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총연맹·통합진보당도 한목소리
[르포] '미2사단 잔류 결정'에 여론 들끓는 동두천 보산동 일대
14.11.05 22:11l최종 업데이트 14.11.06 00:18l손지은(93388030)이희훈(leehee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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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이 미국 땅이냐? 한국 땅이냐?"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도중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미2사단 내 항의방문을 시도하자 경찰이 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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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인근에 있는 한 식당이 미군병력 감축 이후 어려워진 사정으로 영업을 중단하고 가게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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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 고 홈' 하는 게 나아, 이제는 장사 그만 두려고."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보산관광특구'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A씨가 허탈하게 말했다. 보산관광특구(아래 관광특구)는 미군2사단 부대인 '캠프 케이시(14.14k㎡)'와 5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 잡은 상권 골목이다. 한 때 이곳에서 먹고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벌었다는 그는 이제 이곳을 떠나려 한다. 36년을 지킨 곳이다. 어느새 머리는 백발이 됐다.
굳이 묻지 않아도 그가 떠나려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의 도시가 한창 활기를 띠는 정오에도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드문드문 연한 갈색 군복을 입은 미군 한 두 명만이 한가롭게 오갈 뿐이었다. A씨는 양복점 유리벽에 'Big Sale' '80% off'라고 써붙여 두었다. 유리창 너머엔 그가 정성스레 만들어 놓은 양복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한 때 남부럽지 않았지만, 지금은 월세만 겨우 내는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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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미2사단 장병들이 미2사단부대잔류반대 현수막 앞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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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이 시간에 미군 두 명 지나가잖아. 여긴 물건 사는 사람보다 상인이 더 많아."
한 때 2만 명 넘게 주둔하던 미군은 2003년 이라크 파병으로 서서히 빠져나가 현재는 5천 여 명만 남았다. 그 여파로 생계가 오로지 미군의 주머니에 달린 이곳도 점차 쇠락했다. A씨는 "20여 개에 이르던 양화점이 지금은 한 곳만 남았고, 30개 넘던 양복점도 이제는 10여 곳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또한 5년 전부터는 벌어 둔 돈으로 월세를 내며 버텨오다 한계에 이르렀다.
실제 관광특구 시작점부터 그의 점포까지 50여 미터를 걸어오는 동안 문을 연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관광특구 초입에서 10평 남짓한 잡화점을 운영하는 B(67)씨는 "IMF를 모를 정도로 호황이었지만 지금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매장 문을 걸어 잠근 채 TV를 보던 중이었다. B씨는 "상인들이 장사가 안 되니 보통 오후에나 문을 열고, 폐업한 곳도 많다"고 귀띔했다. 바로 옆 신발가게 유리벽에는 '폐업' 'Goodbye sale'이 쓰여 있었다.
당초 국방부는 2016년까지 동두천의 모든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혀왔다. 동두천시는 미군이 철수하면 그들이 사용하던 공여지를 넘겨받아 대단위 주거시설, 대기업 생산공장 등을 지어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국방부가 지난 10월 24일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캠프케이시에 있는 '210화력 여단'(2500여 명)을 오는 2020년까지 남기기로 하면서 이 청사진은 사실상 백지화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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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과 충돌한 동두천 시민들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문을 향해 행진 하려하자 경찰이 저지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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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문을 향해 행진 하려하자 경찰이 저지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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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아예 나가든지, 아니면 예전만큼 다시 들어오든지."
관광특구 변두리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유아무개(59·여)씨의 말이다. 그는 "미군이 점점 빠져나가다 3~4년 전부터 상권이 확 죽었다"며 "예전만큼 미군이 많이 머무는 게 아니라면 공장 같은 게 들어와 일자리를 만드는 게 낫다"고 말했다. 유씨도 양복점 A씨와 잡화점 B씨처럼 한 때는 아쉬울 게 없었지만 지금은 "겨우 현상 유지만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또한 "나는 내 건물에서 장사를 해서 지금까지 버텼지만, 이 골목에서 세 들어 장사하던 상인들은 다 떠났다"고 말했다.
유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들어갔다. 이 골목 초입인 유씨의 점포에서 30여 미터를 따라 걷는 동안 27개 점포가 즐비해 있었지만 문을 연 곳은 유씨 점포를 포함해 단 두 곳이었다. 오후 늦게 문을 여는 '클럽'이나 '주점'은 제외하더라도 선물이나 기념품을 파는 점포도 셔터를 내렸다. 주요 거리보다 유동인구가 적은 이 골목은 나뭇잎이 땅에 닿는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로 적막했다.
오후 1시께 관광특구 안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고종빈 보산동 상인연합회 회장은 "2004년 미군이 이라크로 떠나기 전만 해도 관광특구에 300개가 넘게 상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240여 개로 줄었다"며 "평택에 있는 미군이 동두천으로 오든지, 완전히 이전하고 새로 개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 주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은 수라도 미군이 잔류하는 게 낫다고 보는 상인도 있었다. 미군이 떠나면 현상유지마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개발을 한다 해도 도시가 탈바꿈하는 데까지 걸리는 공백기를 어떻게 버텨야 할 지 막막하다는 우려였다.
관광특구에서 스파게티와 볶음밥 등을 파는 동두천 토박이 C(56·여)씨는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 한때 밤 10시까지 손님으로 가득 찼다는 그의 점포는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했다. 테이블 여섯 개 중 한 곳에만 손님이 있었지만 "그나마 있는 미군마저 나가면 당장 월세도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군2사단 정문 앞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40대 한 남성 상인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미군부대 앞에 걸려있는 '3번 국도 봉쇄하여 동두천 시민의 분노를 보여주자' '매번 희생만 강요하는 정부, 동두천 시민 피멍든다' 등의 펼침막을 가리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자유총연맹·통합진보당 한목소리로 "동두천을 살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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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 외면하는 정부는 반성하라"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에서 동두천시민들이 흰풍선과 피켓을 들고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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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에게 항의 하는 박용선 대책위원장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뒤 행진을 막아선 경찰에게 박용선 미군재배치범시민대책위원장이 강력하게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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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리로 나온 성난 동두천 시민들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를 마친 참가자들이 정문을 향해 행진 하려하자 경찰이 저지해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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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 지나도 한산하기만 한 이곳이 갑자기 분주해진 건 오후 2시30분께 '미2사단 잔류 반대 범시민 궐기대회'가 미군2사단 정문 근처에서 열리면서부터다. 이날 행사는 동두천시 53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가 주관했다.
정문 앞에 모인 2천여 시민들은 이날 ▲ 미2사단을 예정대로 평택으로 이전 ▲ 정부가 동두천시 경제 회생 방안 마련할 것 ▲ 정부는 용산과 평택에 준하는 지원 대책을 동두천에 마련할 것 등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단결' '투쟁' 등이 쓰인 붉은 머리띠를 묶고, '동두천 무시하는 정부는 반성하라' '동두천을 특별지원 하라'고 쓰인 어깨띠를 둘렀다.
이날 궐기대회는 지역 내 좌우 단체가 한목소리로 정부의 일방적 잔류 결정을 규탄하고 주민 생존권을 요구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자유총연맹', '대한노인회', '새마을부녀회' 등 보수단체부터 '통합진보당 동두천시위원회'까지 적혀있었다. 궐기대회 중간에는 국민의례와 함께 애국가가 나오다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오세창 동두천시 시장은 "63년 전 중앙정부에 의해 동두천은 시 전체 면적의 절반을 미국 공여지로 징벌 당했고, 기지촌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았다"며 "현재는 경기도에서 가장 낙후한 도시로 (지역경제가) 파탄 지경이고, 자립으로 회생하기 불가능한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오 시장은 "63년 희생에 걸맞은 도움을 달라고 목청이 터져라 중앙정부에 외쳤지만 묵살당했다"며 "미군이 축소되어 공동화 된 동두천시에 아무런 지원 대책 없이 고작 포병여단 하나만을 남겨둔다는 정부의 발표는 동두천을 폐허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오 시장이 일갈할 때마다 무대 아래에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또한 "청와대로 가자" "다 때려 부수자"는 말도 심심치 않게 튀어 나왔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연단에서 "안보희생 60여 년 정부지원 당연하다" 등의 구호를 선창할 때엔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핀잔도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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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 부대로 날린 '잔류반대' 흰풍선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에서 미2사단 부대를 향해 흰풍선을 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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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조망에 걸린 '미군잔류반대' 풍선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 도중 날린 '미군부대잔류반대' 풍선이 미군부대 철조망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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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잔류결정 절대 반대' 5일 오후 경기도 동두천 캠프 케이시 앞에서 열린 미2사단부대잔류반대범시민궐기대회를 마친 동두천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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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민들은 1시간 반 가까이 궐기대회를 마치며 "백지 상태에서 (지역개발을)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의 흰색 풍선을 미군2사단 담장 너머로 날려 보냈다. 궐기대회를 마치고 일부 시민이 미군2사단 정문 앞까지 행진하려다 경찰 병력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30분 가까이 경찰과 대치한 시민들이 방향을 바꾸어 신시가지로 행진하면서 긴장 상황은 일단락 됐다.
시민들이 가두 행진을 펼친 미군2사단 근처에서 동두천 중앙역까지 2km 남짓 거리도 관광특구와 마찬가지로 한산했다. 궐기대회 행진 대열이 지나갈 때는 잠시 소란스러웠다가 이들이 지나고 나면 다시 적막이 흘렀다. 환하게 불을 밝힌 상점 사이로 문 닫은 점포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문을 연 상점 중 손님이 든 곳은 찾기 어려웠다.
가두행진 대열에서 만난 김아무개(43)씨는 "불과 4~5년 전과 비교해도 지역경제가 많이 침체됐다"며 "2016년에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개발된다고 해 그것만 믿고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허탈해했다. 인터넷에서 이날 궐기대회 소식을 보고 직장동료들을 설득해 함께 참여했다는 그는 "지역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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