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뉴델리 G20 정상회의 참석 관련한 뉴스가 쏟아진다. 우크라이나에 23억 달러를 추가 지원하고, 녹색기후기금에도 3억 달러 추가 기부를 약속한 사실 등을 소개하며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우리나라 역할을 확대했다는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보도에서 제외됐다. 첫째, 미국의 입김이 G20에서 통하지 않았다. 정상 선언에 러시아 규탄을 넣으려 했던 미국의 기획은 실패로 끝났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23억 달러 지원을 발표하는 등 미국의 입장을 따라가기 바빴다.
‘러시아 규탄’ 빠진 G20 정상 선언, 미국 입김 안 통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규탄' 내용이 빠진 정상선언이 발표되었다. 지난해 11월 발리 선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대부분의 회원국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강력히 비난한다”라는 문장이 삽입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9월 10일 G20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의 포괄적이며 정의로우며 지속적인 평화를 지원하는 모든 관련 있고 건설적인 계획을 환영한다”라는 문장이 포함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에는 이례적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다른 견해와 평가가 있었다”라는 문장이 들어갔다. 그만큼 이 논란이 치열했음을 보여준다.
애초 미국은 "러시아 연방의 우크라이나 침공(Aggression by the Russian Federation against Ukraine)"이라는 표현을 주장했다. 그러나 많은 논란 끝에 이 표현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국의 정치 전문 일간지인 폴리티코(POLITICO)에 따르면 “개최국인 인도와 브라질, 남아프리카 대표단들이 작성한 새로운 언어”가 합의되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서방 외교의 패배”라고 진단했고,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G20은 자랑스러운 것이 전혀 없다”라고 반발했다.
6개월 전인 지난 3월 뉴델리에서도 비슷한 공방이 있었다. G20 외무장관들이 모인 당시 회담에서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정당성 없는 침공”을 주장하며, “필요한 만큼 긴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겠다면서 러시아를 압박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회담 개최국인 인도 외무장관은 “우리는 노력했지만, 국가 간 의견 차이가 너무 컸다”라며 “화해가 불가”하다고 말했다.
3월 외무장관회담에서도, 9월 정상회의에서도 미국의 입김은 통하지 않았다.
윤석열, 미국 입장 따라 우크라이나 23억 달러 이상 추가 지원
윤석열 대통령은 뉴델리 G20 정상회의에서 지난 7월 키이우 방문 사실을 언급하며 3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고, 20억 달러 이상(윤석열 대통령은 '이상'이라고 분명히 말했다)의 중장기 지원 패키지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정상선언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의로우며 지속적인 지원을 합의했다지만 뜬금없고 지나치게 큰 액수이다. 대통령실은 중장기 지원 패키지로 발표한 20억 달러이상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에서 집행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1987년 개발국 지원을 목적으로 출범한 대외경제협력기금은 지금까지 총 59개국에 12조 5천만 원이 투입됐다.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국가는 베트남,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이들은 각각 3조 642억, 2조 1,568억, 2조 666억, 1조 7,980억을 지원받았다.
20억 달러를 한화로 환산하면 2조 6,580억 원(2023.9.11 환율)이니, 윤석열 대통령의 계획대로 지원이 집행된다면 우크라이나는 단박에 베트남 다음가는 수혜국이 된다. 20억 달러 '이상'이라고 했으니, 지원 상황에 따라 베트남을 넘을 지도 모를 얼이다.
베트남은 1995년부터 우리나라 대외경제협력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이에 반해 대외경제협력기금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결정된 것은 올해 5월이다. 대외경제협력기금에서 20억 달러 이상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계획은 ‘파격 중에서도 파격’인 셈이다.
지난 8월 29일 윤석열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면서 긴축 기조의 2004년 예산안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정부 예산의 규모와 무관하게 대외경제협력기금은 적립된다. 정부의 재정과 예산 집행 상황이 대외경제협력기금 사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편한 마음은 숨길 수 없다.
"민생을 내팽개친" 예산안을 발표한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에게는 아낌없이 퍼주는 모양은 영 꼴사납다.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이 윤석열 정부의 독자 결정인지, 미국의 요청 혹은 압력에 의한 것인지 현재로서는 파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지원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따른 것임은 분명하다. “필요한 만큼 긴 시간 동안”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야 한다고 강변했던 미국의 그 입장 말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 말에 따르지 않는 새로운 시대에 오직 윤석열 대통령 홀로 미국의 똘마니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 그래서 묻는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국격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누구를 섬기는,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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