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헌법 30조, 홀로 남은 범죄 피해자]
① 벌이부터 붕괴된 삶
경찰 ‘부실대응’ 속 층간소음 흉기난동 피해
치료 월 500만원 드는 데 지원은 단기로 끝
① 벌이부터 붕괴된 삶
경찰 ‘부실대응’ 속 층간소음 흉기난동 피해
치료 월 500만원 드는 데 지원은 단기로 끝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뇌손상 피해를 입은 김혜성(가명·65)씨의 아내가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 제공
자신이 범죄 피해를 당할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한국에선 1년 동안 100명당 2.8명꼴(2021년 기준)로 범죄 피해가 발생한다. 범죄는 누구에게든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범죄 책임은 가해자에게 물어야 하지만, 피해 회복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한겨레>는 강력범죄 피해자와 유족 1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이 사회에 도와달라 외치는 목소리를 3회에 걸쳐 전한다.
아내는 이제 겨우 숟가락질을 한다. 김혜성(가명·65)씨가 밥 위에 김치를 올려주면, 천천히 움직여 밥을 먹는다. 젓가락질은 아직 할 수 없다. 아내는 왼쪽 뇌 기능이 회복되지 않아 오른쪽 몸이 마비됐다. 말도 하지 못한다. 20대인 딸은 은둔형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딸의 오른쪽 뺨에는 7㎝ 길이의 꿰맨 흉터가 있다. 평생 레이저 시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딸은 그런 얼굴로 밖에 나갈 수 없다며 방에 틀어박혀 매일 페트병으로 술을 마신다.
“가해자보다, 그 경찰보다 생계가 더 고통”
4층 남자는 아래층에서 가족의 웃음소리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올라와 시끄럽다며 뻑하면 문을 두드렸다. 바닥을 망치로 내리치며 보복 소음도 냈다. “강아지까지 온 가족이 발뒤꿈치를 들고 다닐 만큼” 조심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을 네번이나 불렀다.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 4층 남자가 흉기를 들고 내려와 아내와 딸을 찌른 그날은, 이사 하루 전이었다.목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아내는 2분20초간 심장이 멎었고, 산소 공급이 멈추면서 뇌가 손상됐다. 두개골 일부를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아내는 “1살 지능”이 됐다. 치료와 재활, 간병에만 한달에 400만~500만원이 든다. 김씨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를 종일 수발한다. 간병인도 써봤지만, 아내를 구박하는 바람에 소변 의사도 피력하지 못했던 아내가 방광이 헐어 또 수술을 받았다. 단기 근로를 찾으려 해도 여의치 않아 벌이가 사실상 끊겼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민센터부터 구청까지 안 다녀본 데가 없다.법적 절차도 복잡했다. 아내 명의로 나가는 통신비 등을 정리하고 통장을 쓰기 위해 법원에서 후견인 자격을 얻는 데만 4개월 걸렸다. 가족관계증명서만 몇번 발급했는지 모른다. “경찰도, 그놈도 밉죠. 하지만 우선은,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얘기가 하고 싶어요.”헌법 제30조 타인의 범죄행위로 인하여 생명·신체에 대한 피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로부터 구조를 받을 수 있다.
‘인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뇌손상 피해를 입은 김혜성(가명·65)씨의 아내가 평소 복용해야 하는 약들. 김씨 제공
“1차 출동, 복도에 피 흥건해도 돌아간 경찰”
김씨는 경찰의 부실 대응 등의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18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의 부실 대응은 시시티브이(CCTV) 조회수가 순식간에 300만이 되었던, 사건 당시 출동 경찰 2명의 현장 무단이탈 문제만이 아니다. 사건 발생 4~5시간 전 홀로 집에 있던 딸의 신고로 다른 경찰 2명의 1차 출동이 있었는데, 그때 흉기로 김씨 집 문을 강제로 열려던 4층 남자가 손을 다치며 흘린 피가 복도에 흥건하게 쏟아져 있었다. 딸이 그걸 지적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김씨는 주장했다. 김씨가 “경찰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고 말하는 까닭이다.소송 결과는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다. 2012년 8월 ‘중곡동 살인 사건’ 범인 서진환에게 살해된 30대 여성의 유가족이 낸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은 11년 만인 올해 2월에야 원고 일부승소 결정이 났다. 피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만큼이나, 법적 절차 역시 범죄 피해자들에겐 늘 먼 곳에 있다.지난해 말, 김씨는 오랜만에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사건 당시 살던 집 근처로 산책을 갔다. 평소 움직임이 없던 아내가 옛날 그 집을 알아봤는지 김씨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를 냈다고 한다. 김씨는 아내를 안고 펑펑 울었다. 앞으로 몇번의 눈물을 더 흘려야 할지, 김씨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인천/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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