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 이은혜 이은심리상담센터 소장 (webmaster@idomin.com)
- 2023년 03월 2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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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울리는 단어들이 있다. 내겐 자장가란 말이 그렇고 사랑이란 단어가 그렇다.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언어가 하나 더 생겼다. '아짐찮다'. 이은문화살롱 북 콘서트에서 손홍규 작가가 이 말을 들려준 후로 나는 이 단어와 사랑에 빠졌다. 작가의 이야기를 전해 드린다.
-어느 여름날, 꼬부랑 할머니가 동동거리며 신작로를 달려오고 있었다. 마음씨 고운 기사는 승객들에게 좀 기다리자며 양해를 구했다. 할머니는 힘차게 팔을 저으며 달렸지만 거의 10분이 지나서야 간신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에어컨도 없던 시절, 할머니는 사과처럼 빨갛게 익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아이고 이런 땡빛에 이 늙은이를 기다리셨소? 참말로 아짐찮소"라며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작가는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이 속으론 못내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여행 내내 할머니의 '아짐찮다'는 말과 달려오던 할머니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짐찮다'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뜻의 사전에도 없는 전라도 사투리. 작가는 아짐찮소 할머니에게서 사람과 삶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고 했다. 세상 수많은 친절과 호의에도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불평과 불만으로 점철된 삶을 성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아짐찮다'는 자주 내 입안을 뱅뱅 맴돌곤 한다. 그 어감이 좋아 혼자 나직이 발음도 해 본다. 고맙고 미안해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면 파래무침을 먹을 때처럼 기분은 파랗게 상쾌해지고 마음은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진다. 실은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이었다고, 마구 고백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언어가 마음을 울릴 때면 나는 늘 엉터리 셈법으로 사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돌아보면 내 인생은 언제나 흑자였다. 베푼 것보다 받은 것이 많았고 늘 내가 사랑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런데도 내가 받은 모든 것은 당연하게 주어질 것이 주어진 것에 불과했다. 그렇게 나는 뻔뻔했고 고맙다는 표현에는 스크루지 영감처럼 인색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기다려준 사람들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짐찮소 할머니의 안쓰러운 언어가 그저 좋다. 할머니 이 한마디에는 사람을 무장 해제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은 할머니 늙은 육신과 안타까운 심정을 끌어안게 한다.
혹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언어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면 다음 생도 내 인생은 '꽝'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내가 저지른 말의 잔혹함에 참회하고 싶다. 살기가 힘들어서일까? 여기저기서 언어 폭력이 질주한다. 시끄럽고 어지럽다. 그러나 살아가는 일이 힘들수록 서로 고통을 보듬는 연대와 비폭력적 자세, 비폭력적 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연민은 인간 본성임을 기억하자.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연민의 마음, 공감과 위로를 전할 수 있는 연민의 눈길, 그 소중한 씨앗을 내 정원에 심어보자. 나도 마음이 황폐해질 때마다 찾아 읽는 시가 있다. 오늘 아침엔 모두에게 들려드린다. 공짜다.
사자에게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 살찐 너구리는 통통 무사했을지 몰라/ 엄마 저거 먹는 거야?/ 먹을 순 있지만 너구리 엄마가 얼마나 슬프겠니. 악어에게 엄마가 곁에 있었다면/어린 누는 무사히 강을 건넜을지 몰라./엄마, 저거 먹는 거야?/ 먹을 순 있지만 누 엄마가 얼마나 울겠니. -김륭 '엄마의 법칙'
/이은혜 이은심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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