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탄강 따라 흐른 용암, 협곡 아래 돌베개 남겨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5-1> 연천권-현무암 협곡
» 옛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용암이 역류해 고인 굳어 형성된 차탄천의 장대한 주상절리 협곡.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심해저 화산에선 용암이 직접 물속으로 흘러든다. 시뻘건 용암은 울컥 쏟아져 나오자마자 찬 바닷물에 거죽이 식어 검은 현무암이 된다. 하지만 용암이 계속 밀려들면 어느 순간 검은 껍질이 파열되면서 붉은 용암이 쏟아져 나와 새로운 현무암 덩어리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단면이 둥글고 기다란 베개 모양의 현무암 덩어리가 줄줄이 쌓인다. 이런 베개용암은 하와이나 대서양 심해저의 해저화산에서 생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하천에서 과거의 베개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장수면 신흥리의 한탄강 아우라지가 그곳이다.
심해저 화산에서 생긴 것처럼
» 강물속에서 형성된 둥글둥글한 아우라지 베개용암. 윗부분은 물위 용암이 굳은 주상절리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최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지질명소인 아우라지 베개용암을 3일 찾았다.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하는 강변에 주상절리 협곡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목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밑부분이 특이하다.
배를 타고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지름 50㎝가량에 단면이 어금니처럼 생기고 길이가 80~100㎝인 원통형 현무암 덩어리가 통나무더미처럼 빼꼭하게 쌓여 있다. 동행한 신승원 강원대 지질유산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표면이 급격히 식어 유리처럼 바뀌었고, 치약을 짠 것 같은 형태와 방사상으로 금이 가는 등 베개용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 베개용암의 단면. 거죽은 급랭해 생긴 유리질로 덮여있고 방사상 절리가 나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바위가 녹은 액체인 용암의 온도는 900도에 이른다. 고온의 용암이 찬물과 만나 급격히 식으면 미처 암석의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유리가 형성된다. 아우라지의 베개용암 곳곳에는 검은 유리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아우라지의 베개용암을 만든 대규모 용암 분출이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을 형성했다.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 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신생대 제4기에 들어 다시 화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백두산,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한탄강 상류에서 화산이 분화했다.
각각 50만년 전, 15만년 전 분출
» 한탄강에 다량의 용암을 분출한 기원지로 추정되는 북한 평강의 오리산(사진 왼쪽 아래 둥근 함몰체) 위성사진. 위는 평강 시가지이다. 2009년 구글 위성사진으로 현재는 분화구 주변의 농경지 개발로 함몰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위성지도로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 근처를 보면, 지름 150m, 깊이 20m인 작은 분화구가 보인다. 이곳이 약 15만년 전 다량의 용암을 옛 한탄강으로 흘려보낸 오리산(해발 452m)이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21㎞ 떨어진 ‘680고지’는 또다른 용암 기원지로 약 50만년 전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두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철원에 큰 용암대지를 형성했고 이어 한탄강을 따라 전곡을 지나 분화구에서 110㎞ 떨어진 임진강 문산 부근에 이르렀다.
» 용암의 끝자락_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부근의 임진강 모습.한탄강을 따라 110킬로미터를 달려온 용암은 임진강의 이곳까지 밀려 내려왔다.강변에 현무암 용암 절벽이 보인다. 사진=조홍섭 기자
최근 한탄강의 현무암층을 연구한 안웅산 제주시 세계유산·한라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한탄강 용암의 유출 시기와 범위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약 50만년 전 680고지 분화와 이보다 규모가 큰 약 15만년 전 오리산 분화 등 2번의 용암 분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분화 기원지가 북한이어서 직접 연구가 불가능해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탄강의 용암은 백두산이나 한라산의 것보다 점도가 낮아 느릿느릿 먼 거리를 흘렀다. 오리산의 높이는 주변보다 150m 정도밖에 높지 않아 경사도가 한라산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임진강 하류까지 용암이 흘러간 것이다.
용암의 깊이는 분화구에서 가까운 철원이 70m, 전곡 20~30m, 문산 2~3m에 이른다. 옛 한탄강의 물길을 메우고 지류로 역류하는가 하면 커다란 용암호를 이루기도 했다.
» 역류한 용암이 호수를 이룬 뒤 굳어 두꺼운 현무암층으로 쌓인 재인 폭포 현무암 절벽.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재인폭포는 그 과정에서 생겼다. 주상절리와 동굴, 돌개구멍 등이 절경을 빚는 이 폭포는 한탄강의 용암이 지류로 흘러넘쳐 용암호를 형성한 것이 시초였다. 주상절리 돌기둥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 절벽이 생겼고 폭포는 침식을 가속했다.
지난 15만년 동안 폭포는 한탄강에서 350m나 안쪽으로 후퇴했다. 앞으로 5만년쯤 지나면 폭포는 아예 사라질 것이다.
종잇장처럼 구겨져 주름진 바위
» 차탄천을 따라 난 약 10킬로미터 길이의 에움길을 걷다 보면 현무암 협곡과 함께 다양한 암석과 지질구조를 즐길 수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전곡에서 한탄강에 합류하는 차탄천에는 용암의 역류로 인한 현무암 협곡의 절경이 10㎞나 이어진다. 연천군은 이곳에 ‘차탄천 에움길’이란 지질 트레일을 조성했다.
차탄천의 은대리 왕림교 아래에는 높이가 25m에 이르는 웅장한 현무암 절벽이 펼쳐져 있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주상절리 위와 아래엔 각각 덩어리 상태와 판을 쌓아놓은 모양의 현무암층이 놓여 있어 적어도 3개의 용암층이 쌓였음을 보여준다. 이곳은 옛 한탄강이 굽이치는 곳이어서 용암층이 깊게 쌓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은대리 판상절리 모습. 기왓장을 쌓아놓은 형태로 현무암 절벽에 금이 가 있다. 형성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용암 위 아래의 수축률 차이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이곳에서 500m쯤 하류로 내려가면 옛 한탄강의 강바닥과 함께 판상절리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이 펼쳐진다. 현무암 절벽 밑부분에 강바닥에서 볼 수 있는 모서리가 둥근 자갈이 층을 이루고 있다.
동행한 정대교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용암이 흐르기 전 옛 한탄강에서 쌓인 미처 굳지 않은 퇴적층”이라며 “자갈이 기울어진 방향을 보면 당시 강물이 어느 쪽으로 흘렀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물살에 쓸려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는 옛 한탄강 강바닥의 자갈층. 15만년 전 용암이 흘러내리기 전에 쌓인 층이어서 미처 암석으로 굳지 않았다. 바로 위 용암은 울퉁불퉁해 급히 식은 상태를 보여준다. 사진=조홍섭 기자
15만년 용암은 이 자갈이 깔린 옛 한탄강에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물이 끓어오르고 용암이 급격하게 식어 콘크리트를 부어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게 굳은 층이 가지런한 강돌 위에 잇닿아 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전곡리 구석기인들은 이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두고두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 은대리의 옛 강바닥 퇴적층을 백의리 퇴적층이라 하는데, 고문리 양수장의 현무암 절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은대리에는 지층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습곡을 간직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정 교수는 “지하 10㎞에서 무르고 연해진 고생대 퇴적암이 2억~3억년 전 한반도가 대규모 지각변동을 받았을 때 이리저리 굽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은대리 습곡. 지하 10킬로미터에서 부드러워진 퇴적층이 지각변동의 힘을 받아 구부러졌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연천은 신생대 용암 분출뿐 아니라 한반도 형성기인 중생대 지각변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한 지괴와 남중국 지괴의 충돌대 가운데 북쪽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대륙충돌 때나 생기는 고온·고압 환경에서 생성된 남정석, 석류석 같은 광물이 곳곳에서 나온다.
» 고온 고압 환경에서 형성되는 광물인 감람석. 연천이 대륙 충돌대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연천은 고구려와 신라가 격전을 벌였고, 후삼국 시대 태봉의 궁예가 몰락한 곳이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이자 현재에도 군인 인구가 적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탄강이란 이름이 ‘원통해 탄식하다’는 한탄(恨歎)에서 온 것으로 아는 이도 있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여울’이란 뜻이다. 하지만, 한반도 땅덩어리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대격변인 대륙충돌이 이곳에 상처를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연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북한 680고지·오리산 화산 2번 분출
철원 70m, 전곡 30m, 문산 3m 깊이로
강줄기 따라 110㎞ 느릿느릿 흘러
물길 메우고 지류로 역류
부곡엔 용암호가 만든 재인폭포 절경
차탄천엔 25m 높이 웅장한 절벽
포천 영평천 합류 아우라지엔
치약을 꾸역꾸역 짜낸 듯
돌베개 모양 용암이 차곡차곡
연천은 신생대 용암 분출뿐 아니라
한반도 형성기 지각변동 중심지
» 옛 한탄강을 따라 흐르던 용암이 역류해 고인 굳어 형성된 차탄천의 장대한 주상절리 협곡.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심해저 화산에선 용암이 직접 물속으로 흘러든다. 시뻘건 용암은 울컥 쏟아져 나오자마자 찬 바닷물에 거죽이 식어 검은 현무암이 된다. 하지만 용암이 계속 밀려들면 어느 순간 검은 껍질이 파열되면서 붉은 용암이 쏟아져 나와 새로운 현무암 덩어리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단면이 둥글고 기다란 베개 모양의 현무암 덩어리가 줄줄이 쌓인다. 이런 베개용암은 하와이나 대서양 심해저의 해저화산에서 생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하천에서 과거의 베개용암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장수면 신흥리의 한탄강 아우라지가 그곳이다.
심해저 화산에서 생긴 것처럼
» 강물속에서 형성된 둥글둥글한 아우라지 베개용암. 윗부분은 물위 용암이 굳은 주상절리이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최근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지질명소인 아우라지 베개용암을 3일 찾았다. 한탄강과 영평천이 합류하는 강변에 주상절리 협곡이 병풍처럼 서 있는데, 목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밑부분이 특이하다.
배를 타고 가까이 접근해 보았다. 지름 50㎝가량에 단면이 어금니처럼 생기고 길이가 80~100㎝인 원통형 현무암 덩어리가 통나무더미처럼 빼꼭하게 쌓여 있다. 동행한 신승원 강원대 지질유산환경연구소 부소장은 “표면이 급격히 식어 유리처럼 바뀌었고, 치약을 짠 것 같은 형태와 방사상으로 금이 가는 등 베개용암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고 설명했다.
» 베개용암의 단면. 거죽은 급랭해 생긴 유리질로 덮여있고 방사상 절리가 나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바위가 녹은 액체인 용암의 온도는 900도에 이른다. 고온의 용암이 찬물과 만나 급격히 식으면 미처 암석의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아 유리가 형성된다. 아우라지의 베개용암 곳곳에는 검은 유리 조각이 들어 있었다.
아우라지의 베개용암을 만든 대규모 용암 분출이 한탄강의 현무암 협곡을 형성했다. 한반도를 불바다로 만든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활동 이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신생대 제4기에 들어 다시 화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백두산, 제주도, 울릉도와 함께 한탄강 상류에서 화산이 분화했다.
각각 50만년 전, 15만년 전 분출
» 한탄강에 다량의 용암을 분출한 기원지로 추정되는 북한 평강의 오리산(사진 왼쪽 아래 둥근 함몰체) 위성사진. 위는 평강 시가지이다. 2009년 구글 위성사진으로 현재는 분화구 주변의 농경지 개발로 함몰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위성지도로 북한 땅인 강원도 평강 근처를 보면, 지름 150m, 깊이 20m인 작은 분화구가 보인다. 이곳이 약 15만년 전 다량의 용암을 옛 한탄강으로 흘려보낸 오리산(해발 452m)이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21㎞ 떨어진 ‘680고지’는 또다른 용암 기원지로 약 50만년 전 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두 분화구에서 흘러나온 용암은 철원에 큰 용암대지를 형성했고 이어 한탄강을 따라 전곡을 지나 분화구에서 110㎞ 떨어진 임진강 문산 부근에 이르렀다.
» 용암의 끝자락_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부근의 임진강 모습.한탄강을 따라 110킬로미터를 달려온 용암은 임진강의 이곳까지 밀려 내려왔다.강변에 현무암 용암 절벽이 보인다. 사진=조홍섭 기자
최근 한탄강의 현무암층을 연구한 안웅산 제주시 세계유산·한라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그동안 한탄강 용암의 유출 시기와 범위를 놓고 논란이 많았지만 약 50만년 전 680고지 분화와 이보다 규모가 큰 약 15만년 전 오리산 분화 등 2번의 용암 분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분화 기원지가 북한이어서 직접 연구가 불가능해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탄강의 용암은 백두산이나 한라산의 것보다 점도가 낮아 느릿느릿 먼 거리를 흘렀다. 오리산의 높이는 주변보다 150m 정도밖에 높지 않아 경사도가 한라산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지만 임진강 하류까지 용암이 흘러간 것이다.
용암의 깊이는 분화구에서 가까운 철원이 70m, 전곡 20~30m, 문산 2~3m에 이른다. 옛 한탄강의 물길을 메우고 지류로 역류하는가 하면 커다란 용암호를 이루기도 했다.
» 역류한 용암이 호수를 이룬 뒤 굳어 두꺼운 현무암층으로 쌓인 재인 폭포 현무암 절벽.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연천읍 고문리에 있는 재인폭포는 그 과정에서 생겼다. 주상절리와 동굴, 돌개구멍 등이 절경을 빚는 이 폭포는 한탄강의 용암이 지류로 흘러넘쳐 용암호를 형성한 것이 시초였다. 주상절리 돌기둥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 절벽이 생겼고 폭포는 침식을 가속했다.
지난 15만년 동안 폭포는 한탄강에서 350m나 안쪽으로 후퇴했다. 앞으로 5만년쯤 지나면 폭포는 아예 사라질 것이다.
종잇장처럼 구겨져 주름진 바위
» 차탄천을 따라 난 약 10킬로미터 길이의 에움길을 걷다 보면 현무암 협곡과 함께 다양한 암석과 지질구조를 즐길 수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전곡에서 한탄강에 합류하는 차탄천에는 용암의 역류로 인한 현무암 협곡의 절경이 10㎞나 이어진다. 연천군은 이곳에 ‘차탄천 에움길’이란 지질 트레일을 조성했다.
차탄천의 은대리 왕림교 아래에는 높이가 25m에 이르는 웅장한 현무암 절벽이 펼쳐져 있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주상절리 위와 아래엔 각각 덩어리 상태와 판을 쌓아놓은 모양의 현무암층이 놓여 있어 적어도 3개의 용암층이 쌓였음을 보여준다. 이곳은 옛 한탄강이 굽이치는 곳이어서 용암층이 깊게 쌓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은대리 판상절리 모습. 기왓장을 쌓아놓은 형태로 현무암 절벽에 금이 가 있다. 형성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용암 위 아래의 수축률 차이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이곳에서 500m쯤 하류로 내려가면 옛 한탄강의 강바닥과 함께 판상절리가 장관을 이루는 모습이 펼쳐진다. 현무암 절벽 밑부분에 강바닥에서 볼 수 있는 모서리가 둥근 자갈이 층을 이루고 있다.
동행한 정대교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는 “용암이 흐르기 전 옛 한탄강에서 쌓인 미처 굳지 않은 퇴적층”이라며 “자갈이 기울어진 방향을 보면 당시 강물이 어느 쪽으로 흘렀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물살에 쓸려 일정한 방향성을 보이는 옛 한탄강 강바닥의 자갈층. 15만년 전 용암이 흘러내리기 전에 쌓인 층이어서 미처 암석으로 굳지 않았다. 바로 위 용암은 울퉁불퉁해 급히 식은 상태를 보여준다. 사진=조홍섭 기자
15만년 용암은 이 자갈이 깔린 옛 한탄강에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물이 끓어오르고 용암이 급격하게 식어 콘크리트를 부어놓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게 굳은 층이 가지런한 강돌 위에 잇닿아 있다. 당시 이곳에 살던 전곡리 구석기인들은 이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두고두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 은대리의 옛 강바닥 퇴적층을 백의리 퇴적층이라 하는데, 고문리 양수장의 현무암 절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은대리에는 지층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습곡을 간직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정 교수는 “지하 10㎞에서 무르고 연해진 고생대 퇴적암이 2억~3억년 전 한반도가 대규모 지각변동을 받았을 때 이리저리 굽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은대리 습곡. 지하 10킬로미터에서 부드러워진 퇴적층이 지각변동의 힘을 받아 구부러졌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연천은 신생대 용암 분출뿐 아니라 한반도 형성기인 중생대 지각변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한 지괴와 남중국 지괴의 충돌대 가운데 북쪽 끄트머리에 해당한다. 대륙충돌 때나 생기는 고온·고압 환경에서 생성된 남정석, 석류석 같은 광물이 곳곳에서 나온다.
» 고온 고압 환경에서 형성되는 광물인 감람석. 연천이 대륙 충돌대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연천은 고구려와 신라가 격전을 벌였고, 후삼국 시대 태봉의 궁예가 몰락한 곳이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이자 현재에도 군인 인구가 적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탄강이란 이름이 ‘원통해 탄식하다’는 한탄(恨歎)에서 온 것으로 아는 이도 있지만 실제로는 ‘커다란 여울’이란 뜻이다. 하지만, 한반도 땅덩어리에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대격변인 대륙충돌이 이곳에 상처를 남긴 것 또한 사실이다.
연천/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공동기획: 한겨레, 대한지질학회, 국립공원관리공단 국가지질공원사무국, 한국지구과학교사협회
정대교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 인터뷰 “연천은 지질지대 백화점, 지질교육 최적”
“연천만큼 지구과학 교육에 좋은 장소는 우리나라에 또 없을 겁니다.”
정대교 강원대 지질학과 교수(사진)는 경기도 연천군 은대리의 판상절리와 백의리 퇴적층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생대 제4기의 용암이 굳어 주상절리와 판상절리를 이룬 바닥에 옛 한탄강 바닥이었던 퇴적층이 놓여 있다.
이 지역 기반암은 4억년 전 고생대 데본기의 변성퇴적암이고, 19억년 전 원생대 암석도 있다. “다른 지질공원이 한두 가지 특징적인 지질현상을 갖췄다면 여기는 다양한 지질지대의 암석과 지질구조를 두루 갖춘 드문 곳입니다.”
연천의 지질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은 2008년 발간됐다. 비무장지대 때문이었지만 지질이 복잡한 점도 작용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넓은 미산층이 이제까지 알려진 원생대가 아닌 고생대 변성암으로 얼마 전 밝혀지기도 했다. 한 지역에 여러 지질시대 암석 30종이 나오는 곳, 용암도 있고 화석도 있는 곳을 국내에서 달리 찾을 곳이 없다.
정 교수는 “하천변을 따라 현무암 협곡이 펼쳐져 아름다운데다 이런 지질학적 다양성과 수도권에서의 접근성을 고려한다면 지질학 교육에 최적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전곡 구석기 유적과 연계해 은대리 등 연천의 지질 명소들은 경기도 지구과학 교사 연수와 학생 연수에 널리 쓰여 연간 2000여명이 현장 답사를 위해 찾고 있다.
연천/글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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