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놀이터 옆에 덫, 이번엔 너구리가 걸렸지만
어린이놀이터 옆 밀렵도구 창애 설치, 너구리는 발 절단 뒤 무사
만일 아이가 덫을 건드렸다면…, 동물 혐오자의 무차별 폭력 섬뜩
» 어린이놀이터 지척에 설치된 덫(창애, 붉은 원). 이 덫에 너구리가 걸려 있었다.
눈이 내리던 2월의 마지막 날, 목소리가 앳된 초등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의 소년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어떤 동물이 덫에 걸려있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덫이? 설마 그냥 어떤 구조물에 걸린 거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현장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정말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원 산책로 바로 옆에서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 덫(창애)에 앞다리가 걸린 채 고통스러워 하던 너구리의 모습.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너구리가 덫에 걸려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욱 무서웠던 건 이곳이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와 학교, 관공서, 큰 규모의 유치원도 자리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도 위치해 있었죠. 만약 어린아이가 산책로 근처의 풀밭에서 놀다가 이 덫에 걸리기라도 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현재 이런 덫이 어디에 얼마나 더 설치되어 있는지 파악되지 않아 그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아파트단지의 공원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자유로이 이용하는 장소여서 그 위험성은 더욱 높을 수밖에요.
» 덫이 설치되어 있는 위치는 어린이들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바로 옆에는 놀이터가, 불과 200m 근처에는 큰 규모의 유치원이 위치해 있습니다.
덫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포획 틀이나 올무 등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덫이 바로 ‘창애’입니다. 창애는 동물이 덫의 일부분을 밟으면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날카로운 톱니 부분이 콱! 하고 맞물려 동물의 신체를 물게 되는 구조의 덫입니다.
이 덫에 동물이 걸리면 피부와 근육의 손상, 골절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의 발목이 이 덫에 걸렸다면 어찌되었을까요? 골절 등의 큰 상처가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덫은 누구나 쉽게 구매해 설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의 소지 또한 높은 상황입니다. 사람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창애가 ‘쥐덫’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니까요.
» 추운 겨울, 굶주림에 지친 너구리가 사람의 거주지 주변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헤메고 있었고, 북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덫 근처에 다가왔을 겁니다.
보통 동물이 이러한 덫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더 큰 상처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발버둥치면 칠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치료도 어려워지죠. 또 빼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덫에 걸려 다리가 절단된 너구리의 모습.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너구리는 상당히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발가락의 일부만 덫에 걸려 있었고, 크게 발버둥치거나 물어뜯지 않아 상처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구조 이후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좌측 발가락에 약간의 폐쇄골절이 있었고 피부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역시 기존에 덫에 걸린 다른 개체들과 비교한다면 천만다행인 수준이었죠.
» 덫에 걸렸던 부위의 검사와 치료를 하는 모습.
» 좌측 발가락뼈에 골절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아파트 단지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덫을 설치해놓았을까요? 이런 곳에서 야생동물을 밀렵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최근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유기동물이나 길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혐오하는 마음에서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최근 뉴스만 봐도 독극물을 넣은 먹이를 이용해 길 위의 생명을 죽이거나 길고양이한테 화살을 쏘기도 하고, 길고양이에 밥을 주는 일명 ‘캣맘’이 폭행을 당하는 등의 동물혐오에 따른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바로 여기가 덫이 설치되어있던 장소입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 설치된 덫은 그 누구에게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리 길 위의 다른 생명이 불편하고 혐오스럽다 하더라도 어찌 이런 방법까지 선택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덫에 걸린 동물이 겪을 고통은 전혀 생각지 않았을 테죠.
그렇다면 동물도 동물이지만, 만약 이 지역 주민이나 어린이가 덫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지도 생각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면 아무렴 어때 하고 개의치 않았던 걸까요?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지금 너무도 끔찍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와 같은 시간, 장소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셈입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생명을 앗아가는 것도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니겠지요.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만일 아이가 덫을 건드렸다면…, 동물 혐오자의 무차별 폭력 섬뜩
» 어린이놀이터 지척에 설치된 덫(창애, 붉은 원). 이 덫에 너구리가 걸려 있었다.
눈이 내리던 2월의 마지막 날, 목소리가 앳된 초등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한껏 상기된 목소리의 소년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어떤 동물이 덫에 걸려있다고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덫이? 설마 그냥 어떤 구조물에 걸린 거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현장에 나가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과 마주했습니다.
정말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원 산책로 바로 옆에서 야생동물인 너구리가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 덫(창애)에 앞다리가 걸린 채 고통스러워 하던 너구리의 모습. 덫에 걸리면 빠져나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너구리가 덫에 걸려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욱 무서웠던 건 이곳이 아파트 단지 안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변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와 학교, 관공서, 큰 규모의 유치원도 자리해 있었습니다.
심지어 바로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도 위치해 있었죠. 만약 어린아이가 산책로 근처의 풀밭에서 놀다가 이 덫에 걸리기라도 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현재 이런 덫이 어디에 얼마나 더 설치되어 있는지 파악되지 않아 그 위험성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아파트단지의 공원과 같은 불특정 다수가 자유로이 이용하는 장소여서 그 위험성은 더욱 높을 수밖에요.
» 덫이 설치되어 있는 위치는 어린이들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바로 옆에는 놀이터가, 불과 200m 근처에는 큰 규모의 유치원이 위치해 있습니다.
덫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포획 틀이나 올무 등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덫이 바로 ‘창애’입니다. 창애는 동물이 덫의 일부분을 밟으면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날카로운 톱니 부분이 콱! 하고 맞물려 동물의 신체를 물게 되는 구조의 덫입니다.
이 덫에 동물이 걸리면 피부와 근육의 손상, 골절은 기본이고 심할 경우 신경이 손상되거나 절단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어린아이의 발목이 이 덫에 걸렸다면 어찌되었을까요? 골절 등의 큰 상처가 생기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덫은 누구나 쉽게 구매해 설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용의 소지 또한 높은 상황입니다. 사람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창애가 ‘쥐덫’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판매되고 있으니까요.
» 추운 겨울, 굶주림에 지친 너구리가 사람의 거주지 주변까지 내려와 먹이를 찾아 헤메고 있었고, 북어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덫 근처에 다가왔을 겁니다.
보통 동물이 이러한 덫에 걸렸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치다가 더 큰 상처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발버둥치면 칠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치료도 어려워지죠. 또 빼내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빨이 부러지거나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덫에 걸려 다리가 절단된 너구리의 모습.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너구리는 상당히 온전한 상태였습니다. 발가락의 일부만 덫에 걸려 있었고, 크게 발버둥치거나 물어뜯지 않아 상처도 심하지 않았습니다.
구조 이후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니 좌측 발가락에 약간의 폐쇄골절이 있었고 피부 괴사가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역시 기존에 덫에 걸린 다른 개체들과 비교한다면 천만다행인 수준이었죠.
» 덫에 걸렸던 부위의 검사와 치료를 하는 모습.
» 좌측 발가락뼈에 골절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왜 아파트 단지에 이토록 무시무시한 덫을 설치해놓았을까요? 이런 곳에서 야생동물을 밀렵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마 최근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유기동물이나 길고양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혐오하는 마음에서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최근 뉴스만 봐도 독극물을 넣은 먹이를 이용해 길 위의 생명을 죽이거나 길고양이한테 화살을 쏘기도 하고, 길고양이에 밥을 주는 일명 ‘캣맘’이 폭행을 당하는 등의 동물혐오에 따른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바로 여기가 덫이 설치되어있던 장소입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이곳에 설치된 덫은 그 누구에게나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아무리 길 위의 다른 생명이 불편하고 혐오스럽다 하더라도 어찌 이런 방법까지 선택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덫에 걸린 동물이 겪을 고통은 전혀 생각지 않았을 테죠.
그렇다면 동물도 동물이지만, 만약 이 지역 주민이나 어린이가 덫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는지도 생각지 못했던 걸까요? 아니면 아무렴 어때 하고 개의치 않았던 걸까요?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지금 너무도 끔찍한 생각을 지닌 누군가와 같은 시간, 장소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셈입니다. 동물을 싫어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생명을 앗아가는 것도 그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니겠지요.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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