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예리 기자
- 입력 2023.03.1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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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주 69시간 근무제’ 도입 법안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장시간 노동 확대에 대한 거센 반대 여론에 떠밀려 8일 만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재검토를 지시하며 “MZ세대 의견을 청취하라”고 강조했다. 15일 다수 아침신문은 정부가 ‘최장 69시간 근로 방안’ 부분을 고치지 않으면 여론 악화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윤 대통령은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근로기준법 일부개정안을 두고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의견을 면밀히 청취하여 법안 내용과 대국민 소통에 관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이날 전했다.
정부는 지난 6일 현재 주 최대 52시간으로 한정한 노동시간을 노사 합의에 따라 연 단위로 푸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4주 평균 근무시간은 64시간으로 유지하라는 것인데, 주 7일로 일요일 근무를 합하면 주 80.5시간제가 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조와 청년이 주축인 8개 노조 연합체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가 정부 개편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청년세대 내세웠지만…청년 포함 노동계 전체 반발, 구상 흔들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세종청사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원점 재검토는 전혀 아니다”라고 하며 “노동개혁이 MZ세대에게 도움이 된다는 당초 프레임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신문들은 윤 대통령의 ‘보완’ 지시가 노동자들의 예외없는 비판 여론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겨레는 “‘우군’이라고 여긴 청년 노동자까지 비판에 가세하며 여론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라며 “정부는 ‘집중해 일하고 몰아서 쉰다’고 개편방안을 홍보했으나, 노동계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비현실적 방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1면 보도에 이어 3면을 관련 기사로 채웠다. “노동조건 개악안이라는 부정적 여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한 게 영향을 미쳤다”며 “‘MZ세대’를 콕 집어 언급한 데는 그간 ‘노동개혁’의 명분으로 미래세대를 내세우고 청년세대 지원을 개혁 동력으로 삼으려 한 구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노동부는) 극단적 가정에 기초한 장시간 노동 시나리오 때문에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보고 있어 보완책은 미세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며 “최종 정부안이 미세조정 수준에 그칠 경우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노동계를 중심으로 ‘과로사 조장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MZ세대 노조도 개편은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내놓자 윤 대통령이 이 같은 여론을 받아들여 재검토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며 “주 최대 69시간 근로 방안이 백지화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주 7일 근무를 가정하면 1주일 최대 80.5시간을 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며 “주 최장 69시간 근로 부분을 조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했다.
노동계와 야당은 주 69시간제 즉각 폐기를 요구했다. 한상진 민주노총 대변인은 “결국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은 다수의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나쁜 제도임이 확인된 것”이라며 “노동시간의 총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진정한 노동개혁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지시는) 장시간 압축노동과 과로사를 조장하는 주 69시간제를 폐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포장지를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라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분석 기사에서 “과로와 장시간 노동을 부를 수 있는 일터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개편방안을 설계해 보통 직장인들의 분노에 부딪혔다”며 “보완 지시를 계기로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문가 중심의 노동개혁 추진을 돌아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개편방안은 대선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바짝 일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대통령 뜻에서 출발해 전문가 위원회를 거쳐 확정됐는데, 당사자 노동자 의견을 소외하면서 직장인들이 이미 있는 연차 휴가도 쓸 수 없는 현실이나, 제도가 구현될 복잡한 노동 조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겨레는 또 “휴가 사용의 어려움, 몰아치기 노동, 예측 불가능한 근무 스케줄에 내몰린 노동자들이 개편방안으로 ‘선택권’을 강화한다는 정부 주장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정부가) ‘연장근로시간 유연화’라는 기조는 유지할 것으로 보여 장시간 근로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한계가 있다”며 “(법안에는) 노조가 없고,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선 사측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어 사용자 재량권만 늘려주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1면에서 재검토 지시 배경으로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확대하고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편을 추진했지만, 그 취지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오히려 ‘주 52시간제’가 ‘주 69시간제’로 바뀌는 것으로 잘못 인식됐다”는 대통령실 입장을 전했다. 같은 면 ‘팔면봉’에선 “일할 때 바짝 일하고 쉴 때 푹 쉬자는 걸 ‘주 69시간’으로 설명하는 놀라운 재주”라며 장시간 노동에 대한 여론 반발을 조롱조로 풀이했다.
경향신문은 “호주 언론이 한국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제’를 추진하고 있다며 홈페이지 메인 기사를 통해 집중 조명했다”고 전했다. 호주 ABC방송은 한국사회에서 용어로 굳어진 ‘과로사’를 발음 그대로 로마자로 옮긴 ‘kwarosa’로 표기하며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ABC에 따르면 호주의 주 최대 근무시간은 38시간이다. 고용주는 노동자에게 ‘합리적인 초과 근무’를 요구할 수 있지만, 노동자들이 초과 근무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부 신문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주 평균 근무시간이 80시간을 넘는 과로 문제를 지적했다. 세계일보는 “전공의 2명 중 1명은 최근 1년 내 법이 제한하는 주 평균 근무 시간을 초과해 일한 적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현행 전공의법은 4주 평균 주 80시간 넘게 일할 수 없도록 규정하지만 주요 9개 과 전공의들의 주 평균 근무시간은 80시간을 넘겼다. 필수의료 과목인 흉부외과 전공의 근무시간은 주당 100시간을 넘겼다.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가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표한 대한전공의협의회의 ‘2022 전공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한국일보 ‘조선소 2등 시민, 이주노동자’ 기획 1면
한국일보는 1면 ‘일손 없어 불러놓고… 횡포에 멍든 코리안드림’ 기획기사로 차별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한국 조선소의 이주노동자 노동환경을 전했다. 베트남에서 온 후이 씨는 용접기술을 배우고 2021년 특정활동 비자(E-7)를 받아 한국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주말근무를 포함해 주 300시간 이상 노동에 시달리지만 E-7 노동자 최소 수준인 270만원을 받고, 허리를 다치고도 산재 처리는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조선업 현장에선 일손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며 “정부는 조선업 인력 부족 해결을 위해 E-7 용접공과 도장공의 연간 입국 인원 제한을 폐지하고 비전문취업 비자(E-9) 쿼터 한도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등 외국인력 도입을 대책으로 내놨다”고 했다. 한국은 “이미 조선소 하청업체에 이주노동자는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며 “그러나 현장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어렵게 한국까지 온 이주노동자들을 조선소 밖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조선업 호황의 그늘, 차별 받는 이주노동자’ 주제로 기획 보도를 이어간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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