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재홍 전 PD수첩 작가 “해고 이후 최승호는 날카롭게 벼린 칼이 됐다, 나도 더욱 단단해졌다”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6년 03월 18일 금요일
“위대한 작가는 말하자면 그의 나라에서는 제2의 정부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권도 별 볼 일 없는 작가라면 몰라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
러시아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작가의 사명을 이처럼 설명했다. 권력의 치부를 드러내고 진실을 좇는 이 시대 작가의 숙명이기도 하다.
정재홍 전 PD수첩 메인작가는 이 말이 들어맞는 작가다. ‘용산참사’ ‘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 ‘검사와 스폰서’ ‘4대강, 수심 6m의 비밀’ 등 그가 PD수첩 작가로서 이뤄놓은 성과는 권력의 썩은 폐부를 드러내며 진실을 추구한 결과였다.
그만큼 그는 권력을 불편하게 했다. 2012년 MBC에서 해고된 까닭도 그의 작가 기질에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 MBC PD수첩 작가 6명 전원 해고 파문>
정 작가의 펜은 다시 권력을 향한다. PD수첩 동료인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앵커)와 함께 작업한 영화 ‘자백’은 국정원이 어떻게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세웠는지 고발한다. 그는 구성과 시나리오, 대본 등을 담당했다.
지난 15일 오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만난 정 작가는 자백 제작의 공을 최 PD와 제작 총괄 김재환 감독에게 돌렸다. 자백은 다음달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아래는 일문일답.
▲ 정재홍 전 PD수첩 메인작가가 15일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
“뉴스타파 목격자들이라는 코너를 통해 시사 프로그램을 해왔다. 지역 언론에서도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업을 했다.”
- 영화 ‘자백’은 어떻게 제작하게 됐나?
“3년 전부터 최승호 PD가 뉴스타파에서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을 취재하지 않았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사건도 있었고. 국정원의 간첩 조작은 개별적이고 파편화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꿰어서 볼 필요가 있다. 영화라는 형식을 빌려 최 PD, 김 감독과 의기투합한 것이다.”
-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간첩으로 지목한 사람들이 무고하더라도 이를 뒤집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누가 확인해줄 수 없으니까. 그 지점이 참 어려웠다. 최 PD의 뛰어난 취재력과 탐사보도가 없었다면 작품은 없었을 것이다.”
영화 ‘자백’은 2011년 12월 탈북자 조사기관인 경기도 시흥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발생한 한아무개씨의 사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국정원은 한씨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뒤 북한에 있는 가족이 피해를 입을까봐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영화는 이 사건 역시 국정원의 조작이었음을 밝히며 묘비 하나 없이 죽어야 했던 이의 비극과 국가 폭력을 냉철하게 추적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동안 ‘설명조’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반면 영화는 멘트, 장면 모두가 하나의 상징으로 기능하더라.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것은 팩트다.”
- 영화 일부 장면들이 흥미로웠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거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취재하는 모습도 담겨있던데.
“김기춘을 빼놓고 1970년대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을 이야기할 수 없다. 원세훈은 탈북자 간첩 조작 사건의 핵심 당사자다. 간첩으로 지목된 이들은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약자다. 간첩은 곧 멸문을 뜻했다. 그런데 대법원이나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런 차원에서 필요했던 취재다. 영화에서 원세훈 취재 영상은 ‘압권’이다.(웃음)”
- 국정원은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 이후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압박하고 있는데.
“국정원의 간첩 조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쥔 자신들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테러방지법 통과로 조작은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일반 국민의 사생활을 엿보게 되니까.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 ‘우리의 문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최승호 PD를 떼어 놓고 정 작가를 설명할 수 없듯 정 작가를 떼어 놓고 최 PD를 설명할 수 없다. 최 PD는 정 작가에 대해 ‘나의 파트너’라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검사와 스폰서’ 등 PD수첩의 걸작들은 최 PD와 정 작가의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 작가는 “이번 영화로 최 PD가 더욱 스타가 돼야 한다”며 웃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이후 숱한 고초를 겪었다. 당장 실무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자백은 국정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데 현 정치 상황에서 오죽하겠나.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해주신 관계자들의 용기와 신념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영화는 팩트를 기반으로 촘촘하게 엮었다는 것이다. 논란의 소지가 없다.”
“김재철 사장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최 PD는 MBC에서 해고된 이후 저널리스트로서 완벽해진 것 같다. 지금 연차로 보면 최 PD는 MBC 임원을 해야 할 때다.(웃음) 해고가 안 됐다면 최 PD 역시 안에서 고통스러웠을 거다. 그는 날카롭게 벼린 칼이 됐다. 나 역시 (해고 이후) 보다 절박해졌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한다. 예전 초심으로 작업을 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번 영화 역시 최 PD의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기관을 상대로 한 저널리스트의 완승이었으니까.”
- 공영방송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찾아볼 수 없는 시대인데.
“가슴이 너무 아프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민주주의의 척도다. 민주주의가 축소되고 움츠러들면 탐사보도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탐사보도가 제대로 역할을 해야 민주주의가 숨쉴 수 있다.”
▲ 정재홍 전 PD수첩 메인작가. (사진=김도연 기자) |
“글쎄, 거창하게 말하긴 좀 그렇고.(웃음) 다만 어떤 가치를 중심에 놓고 글을 쓸 것인가 고민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평등, 인권, 평화, 자유를 고수하고자 한다. 사실 위에서 그것을 해석하는 잣대가 보편적 가치다. 흔히들 ‘저널리즘은 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프로그램에 몸을 담고 있다면 그 누구도 저널리즘의 원칙과 가치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역할만 다를 뿐이다.”
- 영화를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비굴하지 않다는 것이다. 올바르게 살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다. 국가폭력에 희생됐지만 그 모습은 비굴하지 않았다. 영화는 그 삶들을 보여줄 것이다. 국가 권력에 주눅 들지 마시고 담담하게 와주시면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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