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이란 말은 청년들 사이에서 회자되었습니다. 지금 20대 청년들을 보십시오. 1990년대에 태어나 유치원을 다닐 시절에 IMF 외환위기를 겪었습니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던 시절, 무한경쟁에 내몰린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만은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게 하고 싶어 사교육에 맡겼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금모으기 운동을 하던 우리 아이들이 어느덧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는 “청년”이 되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은 초등학교 시절에 ‘카드대란’을 겪었고 학창시절에 미국발 경제위기를 겪었습니다. 우리 청년들에게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10년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니라 과도한 경쟁으로 삭막한 흑백영화였습니다. 이러니 일부 20대 청년들은 DJ-노무현에 대한 보수세력의 비판에 쉽게 휩쓸리고 있습니다. 극소수 청년들은 불행하게도 일베와 같은 극우사이트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결코 우리 청년들의 책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병폐를 한 몸에 고스란히 견뎌야하는 우리 청년들은 이제 초인간적인 경쟁을 감내하라는 이념공세에 맞닥뜨렸습니다. 작년 한국사회를 강타하였던 드라마 ‘미생’은 초인간적 인내와 노력의 결정체였던 ‘장그래’라는 인물을 제시하였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제2의 ‘장그래’를 꿈꾸며 “더할 나위 없었다.”는 평가를 받으려고 맨발에 땀나도록 뛰지만, 거울에 보이는 나의 현실은 ‘원인터내셔날’이 아니라 여전히 편의점 알바, ‘편돌이’입니다.
시간에 쫓긴 “타임푸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이른바 ‘타임푸어’라고 합니다. ‘타임푸어(time poor)’란 아무리 일을 해도 빈곤한 상황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working poor)”에 빗대어 아무리 시간을 쪼개도 자기시간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상황을 일컫는 신조어입니다.
2015년 9월 4일, <한국대학신문>에 따르면, 전체 대학생의 61.3%가 스스로를 “타임푸어”라고 인식하였으며 타임푸어가 아니라는 응답자는 12.7%에 불과하였다고 합니다. 8명 중 5명의 대학생들이 시간에 쫒겨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으며 2명은 바쁜 듯 안 바쁜 듯 생활하고 있습니다. 청춘의 여유를 즐기는 대학생은 8명 중 1명꼴에 불과합니다.
이 학생들이 모두 학과수업과 공무원시험을 비롯한 국가고시를 준비하기 때문에 시간에 쫒기는 것일까요? 대학생들이 이렇게 시간에 쫓기게 된 직접적 원인은 황당하게도 “아르바이트”였습니다. 전체 대학생들의 34.6%가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에 쫓긴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시간이 많을수록 타임푸어 정도도 심해졌습니다. 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하루 8시간(주 45시간) 이상인 사실상 전업 알바생들이 타임푸어 정도가 가장 심했습니다. 알바수입도 월 120만원 이상의 ‘빡신 알바생’들의 타임푸어 지수가 가장 높았습니다. 일을 해야 할수록, 돈을 벌어야 할수록 시간을 뺏기는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학과공부에 시간을 뺏기는 비중은 27.8%에 불과하였습니다. 취업스터디가 20.7%였으며 장거리 통학이 13.1%를 차지하였습니다. 대학교육이 바라는 정상적인 대학생은 4명 중 1명에 불과하단 소리입니다.
우리 대학생들은 빠듯한 시간을 쥐어짜기 위해 37.4%가 주변사람과의 만남을 포기하고 있으며, 24.9%가 잠을 줄여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점심을 대충 때우는 경우도 14.8%에 이르는 등 이들은 어느 순간 고3의 생활을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르바이트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알바대학생들은 월 89만원의 평균소득을 올리기 위해 주당 평균 33시간을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공부가 될 리가 있겠습니까?
학생이야? 알바생이야?
이건 시간이 좀 지난 자료인데요, 2013년 4월 4일, 사회통합위원회와 보건사회연구원이 대학생 아르바이트 현황을 조사, 발표하였습니다. 대학생들의 노동시간은 휴학생이 주당 42.9시간을 차지하였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을 일하고 주말에 추가로 3시간을 더 일하는 격입니다.
그런데 재학생들도 주당 평균 26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합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오후 6시가 디면 하루 평균 4시간가량 알바를 뛰는 것입니다. 학교숙제를 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데이트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젊은이들이 사랑하는 연인들과 도서관에 함께 앉아 공부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숙제 빨리 끝내고, 또 알바 뛰러 가야합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학회모임, 취미생활은 이들에겐 사치로 느껴질 법합니다.
젊은이들의 알바는 청춘의 경험을 쌓고 어학연수나 배낭여행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는 취지라면 한번쯤 권장해볼만한 일이긴 합니다. 그러나 한국청년들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알바는 이미 알바노동이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지난 2012년, <알바천국>은 전국 대학생 남녀 1924명을 대상으로 ‘대학생 아르바이트 현황’에 대해 조사했다고 합니다. 전체 대학생의 60%가 경제형편이 어려워, 즉 먹고 살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응답자의 55.2%가 ‘지난해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다’고 응답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는 20대 초반의 70%가 대학생이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약 30% 가량의 청년들은 자기를 대학생이나 휴학생 취급하는 사회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2015년 3월 18일, <알바천국>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한 달을 살려면 41만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에 따르면, 대학생들의 자취 주거비용만 1달 평균 40만원이라고 합니다. 대학가의 원룸이 대체로 평균 그런 가격에 수렴할 듯합니다. 결국 부모님은 자신의 대학생 자녀가 공부에 전념하도록 지원하자면 1달에 80만원이 필요해집니다. 대학생 자녀가 둘이면 1달에 160만원입니다. 두 자녀를 원룸에 함께 몰아넣으면 120만원으로 줄겠네요. 이러니 학생들이 수원에 살아도 전철로 서울 신촌까지 오갑니다. 그래서 또 ‘타임푸어’가 되지요. 지켜보시는 부모의 마음은 대견하지만 웬지 짠합니다.
아이를 하나만 낳길 잘했다고 다행스러워할 때가 아닙니다.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전 아들만 셋인데, 3형제를 천막에서 노숙농성을 시켜야 할 판입니다. 전 이런 현실을 정말 바꾸고 싶습니다.
결정타는 등록금
여기에 우리 부모님들의 지갑을 사정없이 열어젖히는 주범이 또 있습니다. 그 결정타는 바로 대학생들의 대학등록금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등록금 지원을 각종 장학금의 형태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단순 지원이 아니라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대선공약집’ 36페이지에서 2014년까지 대학등록금 반값을 실천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청와대 들어갈 때에는 ‘반값등록금’을 이야기하더니 청와대 들어가고 나서는 반값이 50.0%라고 딱 잘라 말한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습니다.
2015년 대학등록금은 학기당 33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지방에 있는 부모님들은 1달에 80만원, 서울에 계긴 부모님들도 1달 40만 원의 생활비를 대 줘야 하는데 그게 빠듯하니 자녀도 알바전선에 뛰어드는게 다반사입니다. 서민가정에서 별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자녀가 알바비용으로 생활비를 해결한다 하여도, 등록금 폭탄이 떨어지면 별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130만 원 정도는 장학금으로 해결한다 하더라도 나머지 200만 원은 어떻게 하나요? 또 은행을 기웃거릴 수밖에요.
물론 대학 등록금이 반이 된다고 해서 대학생들의 처지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청년들과 또 부모님들은, 등록금이 반값만 되어도 그래도 숨을 좀 돌리겠다는 생각을 하실 법합니다.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의 비애
2013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대학생 수는 일반종합대학, 전문대학, 교육대학, 산업대학, 사이버 대학 등의 재·휴학생을 포함해 약 225만 명이라고 합니다. 20년 전 “한총련 100만 청춘”이라고 하였는데 대학생은 최대 300만 명 가까이까지 늘었다가 저출산의 여파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9.3%의 청년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대학생 중심의 청년문화에서 배제되어 고립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후 취업한 이후에도 대졸자들에 비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게 되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청소년들은 대학문을 시답지않게 여기기도 합니다. 일류대학을 갈 실력은 안 되는데, 그런저런 대학을 나와봐야 취직이 안 되는데 뭣 하러 가느냐는 것이지요. 비싼 등록금내며 대학에서 청춘을 버리다 인생을 빚으로 출발하느니, 차라리 일찍 취업해서 결혼자금이라도 마련하겠다는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토닥토닥은 그만. 이제 나가 싸워라.
어쨌거나, 지금 청년들은 매우 힘듭니다. 너무 바빠서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돌아볼 시간조차 없습니다.
한 평생 인생의 목표를 향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청년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청년들은 ‘웅대한 인생설계’가 아니라 그저 ‘저녁에 쉬는 삶’ 정도를 위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서른 살 취업할 때까지 20여년 동안이나 무한경쟁에 내몰려 있는 것입니다. 저녁 7시에 퇴근하는 말단 공무원이라도 되려면 20여 년간 학원과 과외, 그리고 고시원을 전전해야 한다면 이게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요?
우리 청년들을 위해 저희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같이 눈물 질질 짜며 “토닥토닥 ㅠ ㅠ” 같은 것은 하지 맙시다. 강남에 출마한 한 야당 후보는 아직도 “눈물정치”를 하고 계시던데, 나라의 희망인 청년들이 그들을 따라 눈물이나 질질 흘려서는 이 나라를 올바르게 개혁할 수 없습니다.
옛말에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했습니다. 저항은 압박받는 민중의 본성이자 고유한 권리입니다. 일개 미물인 지렁이도 울지 않고 꿈틀거립니다. 그런데 왜, 나라의 보배이자 미래의 희망인 우리 청년들이 단지 아프다고 울어야 합니까? 청년들이 아프다면 자신을 아프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1000 대 1의 초인간적 입사시험에 떨어졌다고 힐링하고 울어야 합니까? 그런 시험은 존재 자체가 청년들을 인간 이하로 무시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끊임없는 희생을 강요하는 보수사회의 저주로운 시스템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청년들의 희망은 탈정치가 아니라 진보적 사회 건설입니다. 돈이 사람을 규정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돈을 규정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국민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대통령을 쥐락펴락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들의 수많은 똥파리들이 국회에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입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민중을 쥐어짜는 똥파리들은 외면하는 게 아니라,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 정권의 거짓공약을 심판하고 “반값등록금”을 지킬 정치인을 뽑는 것은 그 첫 출발점입니다.
곽동기 상임연구원 / 우리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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