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애초 둘로 나뉜 땅이었다
고생물학자의 옛 땅이야기 ‘생생’
남·북 중국 두 땅덩어리 충돌하면서 한반도 탄생
금강휴게소엔 ‘눈덩이 지구’ 흔적, 태백 이웃은 호주
10억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지질학자, 기록이 없는 시대의 한반도를 찾다
최덕근 지음/휴머니스트·1만4000원
10억년 전은 기껏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 어림하기도 힘든 먼 과거다. 길이로 바꿔 1년을 1㎜라고 한다면 10억년은 1000㎞,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거리다.
그 까마득한 기간 동안 한반도가 어떻게 형성돼 현재의 꼴을 이뤘는지를 상상이나 짐작이 아닌 관찰과 추론을 토대로 연구하는 이들이 바로 지질학자다. 이들은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는 자연사의 비밀을 암석을 ‘읽어’ 알아낸다.
» 퇴적층에서 지질조사를 하고 있는 지질학 연구자들. 오른쪽 끝이 지은이인 최덕근 교수.
우리나라의 대표적 삼엽충 연구자인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는 평생 화석과 퇴적암을 들여다 보며 시간여행을 했다. 이 책은 고생물학자가 대중을 위해 쓴 최초의 ‘한반도 시간 여행기’인 셈이다.
북한 당국이 들으면 ‘분단 고착화를 획책한다’며 펄쩍 뛰겠지만, 한반도는 애초 둘로 나뉜 땅이었다. 10억년 전 지구의 모든 땅덩어리는 하나로 모여 초대륙 로디니아를 형성했다.
초대륙은 이후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는데 한반도는 두 개의 땅덩어리에 나뉘어 자리 잡았다. 3억년 전 새로운 초대륙 판게아가 생겼지만 서로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백악기 초 판게아가 분열해 떠돌던 두 땅덩어리는 대충돌을 일으켜 오늘날 보는 한반도의 꼴을 이루게 된다.
단순화해 말한다면, 황해도 이북의 북한과 영남지방은 중국 북부를 포함한 땅덩어리의 일부였는데 중국 남부를 실은 땅덩어리와 충돌하면서 그 일부가 북한과 영남 사이에 끼어 현재의 경기·충청·호남을 이뤘다는 것이다.
» 최덕근 교수가 제안한 한반도 지체구조도. 한반도를 3개의 지괴로 나누고 옥천대로 알려진 지역을 태백산분지와 충청분지로 나누었으며, 임진강대를 황해도 전역을 포함하도록 넓혔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 교수는 10억년 전부터 3억년 전 사이 한반도를 포함한 땅덩어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5억년 전 한반도에 서식하던 삼엽충 연구자의 시각에서 되짚었다. 최 교수는 2014년 <한반도 형성사>(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이런 이론을 정립한 바 있다. 그는 “한반도의 기원에 관해 일반인도 널리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모를 흥미로운 얘기도 적지않다. 금강휴게소 국도변에 드러난 절벽에서는 눈덩이 지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7억년 전 적도까지 두꺼운 얼음에 덮여 지구가 사실상 눈덩이처럼 바뀌었을 때 쌓인 빙하 퇴적층이 곧 이은 온난화 시기에 쌓인 석회암층과 함께 드러나 있다. 당시의 지층은 충주호에서 옥천까지 이어져 나타난다.
» 지구가 눈덩이처럼 거대한 빙하에 덮였을 때 쌓인 빙하퇴적물. 가는 모래와 점토로 이뤄진 바탕에 다양한 크기의 자갈이 박혀있다. 충주호와 옥천을 잇는 구간에서 볼 수 있다.
5억년 전 태백은 지금의 서해처럼 얕은 바다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뿐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한 삼엽충이 살았다. 지금은 태백이 영월보다 50㎞ 동해에 가깝지만, 당시엔 영월은 깊은 바다 태백은 얕은 바다였다. 출토되는 화석의 종류에서 그런 사실이 밝혀졌다.
한반도가 중국을 남·북으로 자른 땅덩어리가 충돌하면서 형성됐다는 가설은 지질학계가 받아들이지만 ‘어떻게’를 놓고는 논쟁이 뜨겁다. 최 교수는 이른바 ‘만입쐐기모델’를 제시했다.
» 최덕근 교수가 제안한 동아시아 지체구조도. 한반도의 북부비괴와 남부지괴는 중한랜드에 속했고 중부지괴는 남중랜드의 가장자리에 위치했는데 두 땅덩어리가 충돌하면서 중부지괴가 북부와 남부지과 사이로 끼어들었다.
남중국을 포함한 땅덩어리(남중랜드)가 북중국 땅덩어리(중한랜드) 아래로 파고들면서 남중랜드 가장자리에 있던 퇴적물이 중한랜드에 달라붙어 임진강대와 경기육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전혀 다른 시기에 형성된 태백산 분지와 충청 분지가 합쳐져 남한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옥천대를 형성한 것이 한반도의 모태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옥천대 형성의 비밀을 밝히고 그 내용을 대중에 알리는 일을 이번 저작의 후속작업으로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책은 과학자가 꿈이었던 한 소년이 지질학자로 터잡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성적이 모자라 원하던 화학과 대신 지질학과로 진학하고, 중생대 꽃가루를 전공하다 삼엽충을 연구하게 된 우연과 행운의 역정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1억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기다리다 엉겁결에 5억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게 되었다. 그러나 5억년 전 세계에 불시착한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라고 그는 적었다.
북한산 등산로를 속속들이 꿰는 사람은 흔해도 그 산의 화강암체가 언제 어떻게 형성돼 지금에 이르렀는지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한반도는 땅은 좁아도 25억년에 걸친 암석이 고루 분포하는 복잡한 지질구조를 지녔다.
땅덩어리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시간 여행을 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목적지가 있을까.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휴머니스트 제공
남·북 중국 두 땅덩어리 충돌하면서 한반도 탄생
금강휴게소엔 ‘눈덩이 지구’ 흔적, 태백 이웃은 호주
10억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지질학자, 기록이 없는 시대의 한반도를 찾다
최덕근 지음/휴머니스트·1만4000원
10억년 전은 기껏 100년을 사는 인간에게 어림하기도 힘든 먼 과거다. 길이로 바꿔 1년을 1㎜라고 한다면 10억년은 1000㎞,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거리다.
그 까마득한 기간 동안 한반도가 어떻게 형성돼 현재의 꼴을 이뤘는지를 상상이나 짐작이 아닌 관찰과 추론을 토대로 연구하는 이들이 바로 지질학자다. 이들은 기록이 남아있을 리 없는 자연사의 비밀을 암석을 ‘읽어’ 알아낸다.
» 퇴적층에서 지질조사를 하고 있는 지질학 연구자들. 오른쪽 끝이 지은이인 최덕근 교수.
우리나라의 대표적 삼엽충 연구자인 최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는 평생 화석과 퇴적암을 들여다 보며 시간여행을 했다. 이 책은 고생물학자가 대중을 위해 쓴 최초의 ‘한반도 시간 여행기’인 셈이다.
북한 당국이 들으면 ‘분단 고착화를 획책한다’며 펄쩍 뛰겠지만, 한반도는 애초 둘로 나뉜 땅이었다. 10억년 전 지구의 모든 땅덩어리는 하나로 모여 초대륙 로디니아를 형성했다.
초대륙은 이후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는데 한반도는 두 개의 땅덩어리에 나뉘어 자리 잡았다. 3억년 전 새로운 초대륙 판게아가 생겼지만 서로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백악기 초 판게아가 분열해 떠돌던 두 땅덩어리는 대충돌을 일으켜 오늘날 보는 한반도의 꼴을 이루게 된다.
단순화해 말한다면, 황해도 이북의 북한과 영남지방은 중국 북부를 포함한 땅덩어리의 일부였는데 중국 남부를 실은 땅덩어리와 충돌하면서 그 일부가 북한과 영남 사이에 끼어 현재의 경기·충청·호남을 이뤘다는 것이다.
» 최덕근 교수가 제안한 한반도 지체구조도. 한반도를 3개의 지괴로 나누고 옥천대로 알려진 지역을 태백산분지와 충청분지로 나누었으며, 임진강대를 황해도 전역을 포함하도록 넓혔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 교수는 10억년 전부터 3억년 전 사이 한반도를 포함한 땅덩어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5억년 전 한반도에 서식하던 삼엽충 연구자의 시각에서 되짚었다. 최 교수는 2014년 <한반도 형성사>(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서 이런 이론을 정립한 바 있다. 그는 “한반도의 기원에 관해 일반인도 널리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전문가가 아니면 모를 흥미로운 얘기도 적지않다. 금강휴게소 국도변에 드러난 절벽에서는 눈덩이 지구의 흔적을 볼 수 있다. 7억년 전 적도까지 두꺼운 얼음에 덮여 지구가 사실상 눈덩이처럼 바뀌었을 때 쌓인 빙하 퇴적층이 곧 이은 온난화 시기에 쌓인 석회암층과 함께 드러나 있다. 당시의 지층은 충주호에서 옥천까지 이어져 나타난다.
» 지구가 눈덩이처럼 거대한 빙하에 덮였을 때 쌓인 빙하퇴적물. 가는 모래와 점토로 이뤄진 바탕에 다양한 크기의 자갈이 박혀있다. 충주호와 옥천을 잇는 구간에서 볼 수 있다.
5억년 전 태백은 지금의 서해처럼 얕은 바다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뿐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발견되는 것과 비슷한 삼엽충이 살았다. 지금은 태백이 영월보다 50㎞ 동해에 가깝지만, 당시엔 영월은 깊은 바다 태백은 얕은 바다였다. 출토되는 화석의 종류에서 그런 사실이 밝혀졌다.
한반도가 중국을 남·북으로 자른 땅덩어리가 충돌하면서 형성됐다는 가설은 지질학계가 받아들이지만 ‘어떻게’를 놓고는 논쟁이 뜨겁다. 최 교수는 이른바 ‘만입쐐기모델’를 제시했다.
» 최덕근 교수가 제안한 동아시아 지체구조도. 한반도의 북부비괴와 남부지괴는 중한랜드에 속했고 중부지괴는 남중랜드의 가장자리에 위치했는데 두 땅덩어리가 충돌하면서 중부지괴가 북부와 남부지과 사이로 끼어들었다.
남중국을 포함한 땅덩어리(남중랜드)가 북중국 땅덩어리(중한랜드) 아래로 파고들면서 남중랜드 가장자리에 있던 퇴적물이 중한랜드에 달라붙어 임진강대와 경기육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전혀 다른 시기에 형성된 태백산 분지와 충청 분지가 합쳐져 남한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옥천대를 형성한 것이 한반도의 모태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옥천대 형성의 비밀을 밝히고 그 내용을 대중에 알리는 일을 이번 저작의 후속작업으로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책은 과학자가 꿈이었던 한 소년이 지질학자로 터잡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성적이 모자라 원하던 화학과 대신 지질학과로 진학하고, 중생대 꽃가루를 전공하다 삼엽충을 연구하게 된 우연과 행운의 역정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1억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기다리다 엉겁결에 5억년 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게 되었다. 그러나 5억년 전 세계에 불시착한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하다.”라고 그는 적었다.
북한산 등산로를 속속들이 꿰는 사람은 흔해도 그 산의 화강암체가 언제 어떻게 형성돼 지금에 이르렀는지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한반도는 땅은 좁아도 25억년에 걸친 암석이 고루 분포하는 복잡한 지질구조를 지녔다.
땅덩어리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시간 여행을 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목적지가 있을까.
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휴머니스트 제공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