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글날이었다. 방송에서 ‘세종대왕께서 한국어를 창제하시어…’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종대왕은 한국어 입말을 붙들어 글말로 적는 글자, 곧 한글을 만들었지 한국어 자체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것은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 기호가 아니다.
말과 글에 관한 비슷한 혼동을 몇 가지 더 짚어보자. 필자는 ‘한글’을 굳이 ‘한글자’의 줄임말로 여기라고 강조하는데, 글자를 그것으로 된 글(문장)과 구별 짓기 위해서이다. 글은 글자의 영역을 넘어선 지식과 생각의 덩어리이다. 그걸 읽고 쓰는 힘, 즉 문해력은 글자 해득 수준을 넘어서는 능력이다.
많은 학부모가 품는 의문이 있다. ‘우리 아이가 머리는 좋은 편인데, 어째 성적이 나쁠까?’ 이에 대한 답은 백 가지도 넘겠지만, 무작정 ‘답 찍어주는’ 선생을 찾아 헤맬 게 아니라 학생의 글 읽는 힘, 즉 독해력에 문제가 없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학생의 지능과 언어능력의 수준은 직결되지 않는다. 공부는 책으로 하며 그 책은 각종 글로 가득하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현실은 독해력에 대한 이해가 매우 빈약하다. 그 수준이 낮으면 글을 표면적 의미만 외우려 들게 마련이므로 노력한 만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나중에 쓸모가 없는 공부를 하기 쉽다.
글에 관심이 많은 이들한테 혹시나 하고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진다. “몸은 운동을 해서 건강하고 예민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어찌해야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요?” 온갖 대답이 쏟아지는데, 대개 정신 수양에 관한 게 많다. 간혹 독서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게 그 이유를 되묻게 된다. 하나 역시 내면을 살찌우기 때문이라는 투의 답변이 돌아오곤 한다. 글에 관심이 많다면서, 읽고 쓰는 능력을 품성의 도야하고만 연결 짓는 셈이다.
인간은 언어와 이미지로 생각하고 느낀다. 날마다 ‘읽고 쓰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을 보라. 우리는 사고와 의사소통을 주로 말과 형상으로 한다. 따라서 그것들의 운용능력을 길러야 정신과 마음을 성숙시키며 정보화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다. 언어능력은 인간의 내면적 능력을 기르는 수단에서 나아가 삶 자체를 이룬다. 요즘 문해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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