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KBS '추적 60분' 기아영‧정[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10년째 계류 중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노란봉투법’이란 이름은 2014년 법원이 쌍용차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한 시민이 '노란색 봉투'에 성금 4만 7천원을 담아 전달한 데서 유래됐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 파업에 대한 회사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3,160억. 30여 년 동안 기업이 노동자들에게 ‘파업’ 책임을 물은 액수다. 이 막대한 책임을 지게 된 이들 대부분은 하청노동자들이라고 한다. 기업들이 이런 막대한 액수로 손해배상소송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계의 일관된 숙원인 ‘노란봉투법’은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까?
지난 15일 KBS 1TV <추적 60분>은 ‘3,160억 원을 배상하라 - 인생을 압류당한 사람들’ 편(☞ 방송 다시보기)을 방송했다. 현대차 하청노동자였던 하민수(가명) 씨 이야기로 시작한 방송은 파업 후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해당 회차 연출한 기아영, 정용재 PD를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들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먼저 이번 방송 끝낸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용재 PD(이하 정): “후련하고 홀가분합니다. 시청률도 저희가 기대했던 것보다 잘 나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기아영 PD(이하 기): “방송 제작할 때부터 불안감이 있었어요. 노조나 파업에 대한 여론이 워낙 좋지 않으니까 사람들 이야기로 풀어보자고 논의했었는데, 실제 방송 나가고 현재까지도 댓글들을 보면 반대 의견이 많아요. 그걸 볼 때마다 씁쓸하고, 저희가 내용을 제대로 못 담아서 시청자들을 이해시키지 못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노란봉투법에 대한 취재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기: “노란봉투법이 지금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고, 주변에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있었어요. 저희 팀 차원에서도 이 아이템을 꼭 해야 되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죠. 사실 기업들이 노동조합 파업에 대해서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사실을 취재하면서 알게 됐어요.”
취재 후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정: “보통 파업하면 일상생활의 불편을 먼저 떠올리게 되잖아요. 당장 사람들은 자기 삶이 더 중요하고 또 바쁘기 때문에 왜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알아볼 시간도 없고 그럴 의지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파업하는 분들은 대부분이 약자이고 그 파업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자본가인데, 그 사람들은 돈도 많고 시간도 많고 여기저기 언론사에 미칠 영향력도 있죠.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도 노동자들이 ‘왜’ 파업하는지를 조명하기보다 파업이 국가와 기업에 미치는 손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늘 시민 불편을 부각하는 그런 뉴스를 접해와서 파업은 비문명적인 방식이고 막무가내 떼쓰기 아닌가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근데 이번 취재를 통해 실제 파업한 사람들 그리고 파업으로 가족도 잃고 돈도 잃고 인생도 망가진 사람들, 몇백억의 손배소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파업이 유일한 방편이었던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노동자들의 입장에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취재는 어느 부분부터 시작하셨나요?
기: “노란봉투법이 국민적 관심을 불러온 계기가 있었어요. 쌍용차 노동자분들이 47억 정도의 큰 손배소 판결 받았을 때, 어떤 시민이 이 사연을 안타깝게 여겨 노란봉투에 4만 7천 원을 담아 보내셨어요. 그분을 인터뷰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어떤 생각으로 성금을 보내셨는지 궁금해서 그분을 뵀었습니다.”
현대차 하청노동자였던 하민수(가명) 씨 이야기로 시작하셨는데 그렇게 구성한 이유는?
기: “현대차는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 중 하나죠. 방송에도 나왔지만 하민수 씨는 평생을 비정규직, 계약직으로 살아오신 분이거든요. 2010년 정규직으로 인정받을 기회가 생겨서 이때 근로자지위 소송을 제기하고, 회사와 교섭이 안 되니 파업을 시작하셨어요. 결과적으로 13년 만에 정규직 인정은 받았지만 지금 224억이라는 손해배상 소송 배상액을 혼자 떠안게 되셨잖아요.
사실 방송 제작하는 입장에서 ‘드라마적이다’란 판단이 제일 컸죠. 이분이 왜 혼자 남게 되셨지 궁금했어요. 피할 수 있었거든요. 2016년 사측과 합의를 통한 특별고용이 있었을 때 들어가지 않고 남은 이유가 사실 일반인 입장에선 이해하기 쉽지 않은 면이 있었어요.”
왜 안 들어가셨다고 하나요?
기: “이분은 불법파견이 인정되고 정규직으로서 근로자지위를 확인받는 게 시간문제일 뿐 무조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물론 13년이 걸릴 줄은 몰랐던 거죠. 사측과 합의를 통한 특별고용이 있었던 게 2016년인데, 이 제안 며칠 후 정규직 지위 인정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본인 입장에서는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고 판단하신 건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별고용 합의로 빠져나간 거죠.”
그럼, 현대차가 의도적으로 1심 나오기 직전에 합의를 한 걸까요?
기: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 제기했던 초반 같은 경우, 당사자가 거의 1만 명 가까이 됐다고 들었거든요. 이분들 모두가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게 되면, 파견 기간 2년을 제외한 임금을 정규직에 준하게 모두 소급 적용해서 받아야 돼요. 그렇게 되면 현대차에서 지급해야 할 금액이 어마어마하겠죠. 대신 2016년 특별고용 합의 때는 파견 2년 이상의 정규직 인정기간을 모두 적용한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축소해서 인정하고 들어갔어요. 노동자 입장에선 얼마가 걸릴지 모를 정규직 인정까지의 소송 기간을 줄이고, 현대차 입장에서는 그만큼 체불 임금을 덜 적용하는 선에서 타결이 된 거죠.”
충남 당진의 현대제철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심한가 봐요?
정: “여기뿐만 아니라 제가 만나본 다른 곳도 심각했습니다. 주차도 구역이 정해져 있고, 물론 그건 시정이 됐습니다만 라커룸 시설도 차이가 나고 안전모 색깔, 사원증 색깔 이런 것도 다른 경우가 있었어요.
현대제철 같은 경우는 분명히 다른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밤에 업무지시 전화가 오는 경우가 있고요. 비정규직이 일을 더 하려면 정규직이 일감을 줘야 해서 정규직 사원에게 잘 보이려고들 한다고 해요. 그렇게 일감을 받으면 회식자리 같은 데서 ‘내가 저번에 일감 하나 줬으니 고기는 네가 사야 되지 않겠니?’라고 하는 등 굉장히 모욕적인 일들을 많이 겪었다고 하더라고요.”
손배소송 금액 단위가 엄청나잖아요.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금액인데 회사는 이걸 받으려고 한 걸까요?
정: “회사들은 받으려고 했다고 주장하더라고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알 수 있는데, 한 개인이 몇백억을 어떻게 갚습니까? 갚을 수 없는 돈이잖아요. 그러면 분명히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죠. 특히 이윤을 추구가 목적인 기업들이 못 받을 걸 알면서도 이런 소송에 나서는 이유는 이걸 통해서 얻을 게 있기 때문이겠죠.
아주 상식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목적은 ‘우리 회사에 손해를 미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또 개인한테는 더 이상 이런 노조 활동을 못하도록 발목에 족쇄를 채워놓는, 굉장히 좋은 무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손배소 금액에 대해 노동자들은 뭐라고 하나요?
기: “비슷하게 얘기한 것 같아요. 이건 본보기다.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노조 와해 목적으로 족쇄를 채우려고 하는 거라고 얘기하시죠.”
한진중공업 노동자였던 김주익 씨 이야기도 나오던데?
기: “김주익 열사가 돌아가신 게 2003년이니 올해가 20주기거든요. 당시 노동자들의 쟁의 활동에 대해 기업이 손배가압류와 정리해고로 대응하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뭐가 변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송을 통해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 파업과 현재 상황을 보여드렸는데 비슷한 상황이 20년 전과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죠. 아니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도 볼 수 있는데, 20년 전의 고 김주익 열사 이야기가 소구력이 있지 않을까 싶어 담았습니다.”
일명 노란봉투법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 인터뷰 요청했지만 다 거절했던데 왜일까요?
기: “밝힌 입장 중 인용할 만한 건 임이자 의원 쪽에서 본회의 상정도 전에 이슈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다고 말한 부분인 것 같아요. 이슈화 자체에 대한 부담이겠죠.”
드라마 <송곳>의 대사 중에 서는 데가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는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정: “한국노총 사무처장일 때와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생각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대학교 1학년의 저와 지금 31살의 저는 생각이 다르죠. 저희 제작진이 그런 면에서 용납할 수 있지 않냐는 생각도 안 해본 게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관이 180도 바뀌는 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은 전후의 영상을 본 시청자들 누구나 갖게 될 겁니다. 변한 게 있다면 서 있는 위치뿐인데 거기에 따라서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냐는 거죠.
이 장관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그런 손배 폭탄 때리는 현상이 불합리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 여전히 동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노란봉투법이 그렇게 엉망이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그분은 다른 해법을 내놨어야 해요. ‘노란봉투법은 이러이러해서 법리적으로 민법의 체계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고 현장에서도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으니 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소위 개정안을 가져왔다면, 광장히 설득력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살아온 인생의 일관성도 유지됐을 겁니다. 근데 ‘그냥 반대’ 입장이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이정식 장관이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망신 주려는 의도가 아니고 두 장면을 보고 각성해서 제대로 된 개정안을 갖고 오라고 촉구하는 방송이었고요.”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기: “용재 PD가 국민 대부분이 노동자인데도 노조와 파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는 ‘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시대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했거든요. 근데 자본주의의 고도화가 ‘기업중심’의 논리 구조가 고도화된 시대라고 단순하게 정의 내렸을 때, 본인이 노동자임에도 그 인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게 되는 경향이 커져서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취재했지만 방송에 안 나온 것 중 전하실 내용이 있다면?
정: “하이트진로의 사례자가 있었는데 분량이 너무 넘쳐서 빠졌어요. 화물차 운전하시는 분인데 작년 파업 때 월급 30%를 올려달라고 요구했어요. 왜냐면 30% 깎였으니까요. 하지만 사측에서는 5%만 올려 준다고 해서 대립하던 상황이었어요. 그때 손배소를 당하고 본인의 아내가 집에서 소장을 받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마음의 상처도 얻었고 가족들 전체가 힘들어졌죠. 그래서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사측의 안을 받아들였던 건이 있었어요.
그리고 예전에 ‘창조컨설팅’이라고 노조를 전문적으로 파괴하는 노무법인이 있었어요. 거기서 일하던 노무사가 100명 정도 된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제는 기업 임원으로 스카웃 됐다거나 여전히 외부에서 컨설팅 활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노조 파괴하는 분들이 아직도 성황리에 활동하고 있다는 씁쓸한 제보였죠. 여러 층위의 제보가 들어왔고 취재도 했는데, 분량이 넘치고 또 시간의 제약도 있어서 그런 점들이 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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