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도 살자] 대안-독립매체들을 대놓고 응원하기
23.03.31 04:52최종 업데이트 23.03.31 04:52
대안언론, 독립매체들에 대한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료광고는 아닙니다. [기자말] |
▲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열린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에서 한 시민이 "기레기 OUT"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바야흐로 기레기의 시대다. '기레기'가 너무 많다. 정부나 기업이 쏟아내는 보도자료를 앵무새처럼 읊어대기 바쁜 무능력한 기레기, 유명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유일한 취재원인 양 물고 늘어지는 게으른 기레기, 자기가 사는 곳, 자기가 만나는 사람만이 세계의 전부인 줄로 착각하는 좁아터진 기레기. 그 밖에도 권력과 재물에 눈이 먼 욕심쟁이 기레기에 성적 비하와 외설적 표현이 없으면 기사를 쓰지 못하는 천박한 기레기도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21 한국 언론연감>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언론산업 종사자는 모두 6만 2000여 명, 그 중 기자는 3만 4000여 명이다. 2020년 대한민국의 경제활동인구는 모두 2766만 명이다. 한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446명 중 한 명은 언론사에서 일하고, 813명 중 한 명은 '기자' 명함을 갖고 있다. '기자'나 '언론인'을 자처하지만 통계엔 잡히지 않는 1인 미디어나 프리랜서 기자들을 감안하면 수는 더 늘어난다.
'언론매체'라 불리는 곳은 5000곳이 넘는다. 2019년엔 4300여 개였던 언론사가 한 해 만에 800곳이나 늘었다. 그야말로 우후죽순이다. 그러나 매체 수와 기자 수의 증가에 비해 언론산업의 매출 총액은 별반 늘지 않았다. 2019년 언론산업의 매출 총액은 9조 2197억 원 가량이다. 2020년엔 그보다 463억 원 늘어난 9조 2660억 원이다.
2019년 언론산업계 매출총액을 매체 수로 나누면 매체당 21억 33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셈이지만 2020년엔 매체당 17억 9700만 원의 매출을 올리는 데 그쳤다.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매체만큼 매출이 늘어나진 않았다. 자연히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난립'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수없이 많은 '기자'들이 기사를 쏟아낸다.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진다. 난립하는 기자와 기사들 속에서 주목받기는 더 어려워진다. 차마 기사라고 부르기 민망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온다.
주목을 받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충격', '단독', '카더라', '혹시', '합리적 의심' 같은 말들이 득세한다. 사실과 관계없는 기사를 쓰고, 주목받기 위해 진실은 가끔 외면하는 기사를 쓰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보다 사람들이 관심을 줄법한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기레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독자들은 기레기를 욕한다. 앞서 언급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 한 무리의 기레기들은 사실 욕먹어도 싸다. 높은 도덕성과 긍지, 품위를 바탕으로 독립성과 자주성을 지키며 공공복지 증진과 다양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겠다는 신문윤리강령의 다짐 따위 이미 잃어버린 이들은 숱하다. 불편부당하게 기사를 쓰라 했더니 '권력을 불편하게 하는 모든 이들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기레기들. 품위를 지키라 했더니 품위유지비를 요구하는 기레기들.
그런데 정말 기레기의 시대일까
그래서 이 기레기의 시대에 우리는 분노한 것일까. 오늘날 이 기레기의 시대는 기레기들이 못나고 욕심 많고 천박한 주제에 엘리트 의식만은 또 가득 차서 찾아온 것일까.
2009년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파업에 들어섰을 때,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 노동자를 잘라내는 것은 살인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더니, 헬기를 띄우고 최루액을 뿌리고 토끼몰이하듯 사람을 두들겨 패던 그곳에도 기자들은 있었다.
<미디어 충청>과 <민중의 소리> 기자들은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하나부터 열까지 끝까지 지켜봤고, 그 이야기를 공장 밖으로 전했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온 사회에 알렸다. 그들은 강정마을에서 구럼비 바위가 폭파되던 때에도,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이 노조파괴 전문 노무법인과 용역 깡패들에게 괴롭힘당할 때도 현장을 낱낱이 기록하고 전달했다.
▲ 대구경북 독립언론 '뉴스민' 구성원들. ⓒ 뉴스민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경북에서 노동과 생태와 평화, 인권 존중 같은 보편의 가치를 십수 년째 전하고 있는 <뉴스민>이라는 매체도 있다. "누구누구네 집 딸래미가 서울 물 먹더니 지난 선거에서 2번 찍었다"고 동네에 수군수군 소문이 나는 그런 동네에서 '진보언론'의 가치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매체다.
대공장의 하청업체들이 몰려있는 남동지역에서, 성주에 사드기지가 들어서던 모든 순간에, '서울촌놈'들은 도무지 관심도 주지 않는 이야기를, "그래도 박정희"를 외치는 어르신들에게 꾸준히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해내고 있는 매체다.
짤방과 스킵과 쇼츠와 릴스의 시대에 길고 진지한 텍스트의 힘을 여전히 믿고 있는 매체들도 있다. 여전히 행간에 진심을 담고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을 담는 매체들이 있다. 1991년 창간 이후 여전히 "생명의 문화를 위하여" 글을 쓰고 읽는 <녹색평론>. 가난한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 차별받는 성소수자, 장애인들의 시선을 포기하지 않고 삐딱하고 편파적이겠다는 <워커스> 같은 매체도 있다.
뿐일까.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이 이미 신분처럼 나뉜 불평등의 세계에서 여전히 지역 공동체의 복원과 마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지역언론들, 장애인과 도시빈곤의 문제를 기어이 포기하지 않는 <비마이너> 같은 매체들도 있다. 이루 열거할 수 없이 많은 매체들. 자본으로부터도, 권력으로부터도 자주와 독립을 선언한 매체들의 품위 있고 긍지 높은 기자들이 있다.
기레기를 키워낸 것은 누구일까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저런 매체들은 소수이고 힘도 없지만, 기레기들은 돈 많고 영향력도 큰 매체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면 기레기를 키워낸 것은 당신이다. 만약 위에서 소개한 매체들 중 단 한 곳의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다면 (조금 가혹하긴 하지만) 기레기를 키워낸 것은 당신이다.
매체의 힘이란 '읽는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많이 읽히는 매체일수록 힘이 생긴다. 그러니까 매체에 힘을 주는 것은 읽는 사람, 바로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가 <뉴스민>을 읽고, <워커스>의 기사를 공유하고, <비마이너>의 기사를 팔로우하면 딱 그만큼의 힘으로 기레기가 아닌 '품위 있는 기자들'에게 힘이 실린다.
그러니까 지금 거대한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기레기들이 다른 매체들보다 힘이 세다는 이유로 돈 받아먹으며 기레기짓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품위 있는 기자들'에게 힘을 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기레기는 우리가 키운 셈이다.
쌍용자동차의 투쟁과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등 현장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밀착 취재하던 <미디어 충청>은 2016년 폐간했다. 인터넷신문에 대해 5인 이상의 상근 인력을 규정한 신문법 시행령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5인 이상의 채용인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뉴스민>은 최근 재정난을 토로하며 독자들의 후원 증대를 부탁하고 나섰다. 많은 이들이 <뉴스민>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했지만 창간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재정적 체력도 기자들의 체력도 많이 소진됐다는 고백이었다. 재정난으로 30년 만의 휴간을 선언했다 최근 복간을 준비하고 있는 <녹색평론>도, 최근 100호를 펴낸 <워커스>도 재정적 어려움, 대중의 무관심으로 지쳐가고 있다.
요즘 기사들을 욕하기 전에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한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열독율은 8.9%다. 2011년 44.6%였던 열독율은 10년 만에 9분의 1로 떨어졌다. 정기구독률 역시 떨어졌다. 80%에 가까운 언론수용자 대부분은 유튜브와 포털사이트 같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뉴스 수용자들은 기사를 읽는데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사는 공짜라는 인식이 일반적인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정말 기사는 '공짜'일 수 있을까. '보도자료 받아 붙여 넣는' 기사가 아니라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고 심혈을 기울여 기사를 쓰는 기사가 어떻게 공짜일 수 있을까. 기자들이 흙 파먹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기사의 수용자인 독자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돈은 어디서 발생할까. 광고를 받아 기업이나 정부를 홍보해주거나, 광고라는 이름조차 붙이지도 않고 정부나 기업을 홍보해 주면서 돈을 버는 일이 발생한다.
언론사가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 권력이 없는 사람들, 일하고 월급받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김으로 움직이게 하려면 우리가 언론사를 지탱하고 있으면 될 일이다. 수십억 원 씩하는 광고료가 아니라, 한달에 만 원, 이만 원 하는 '구독료'로.
앞서 언급했던 매체들은 대체로 광고를 통한 수익의 의존도가 적고 (몇몇 매체들은 아예 광고를 싣지 않고) 대부분의 재정은 구독료와 후원회비로 운영된다. 언론사가 대기업이나 정부가 아니라 독자들에게만 신경을 쓸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노력이다.
글 첫머리에 밝혔지만 이 글에는 독립-대안 매체들의 광고가 담겨있다. 기레기짓을 하지 않는 좋은 매체에 대한 광고다. 이 광고의 수혜자이자 광고주는 우리다. 이 광고의 효과가 컸으면 좋겠다. 광고 없이 품위를 지켜가며 공정한 여론을 만들고 공공의 이익을 복원하는 좋은 언론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을 테니.
가능하다면 후원을 하시라. 여의치 않다면 즐겨찾기에 저 매체들의 페이지를 담아두시라. 요즘 기사들은 죄다 기레기의 똥글이라고 욕하기 전에 저 소중한 매체들을 어떻게 지키고 키워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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