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종술 기자 epoque@vop.co.kr
- 발행 2023-09-03 08:40:17
- 수정 2023-09-03 22:31:28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
연일 사상전 벌이는 윤석열 대통령
지난 8월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이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우리가 지금 국회에서 여소야대에다가 언론도 지금 전부 야당 지지 세력들이 잡고 있어서, 그래서 24시간 우리 정부 욕만 합니다”라며 자신을 비롯한 집권세력을 향한 비판이 부당하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아니 뭐 이번에 후쿠시마, 거기에 대해서 나오는 것 보십시오. 도대체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그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세력들하고 우리가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전면적인 사상전(思想戰)을 주문했다.
하루 뒤인 8월 29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가 대결하는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산전체주의의 생존 방식입니다. 인접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발전하면 사기적 이념에 입각한 공산전체주의가 존속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글로벌 중추국가로 발전해 우리의 통일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라며 야당과 진보세력을 상대로 사상전을 벌일 것을 또 다시 독려했다.
앞서 8월 25일 열린 국민통합위원회 1주년 성과보고회에선 “시대착오적인 그런 투쟁과 혁명과 그런 사기적 이념에 우리가 굴복하거나 거기에 휩쓸리는 것은 결코 진보가 아니고, 한쪽의 날개가 될 수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8월 들어 연일 이념과 사상을 강조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아울러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동상이 육사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며 이전을 추진하는 등 곳곳에서 이와 관련한 행동전도 펼쳐지고 있다.
관련 기사 : 돌아온 뉴라이트 세력, 홍범도를 지우려는 진짜 이유
8월 들어 부쩍 잦아진 이념 발언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에게까지 사상전 독려
사실 보수세력은 한동안 이념을 그다지 강조하지 않았다. 보수세력들은 전통적으로 반공이데올로기와 북풍을 앞세운 선거 전략을 구사하기도 했지만, 최근엔 그러한 이념 공세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해왔고, 중도층 등 외연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용·경제 등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강조해왔다. 오히려 진보세력이 이념에 매몰돼 민생경제에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활용하곤 했다. 윤 대통령을 당선시켰던 화두도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공정과 상식’이었다.
윤 대통령도 8월 이전까진 과거 보수세력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도 ‘이념’을 언급한 적은 있었지만, 최근의 발언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의 낡은 이념에 기반한 정책”(3월8일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축사), “과거에 이념적으로 부동산 문제를 다루는 사람들”(2022년 12월 21일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모두 발언), “일방적이고 이념에 기반한 탈원전 정책을 폐기”(2022년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 발언) 등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사용한 언어였다. 잘못된 이념으로 경제와 사회를 망쳤다는 뜻으로 ‘이념’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썼을 뿐이다. 불과 3개월 전인 5월까지만 해도 “이념이나 정치 논리가 시장을 지배해서는 안 됩니다. 탈이념과 탈정치, 그리고 과학 기반화가 바로 정상화입니다”(5월 23일 제21회 국무회의 모두 발언)라며 탈이념과 탈정치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를 앞두고 왜 이런 발언을 쏟아낸 걸까? 흔히 총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마지막 정기국회에선 여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총선 승리를 위한 주도권 싸움이다. 이런 상황에 국무위원과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이념전’과 ‘사상전’을 강조하는 건 어떻게 봐야하는 것일까? 의아한 상황이지만, 한덕수 총리가 앞장서서 이런 윤 대통령의 주문을 실천하고 있다. 한 총리는 8월 3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의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군함”이라며 “소련 공산당원 자격을 가졌던 사람은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해군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명칭 변경을 시사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자 하는 것은 아니신가”라고 되물으며 적극적인 사상공세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 요직을 차지한
이동관을 비롯한 뉴라이트 세력
사실 윤 대통령의 이런 이념적 행보는 내년 경제전망이 어두운 상황이고, 부자 감세와 경제 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 등 다양한 경기 부양책 등을 제시하며 선거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고육지책일 수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최근 기용한 인사들을 살펴보면 이런 변화는 고육지책을 넘어 확고한 신념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뉴라이트 성향 인사를 대거 기용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2022년 5월 임명)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등을 지낸 인물로 뉴라이트 계열 인사로 손꼽힌다. 특히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2년 7월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통칭 지소미아(GSOMIA)) 체결 추진을 주도하다 논란이 일어 물러난 바 있는 인물로 친일 성향이 강하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2022년 12월 임명)은 2008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 교과서 포럼이 펴낸 역사 교과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인물이다. 이 책은 식민지 근대화론,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경제성장 주역론 등을 담아 논란이 됐다. 이런 인물이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야하는 진실화해위 수장을 맡으며 논란이 인 것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2023년 7월 임명)은 과거 뉴라이트 학자들의 싱크탱크인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을 지냈고, 김광동과 마찬가지로 2008년 발간된 뉴라이트 교과서 제작을 위한 운동에 함께했던 인물이다. 남북화해와 통일 관련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통일부에 반북 성향의 뉴라이트 출신 인사를 기용한 것이다. 이밖에도 한오섭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2022년 5월 임명), 김종석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2022년 8월 임명) 등 뉴라이트 단체 활동 의혹을 받는 인물이 대거 등용됐다.
2004년 뉴라이트 용어를
처음 만들고
동아일보에 기획기사를 연재하며
뉴라이트를 확산시킨 이동관
윤석열 정부에 등용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바로 지난 8월 25일 임명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월28일 이동관을 지명한 뒤 자녀 학교폭력 논란 등 여러 의혹과 각종 언론방송단체들의 반대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지명 29일 만에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동관은 대선 당시 윤석열 선대위의 미디어소통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당선 후에는 당선인 특별고문으로 활동했다. 이어 2022년 5월엔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으로 위촉되었고,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2004년 뉴라이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또 이를 소개하는 대규모 기획기사를 주도해 뉴라이트를 국내에 확산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신동아 2008년 9월호에서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는 ‘뉴라이트’란 명칭은 2004년 이동관 당시 동아일보 정치부장이 자유주의연대 신지호, 최홍재씨와 함께 술자리에서 만들었다면서 “우리는 원래 자유주의 운동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국민에게 쉽게 와 닿지 않는 것 같아 ‘뉴라이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전부 따라 하더라. 조선일보만 해도 처음엔 다른 용어를 쓰더니 한 달쯤 지나면서 따라왔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보수진영은 1997년과 2002년 연이어 대선에서 패배하고, 2004년 탄핵정국에 휩쓸려 열린우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위기론이 커졌다. 이때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있던 이동관이 뉴라이트 연재기사를 실으며 새로운 보수세력과 이념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동아일보는 2004년 11월 8일자 ‘뉴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기획을 통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옹호하는 ‘뉴 라이트’ 그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이들 뉴 라이트 그룹은 국가주의에 기울었던 기존 보수세력과 차별성을 보이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주요 정책이 충분한 국민적 의견 수렴 없이 급진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을 비판하며 최근 부문별로 세력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동관 2004년 칼럼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 라이트(New Right)’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이동관은 동아일보 2004년 11월 18일자에 “‘뉴 라이트’를 잡아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 라이트(New Right)’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며 “‘실용주의’와 ‘좌(左)편향’을 오락가락하는 포퓰리즘적 태도나 수구기득권의 이미지와 절연하지 못하는 소극적 방어논리로는 합리적 비판세력의 무한 잠재시장인 ‘뉴 라이트’를 잡을 수 없다. 여고 야고 먼저 자기 이념좌표부터 정확히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2005년 2월 23일까지 4부작 25회에 걸쳐 다양한 기획기사를 실었다. 뉴라이트 기획이 시작됐던 2004년 11월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이 주도한 자유주의연대가 창립됐다. 기획이 마무리된 뒤인 2005년 11월엔 뉴라이트 대중운동 단체인 뉴라이트전국연합이 만들어졌고, 2006년 4월엔 뉴라이트 이념과 사상을 연구하는 뉴라이트재단이 설립됐다. 보수적 성향의 학자나 정치인은 물론 과거 운동권 활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이 새롭게 생겨난 뉴라이트 단체에 결합했다.
사실, 보수세력이나 우파세력이 ‘신보수주의’, ‘신우익’, ‘대안우익’ 등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흐름은 아니다. 우리나라에 앞서 다른 나라들도 냉전 분위기가 수그러드는 등 시대 변화에 맞춰 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감세,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사회복지 축소, 시장 기능 강화 등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하는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 Neo-Conservatism)과 대처 총리의 영국 보수당 등이 있다. 반면에 세계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대안우익’(Alternative Right)과 유럽의 새로운 극우정당들과 일본의 신우익 등도 있다.
유럽·일본·미국 등 다른나라
신보수 또는 신우익과 확연히 다른
우리나라 뉴라이트의 친미·친일 노선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다른 나라의 새로운 우익 또는 보수주의 흐름과 비슷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일본민족주의를 주장하며 미국 의존 정책을 비판하는 일본의 ‘신우익’,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웠던 이탈리아 신극우정당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과 프랑스 신극우정당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민족주의와 자국우선주의를 내걸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친미·친일을 내세우는 등 이들 정당과는 차이가 있다.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도 차이가 분명하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지배를 경험한 프랑스와 비교해보면 차이를 알 수 있다. 1940년부터 1944년까지 프랑스 본토는 나치 독일의 괴뢰국인 ‘비시 정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영국, 콩고, 알제리 등을 옮겨다니며 존속됐던 프랑스 망명정부인 ‘자유프랑스’와 구별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 ‘비시 정부’다. 망명정부가 다시 프랑스를 되찾았고, 2차대전이 끝난 뒤 나치에 대한 협력 혐의로 35만여 명을 조사하였으며 12만 명 이상을 법정에 세웠다. 이 가운데 약 1천500여 명을 처형하고 3만 8천여 명을 수감했다. 해방 직후의 혼란기에 9천여 명은 약식 처형됐다. 35년간 일제 식민지배를 겪고도 단 한명의 친일파도 제대로 처단하지 못한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숙청과정을 거쳤지만, 프랑스 내부에서는 1950년대 초의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사면 이후 과거사 청산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때문에 프랑스의 ‘국민연합’도 비시정부를 옹호하는 발언을 꺼린다. 국민연합 지도자 마린 르펜은 2017년 “나는 프랑스가 벨디브 사건(비시정부 당시 벌어진 대규모 유대인 학살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책임이 있다면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이지 프랑스의 책임은 아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비시정부는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정부의 공식적인 책임은 없다는 식의 발언이었지만, 비난이 거셌고, 결국 사과해야만 했다. 때문에 ‘국민연합’은 공개적으로 과거 나치 협력을 옹호하는 발언을 조심하고 그런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민연합’은 ‘국민전선’으로 활동하던 2015년 유대인 학살 옹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창립자이자, 당 지도자 ‘마린 르펜’의 아버지인 ‘장-마리 르펜’을 출당시키기까지 했다.
반면 우리나라 뉴라이트는 일제시기를 거치며 우리나라가 근대화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 등을 주장하며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한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부정하면서도 일본의 민족주의는 용인하는 모순된 모습도 보인다. 경제에 있어서도 자국우선주의나 보호주의를 내세우기보다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추종한다.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청산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라는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념적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명박과 손잡으며
2008년 정권 잡은 뉴라이트
하지만, 8년만인 2012년 괴멸
이동관이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뉴라이트 운동에 불을 지폈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을 비롯한 뉴라이트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이명박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를 이기고 대선후보가 되었다. 결국 이명박은 48.7%인 1천149만2천389표를 득표하며 10년만에 보수세력은 정권을 되찾았다. 이후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가 요직을 차지했고, 공천을 받아 국회에 진출했다. 2008년 건국절 법제화,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출간 등 “개화기와 식민지 시기에 걸쳐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근대 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해 온 근대화 세력과 해방 이후 미국을 따라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국제세력의 결합으로 대한민국이 성립하였다”는 그들의 역사관을 이식하기 시작했다. 이동관을 중심으로 KBS, MBC, YTN 등 방송 장악에도 나섰다. 4대강 사업, 의료를 비롯한 공공부문 민영화, 광우병 쇠고기 수입 등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수입반대 촛불시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2010년 이명박 정부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진 그해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정권 심판론과 함께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북풍몰이에 대한 역풍도 컸다. 이후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뉴라이트 인사들은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박근혜를 비롯한 기존 보수세력에게 밀려났고, 2004년 등장 이후 8년만에 괴멸이라고 부를 정도로 몰락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당시 뉴라이트 세력들은 잠시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정국을 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지진 못했고, 명맥만 유지하는 정도로 활동을 이어왔다.
절치부심하던 이동관과 뉴라이트
2019년 ‘평등의 역습’ 출간···
윤석열 정부 경제·노동·사회 정책의 기초
한동안 숨 죽이며 절치부심하던 뉴라이트 세력은 윤석열 정부의 등장과 함께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이동관이 동아일보 기획기사를 통해 뉴라이트를 띄우며 청사진을 그리고 이명박을 선택해 대통령으로 당선 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그는 지난 2019년 ‘평등의 역습- 좌파의 역주행, 뒤로 가는 대한민국’을 운동권 출신 뉴라이트들과 함께 출간했다. 이 책을 살펴보면 지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노동·사회 정책의 기초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윤 대통령의 어조도 이 책과 놀랄 정도로 닮았다.
이동관은 ‘평등의 역습’ 서문에서 책을 쓰게된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평등과 분배 중시의 좌파이념을 내세운 문재인정권이 정작 기득권 상층노동자의 이익은 지켜 주고 하층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자기부정과 정책 역주행을 계속한 결과 불평등의 확산이라는 역설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문제의식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연말 즈음이었다. 2004년 보수담론 확산의 기폭제가 됐던 뉴라이트운동의 주역들인 이재교 세종대 교수,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 최홍재 신문명연대 대표(전 고려대 총학생회장, 시대정신 편집인) 등은 다같이 문 정권의 평등 파괴 행보에 놀라고 있었다.”
‘평등의 역습’은 문재인 정부의 주축 세력이었던 386 정치인들을 “정작 자신들은 산업화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여전히 낡은 감수성에 빠져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비판했다. ‘2년간 30퍼센트’에 육박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부른 파국은 예정된 것이었고, ‘따뜻한 마음’만 앞세운 비현실적 최저임금 강행은 산업과 고용을 초토화하고 실업자를 양산하는 핵폭탄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귀족노조’가 비정규직과의 격차를 확대시켰고 미취업자들의 새로운 일자리 진입을 가로막는 ‘노조 우대 친노동정책’은 현실경제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했다. 그 이면에 ‘정권과 노조의 특권적 결탁’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약자를 울리는 파탄의 주범이라고 비난했다.
공공부문을 향해 7억 더 벌고 연금은 6배인 ‘신의 직장’이라며 81만 명 증원정책은 나라경제를 휘청거리게 하고 양극화를 심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규직 확대를 몰상식하게 밀어붙이는 고용정책은 ‘비정규직은 비정상이다’, ‘정규직은 동질집단이다’라는 두 가지 거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면서 기존 상층노동자의 기득권 양보 없는 무분별한 정규직화는 불평등의 골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반기업·반재벌 정책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렸고,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전은 안전하며, 사용후핵연료는 안전하게 처리되고 있으며, 원전 유지는 세계적 추세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을 선택해
격렬한 사상전과 이념투쟁으로
‘뉴라이트 시즌2’에 돌입한 뉴라이트
이동관은 ‘평등의 역습’에서 “이 책이 정권의 시대역행의 폭주를 널리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국가사회적 담론의 출발점이 되기를 소박한 마음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책 말미에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날개를 달아 줄 것인가, 희망을 향한 유턴인가? 일시 왼쪽으로 옮아간 진동추를 오른쪽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정통 보수의 가치를 견지하는 것과 함께, 더 젊고 미래지향적인 어젠다를 선점하려는 절치부심의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준비 안 된 세력에 미래는 없다’고 저자들은 거침없는 쓴소리를 날린다. 고까우면 또 지는 거다. 역사 속에서 떠나간 진동추가 자기네로 옮아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만 갖고 시대변화의 흐름을 놓치고 미래 준비에 소홀했던 정치집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소멸됐다. 어느 때보다 절치부심의 각오와 치밀한 준비가 필요한 때다. 다가오는 제21대 총선은 희망의 2022년을 위한 예비고사가 될 것이다.”
보수정당인 미래한국당은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윤 대통령은 2019년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조국 법무부장관 수사 등 곳곳에서 문재인 정권과 부딪히며 보수의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총선이 끝난 뒤 2021년 3월 검찰총장에서 물러나, 3개월여 만에 출마선언을 한 뒤에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당내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대선후보가 됐다. 절치부심하던 뉴라이트 세력은 이 과정에서 과거 이명박을 통해 자신들의 정책적 이상을 현실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엔 윤 대통령을 선택했다. 이후 윤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격렬한 사상전과 이념투쟁으로 ‘뉴라이트 시즌2’에 돌입했다.
이동관을 중심으로 KBS, MBC, YTN 등 방송을 장악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이번에도 이동관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방송장악을 위한 첨병으로 나섰다. 방통위원장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 8월 1일 이동관은 방송·언론 장악 시도를 비판하는 기자들을 향해 “공산당의 신문이나 방송을 언론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서 “자유 민주 헌정 질서 속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언론은 반드시 책임 있는 보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연일 공산주의 운운하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더욱 독해진 ‘뉴라이트 시즌2’
보다 원리주의적이고,
근본적인 뉴라이트 전사 윤석열
윤 대통령의 사상전으로 본격화된 ‘뉴라이트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더욱 독해진 모습이다. 시즌1 주연이던 이명박도 윤 대통령과 비슷한 길을 걸었지만, 그래도 물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타진하거나 일본과 역사문제로 충돌이 빚어지자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도를 방문하는 등, 뉴라이트 정신에 어긋하는 행보도 실용적 필요성이 있다면 추진하는 일부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올드라이트가 세력의 상징이던 박근혜도 과거 북을 방문해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을 만났고, 대통령이 된 뒤 통일대박론을 외치거나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천안문 성루에 올라 군의 사열을 받는 등 실용적 행보에 나섰다. 이런 행보와 비교해보면 연일 이념투쟁을 외치고, 교과서에까지 독립운동가로 수록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하고, 그의 이름을 딴 잠수함 명칭까지 변경하려는 시도 등 윤 대통령은 뉴라이트 입장에선 보다 원리주의적이고, 근본적인 전사다.
그리고, 그런 원리·근본주의적 뉴라이트 철학을 담은 발언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도 “지금 우리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캠프데이비드에서 도출된 한·미·일 협력체계가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의 강경 이념 발언으로 점점 본격화하는 뉴라이트 시즌2는 어떤 결말을 맞을까? 내년 4월 총선이 마무리된 뒤에도 이런 발언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국민의 반대가 계속되는데도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같은 사상전이 계속될 수 있을까? 대중과 괴리되며 ‘폭망’했던 뉴라이트 시즌1의 결말이 자꾸 떠오른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