수들이 입국이라도 할 때면 자신의 처지와 호소를 전달하기 위해 경찰과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공항으로 경기장으로 동분서주했다.
여러 기자회견과 인터뷰는 물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청년.대학생들과 북의 현실에 대한 강연에도 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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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씨는 어머니가 실명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얼굴을 보고 싶다는 애틋한 심경과 함께 지금까지 남녘에서 자신을 믿고 격려해 준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김 씨가 기록하고 '평양주민 김련희 송환준비모임'이 엮은 수기와 대담집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 출판기념회에는 최근 2년간 그와 만나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서 그의 송환을 위해 애써온 법조계, 종교계, 인권.통일운동 관계자들이 빈자리 없이 참석해 늦은 시간까지 함께했다.
지난해 3월 김 씨의 요청에 따라 망명신청을 하기 위해 베트남 대사관에 동행하기도 했던 한국기독교평화연구소 문대골 목사는 "김련희를 고향에 보내지 못하면 이건 나라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로 탄생했으니까 김련희를 고향으로 돌려 보낼 뿐만 아니라 김련희로 남과 북을 묶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헌 민간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북에서 양복사로 일해 온 김 씨가 지난해 솜씨를 발휘해 만들어 드린 여름 양복을 입고 나와 김 씨의 지난 7년 남녘에서의 생활은 '평범한 사람이 한 위대한 일'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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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구에 사는 평양시민입니다』[자료사진 - 통일뉴스] |
"김련희 씨는 북으로 돌려보내달라는 개인적인 호소를 넘어 분단된 우리 민족의 아픔을 세계에 말하고 남녘 동포들에게도 누구보다 떳떳하게 자기 조국인 북의 실상을 말해 왔다. 한시도 쉴틈없이 온 나라를 누비면서 특별히 남을 비난하지도 않았고 또 북을 찬양하지도 않았다. 장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탈북자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쫓아 다니던 중에 김 씨를 만났기 때문에 자신은 김 씨가 나중에 집행유예로 나온 상황에서도 조작 혐의를 벗기는데 급급했지만 김 씨는 처음부터 자신이 속아서 남쪽에 오게 됐으며, 목숨을 걸고서라도 북으로 가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며 "돌이켜보면 매우 지혜로운 태도였다"고 밝혔다.
김련희 씨는 이날 "어머니가 실명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애틋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 자신을 믿어주고 세상밖에 사연을 알려준 분들과 세상에 첫걸음을 뗄 수 있게 하고 책을 쓸 수 있도록 격려해 준 분들, 대구에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준 대구송환모임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전했다.
대구송환모임 대표인 최형태 변호사는 추천사에서 '통일의 시작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라며, 김련희 씨가 본인의 의사와 희망에 따라 북쪽으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정부의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다.
또 김 씨가 책에서 밝힌 북의 현실은 지금까지 나온 그 어느 자료보다 상세하고 진정성이 넘치며, 젊은이들과 나눈 대담과 인터뷰 형식도 매우 적절해 '피부에 와닿는 통일교과서'로 널리 활용할 만하다고 호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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