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열 칼럼] 대통령에서 떨어뜨리게 할 뻔 하도록 한 죄?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3.09.16. 05:10:47
윤석열 대통령은 0.73% 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2위와의 표 차이는 24만 7077표다. 국회의원 지역구 하나 수준으로 역대 최저 표차다. 많은 이들이 "0.73%포인트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정치하라"고 대통령에게 진심이 담긴 조언을 했다. 그런데 대통령은 많은 시민들이 바란 것과는 '다른 의미'의 0.73%포인트에 대해 고심을 한 것 같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성명(이 또한 처음 들어본다)을 보면, 뉴스타파의 '신학림-김만배 녹취 보도' 문제는 "희대의 대선 정치 공작 사건"이라고 한다. 도어스테핑에서, '성명 불상' 입장문으로, 1년 사이 대국민 소통 방식의 극적인 변화다.
2021년 9월 김만배가 언론계 선배인 신학림을 만나 한 대화 녹취 보도는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에서 대장동 사업 대출 브로커인 조우형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윤석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 수사 무마 의혹에 연루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핵심이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과 검찰은 2011년 조우형의 부산저축은행 대장동 대출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2011년에 검찰 수사에서 '무사 통과'한 조우형은 2015년에 부산저축은행 대출 불법 알선수재 건으로 기소된다. 당시 조우형의 변호사는 윤 대통령의 상관을 지낸 적 있는 '50억 클럽' 박영수 전 특검이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가 조우형의 부산저축은행 불법 대출 건을 수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무능함'을 자인한 것인데, 검찰은 스스로 '무능했다'며 열정적으로 강변하는 꼴이다. 하지만 검찰의 '무능함'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게 특수통 출신 거물급 전관 변호사라는 건 여전히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내내 남겨 놓는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사건은 "대장동 사건 몸통을 이재명에서 윤석열로 뒤바꾸려 한 정치공작"이며 "김대업 정치공작, 기양건설 로비 가짜뉴스 폭로의 계보를 잇는 2022년 대선 최대 정치공작 사건"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라며 "국민 주권 찬탈 시도이자 민주공화국을 파괴하는 쿠데타 시도"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검찰은 떠들썩하게 뉴스타파와 JTBC를 압수수색하고 여권은 MBC 기자들을 비롯해 방송사 유명 진행자들을 무더기로 고소했다.
과연 이번 사안이 김대업 정치공작이나 이회창 부인 뇌물설(기양건설 로비) 수준의 스캔들인가? 이 사안의 핵심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와 신학림 대화 녹취 보도다. 김만배는 대장동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애초 대장동 수사라는 게 김만배와 김만배를 둘러싼 이른바 '대장동 일당'들의 녹취록에 기반해서 시작한 것 아닌가. 검찰발(發)로 살라미처럼 흘러나오는 대장동 일당의 '주장'만 의미있고, 언론이 수집한 김만배의 '주장'은 의미가 없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김만배의 새로운 주장은 충분히 보도 대상이 된다. 오히려 이런 녹취록을 확보했는데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게 문제다. 김만배의 자기 과시적 동기가 있든, 목적 있는 거짓말이든 그건 검찰이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들춰보면 앙상하다. 김만배의 자기 과시, 그리고 당사자 주장이 엇갈리는 보도 내용이 스토리의 전부다. 일개 언론 보도 분쟁인 셈이다. 결은 다르지만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이 무죄를 받은 과정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해당 기자는 피의자에게 '플리바게닝'을 주선하겠다며 검찰 고위층과의 친분 및 자신의 '수사 개입' 능력을 과장했으나, 이것이 죄가 될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박근혜의 세월호 당일 행적과 관련한 칼럼을 썼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사건도 비슷하다. 법원은 "기사를 작성하면서도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았다"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이유로 다쓰야 전 지국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설사 김만배가 '거물급 검사'의 커피 한잔 사건을 무마 스토리를 허구로 나열했다고 하더라도, 그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가리면 될 일이다. '고의성', 즉 '허위임을 알고 상대에 해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보도했거나, 현저한 '악의성', 즉 터무니없는 일을 꾸며내 보도한 게 아니라면 우리 법원은 언론 자유를 넉넉히 인정해 준다. 민주 공화국 헌법의 장점이다. 물론 '언론 보도 윤리'는 남는다. 신학림과 김만배의 돈거래는 신뢰에 관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거기까지다. 신학림과 김만배의 돈 거래 배경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으니 곧 밝혀지게 될 것이다. 오히려 뉴스타파의 사과, 방송사의 사과 모두 언론의 자정 능력에 기대를 갖게 한다.
또다른 쟁점은 대통령실이 언급한 '정치 공작' 의혹인데, 이건 이른바 '민주당 배후설'이다. 허나 그 근거라는 건 어설프다. 보도가 나온 직후 민주당과 이재명 캠프가 '마치 짜고 친 듯이' 적극적으로 전파했다는 건데, 24시간 돌아가는 대선 캠프가 상대 후보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기를 쓰고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느 후보의 경우든 마찬가지 일이다. 사전에 민주당이 이 인터뷰에 개입되어 있었다는 증거도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에서 떨어뜨리게 할 뻔 하도록 한 죄?
굳이 죄명을 지어보자면 '대통령에서 떨어뜨리게 할 뻔 하도록 한 죄' 쯤일까? 모기를 보고 뽑아든 검은 '내란죄'와 '사형'의 집행검이 되어 태산을 명동케 하고 있으나(태산명동), 정작 MBC 기자들을 고발한 내용을 보면 내란죄도, 반공법도 아닌,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 혐의다(서일필). 그렇다면 모기를 보고 칼을 뽑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됐다. 0.73%포인트 차이 득표율의 의미를 새기고 정치를 하라고 주문했더니, 0.73%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것을 '억울함'으로 치환했다. 기이한 '승자의 대선 불복' 풍경이다.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승자의 대선 불복'은 대선 1년 반 이상 지난 시점에서 어떻게 불쑥 제기됐을까. 타임라인을 따라가 보면 이 사건은 대장동 핵심 인물 김만배의 구속 기간 만료(7일 0시)를 일주일 가량 앞두고 전격적으로 불거졌다. 많은 사람들이 놓친 장면이 있다.
지난 1일 검찰이 김만배와 돈거래를 한 신학림 씨를 압수수색했다. '대선 공작 수사'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 성명'은 5일에 나왔다. 검찰은 6일 오전에 김만배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오후에 검찰은 구속 만기를 앞둔 김만배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 과정에서 "김만배가 (2021년 9월) 스스로 허위 인터뷰를 하고, 이 내용이 뉴스타파에 보도되게 했다"며 "김만배가 자신과 배후 사범들의 범행을 은폐하고자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정황이 확인된다"고 새로 발굴한 '사유'를 들어 구속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만배는 7일 0시를 기해 석방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직접 '가이드라인'을 내리고 검찰이 김만배를 묶어놓으려 총력을 기울였는데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한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검찰은 대장동 수사로 1년 6개월간 김만배를 구속해 놓고도 이른바 '몸통'에 대해선 기소조차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년째 이어진 수사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갈수록 곁가지 수사들이 튀어나오고 있으며 그때마다 수사팀이 새로 꾸려지길 반복한다. 검찰 수사는 무한 확장의 우주론적 스케일로 진화 중이다. 이번 건도 대장동 수사에서 파생된 수많은 수사 중 하나인데, 김만배 구속에 실패한 검찰은 이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검사 10명을 꾸려 '대선 개입 여론 조작 사건' 특별수사팀 또 발족했다. 이쯤 되면 수사의 목표는 '수사 확장' 그 자체가 된다.
'검찰 공화국'의 최종판,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대통령
언론에 대한 대대적 수사는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방송 장악' 논란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 MBC 방문진 이사장을 쫓아 내는 건 시간문제고, 김의철 KBS 사장은 벼락처럼 해임됐다. 방심위는 방송 보도를 상대로 무더기 법정 제재를 쏟아내고 있으며, 연예인 발언을 집권 여당 대표가 때리고, 정부가 언론 보도를 팩트체크하겠다고 나선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임명되고 MB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있는 유인촌은 다시 장관직으로 컴백할 채비를 마쳤다. 그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이 암약하고 있었다는 그 세력 중 한 축이 알고보니 언론이었다는 얘기일까?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을 헤아려 보면 목표가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협치는 싫다. 국회를 우회하고 싶다. 믿을 건 검찰과 언론인데, "공산당 기관지"같은 언론은 걸림돌이다. 언론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검찰이 대통령 명예훼손을 처벌하기 위해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는 나라. '검찰공화국' 최종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소야대 아무리 얘기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다니는 것 같아 보인다(여권 관계자)"는 점이다.
언론을 '뽀개'버리기 위해 검찰이 나선 것도, 최근 '반국가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도, '윤석열식 역사 바로세우기'도 대통령을 '국정에 발목 잡힌 0.73%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한다. 총선을 대비해 중도층을 끌어 모아야 하는 대통령은 지금, '0.73%포인트'에 매달려 승리한 대선에 불복을 선언하고 있다. 30% 초반대의 지지율을 가지고 과거와 싸우고 있는 '강한 대통령',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강한 대통령'을 보는 여권은 불안하다. '견제론'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는 이유다. '승자의 대선 불복'은 영 어색하다. 아직 윤석열 정부의 시계는 대선에 머물러 있다.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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