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인역사자료관, 간토대지진 100주년 심포지엄...'새로운 출발위한 100년으로'
- 일본 도쿄=이승현 기자
- 입력 2023.09.03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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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를 기억하는 일본내 동포들의 행사가 2일에도 이어졌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2일 오후 도쿄 소재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한국중앙회관 8층 강당에서 '무엇이 시민들을 학살로 몰고 갔는가?-간토대지진의 비극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는 주제로 간토대지진 100주년 심포지엄을 진행했다.
이성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의 개회사에 이어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시히신문 역사전문 기자가 '왜 사람들은 학살로 치달았나'를 주제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당시 언론보도 등을 심층적으로 추적한 주제 강연을 진행했다.
와타나베 전 기자에게 '왜 사람들은 학살로 치달았는가'라는 질문은 자신을 포함한 '일본인'들로서는 매우 불편하고 인정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 있으나 10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논쟁'이야말로 더더욱 괴로운 일이었을 것.
오랜 기간 취재와 탐구는 매우 치밀했지만 결론은 조심스러웠다. 특히 논쟁이 된 조선인 학살자 수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지난 2009년 일본 내각부 중앙방재회의가 발표한 '재해 교훈 검증에 관한 전문조사회' 보고서의 내용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기를 든 다수자가 비무장 소수자를 폭행한 끝에 살해에 이르는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살상의 대상이 된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살상사건으로 인한 희생자의 정확한 수는 없지만 지진재해로 인한 사망자의 1~수 퍼센트에 해당하며, 이는 인적손실의 원인으로 보기에 경시할 수 없다."(이상 위 전문조사회 보고서)
그에 따르면, 당시 유포된 유언비어의 핵심은 '무장한 조선인이 집단적으로 습격한다'는 것이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거나 집에 불을 질렀다는 것과 같은 개인적인 수준을 훨씬 넘은 것이었다.
1973년 소설가 요시무라 아키라는 『관동 대지진』에서 대지진의 혼란속에 사람들의 집단적인 정신이상이 벌어져서 '조선인들의 습격에 대비한 자경단을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짚었다.
(일본)민중의 자발적 의지만으로는 자경단의 횡포가 탄생할 수 없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조선인 살해에 깊이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차원높은 '선동', 그리고 '무기'가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재일 사학자 강덕상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는 당시 언론보도와 소학교 6년, 고등과 1년 학생들의 기억이 반영된 작문 자료 등을 근거로 '조선인 폭동설'이 강력하게 유포되었으며, 조선인 박해와 학살의 정황도 분명하다고 확인했다.
학생들의 작문을 검토한 뒤에는 "유언은 근거없는 허보였으나 지진 재해 반년 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학살이 유언비어를 믿고 자행된 민족적 박해였다는 자각이나 반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옳은 것이 전달되지 않은 가운데, 아이들이 들은 루머나 '무서운 조선인 인상'은 바로 잡히지 않고, 자각과 반성없이 다음 전쟁의 시대가 준비되어 간 것 같다"고 가슴 아픈 결론을 내렸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위기에서도 질서정연하게 행동했다는 자부심이 있는 일본인으로서는 "다른 선례도 없는 그런 일(조선인학살)을 일본인이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와타나베 기자가 찾은 단서는, 관점을 한반도와 대륙으로 넓혀 역사적 사실을 연결해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1910년 조선병합과 의병활동, 1919년 3.1운동과 시베리아 출병을 비롯한 여러 계기에 일본은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조선의 빨치산'(불령선인)과 일상적으로 격돌하며 적대감을 키워왔다.
전쟁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와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재향군인들은 '무장한 조선인들이 집단적으로 습격한다'는 '유언비어'를 실제로 믿고 맹목적으로 반응한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 잠정적인 그의 가설이다.
국가권력의 개입 문제는 '내각부 중앙방재회의' 보고서가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지만, 이 문제 역시 최근 일본 정부가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선인학살에 대한)유감의 뜻을 표명할 예정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어 공전하는 모습이다.
전날 한일우호를 기대하는 일본 시민단체와 재일동포들은 일본 정부에 '모든 공적기관의 당시 서류를 재조사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규명팀을 구성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정부요청서를 발표한 바 있다. 간토학살 100주기를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자는 한결같은 바람일 것이다.
앞서 와타나베 기자는 지난달 18일 『관동대지진 '학살부정'의 진상』(도서출판 삼인) 번역 출간을 계기로 방한해 국내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애플TV+ 드라마 '파칭코' 시즌 1,2 각본을 쓴 제작 총책임자인 한국계 미국인 수 휴씨가 '영상제작으로 본 간토대지진'을 주제로 자신의 드라마 제작 체험을 바탕으로 간토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에 대한 생동감있는 발표도 진행됐다.
수 휴씨는 드라마 '파친코' 제작과 관련해 원작에 없는 간토대지진을 삽입하게 된 계기와 세계적인 호평속에서도 일본에서만 '반일드라마'라는 예외적 반응이 있었던 것에 대한 감상을 묻는 질문에 온라인 영상으로 차분히 답변했다.
이어 이성시 관장의 사회로 이규수 전북대학교 학술연구교수, 토나베 히데야키(戸邉秀明) 도쿄경제대학 교수, 배영미 한국독립기념관연구위원이 종합토론을 펼쳤다.
이 관장은 "올해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학살의 비극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물음을 갖고 최신 연구성과와 현장을 검증한 시민들의 노력으로 확인된 여러 사실에 근거하여 의견을 나누면서 미래를 향한 신뢰가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심포지엄을 개최한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은 재일 코리안에 관한 자료 수집과 전시를 통해 재일의 역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재일 사학자인 고 강덕상 시가현립대학 명예교수를 초대관장으로 하여 설립됐다.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1923-2023 역사의 증언자들' 이라는 주제로 간토대지진 100년 특별기획전을 진행한다.
한편, 전날 간토 학살 100주기를 맞아 일본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집회를 개최한 '관동대지진 100년-조선인 학살 희생자의 추도와 책임추궁의 행동실행위원회'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심포지엄과 같은 시간 도쿄 시내 블라썸 중앙회관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책임과 과제'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백년 동안의 증언-한일 작가와 시민이 본 간토대진재와 조선인 학살), 정영환 메이지대학 교수(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과 '부정론' 문제), 이진희 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램지어 논문, 미국발 간토학살 부정론과 제노사이드에의 대응), 정영수 조선대학교 교수(재일 조선인운동에 의한 간또대진재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과 책임추궁), 마에다 아키라 도쿄조형대학 명예교수(국제법에서 바라본 간토대지진 제노사이드)가 발표하고 '조선인 학살사건의 해결과 식민주주의의 불식'을 주제로 종합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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