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정 기자
- 승인 2023.03.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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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이중구조’ 적나라한 학교 비정규직 노동
실질임금 삭감… 더 벌어지는 ‘차별’
급식 노동자 3명 중 1명은 ‘폐 이상’
폐암 산재와 저임금의 연관관계
학교 비정규직(학비) 노동자 8만여 명이 총파업에 나선다. 3월 31일 신학기 총파업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학비 노동자들이 속한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전국여성노조·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은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학비 연대회의)를 꾸려 교육부, 그리고 17개 시·도교육청과 집단교섭을 진행해 왔다.
▲정부와 교육감의 책임 있는 교섭 ▲주먹구구식 임금체계 대책 마련 ▲학교비정규직 차별 해소 ▲학교 급식실 폐암 대책 마련 등이 노동자들의 요구다.
학교 현장 ‘이중구조’가 초래한 총파업
집단교섭은 매년 구정을 넘긴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2년 여름에 시작된 이번 교섭은 유례없이 해를 넘겨 3월 말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가 원인을 제공했을까.
학비 노동자들의 총파업 배경을 살펴보다 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임금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격차를 해소해 이중구조를 해결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책이 현실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결과가 학비 노동자들의 파업이다.
이들의 파업을 앞두고, 급식실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폐암 사망과 높은 폐암 발생률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폐암 대책 요구는 임금 문제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가 됐다. 하나씩 살펴보자.
실질임금 삭감… 더 벌어지는 ‘차별’
치킨값이 3만 원이 넘었다. 소비자 물가가 6% 인상, 초고물가 시대다.
2021년 4.6%, 2022년 5.3%.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의 통상임금 인상률이다. 학비 연대회의는 기본급 5% 인상(2유형 기준) 요구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사용자인 교육감협의회는 2% 인상으로 답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5%)에도 한참을 못 미친다. 근속수당도 인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 학비 노동자 기본급은 두 개의 유형이 있다. ‘1유형’엔 교사 대체 직종(돌봄전담사, 사서, 전문상담사 등)이 속하고, ‘2유형’엔 급식실 노동자, 교무실무사, 과학실무사 등이 속한다. 영어회화 전문강사, 초등스포츠강사 등 강사 직군, 그리고 미화, 당직 등 특수운영 직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유형 외’로 분류된다.
고물가 시대, 사용자 측의 2% 인상안은 ‘실질임금 삭감’이나 다름없다.
학비 연대회의는 이번 임금 교섭에서 무엇보다 ‘임금체계 개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교육감이 사용자성을 인정한 게 한 10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그 이전에는 학교장이 학비 노동자들의 사용자였는데, 학교장에게 채용권이 있을 때는 같은 학교 안에서 동일 직종의 일을 하면서도 서로의 임금이 얼마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교장 마음대로 임금을 정했기 때문이에요. 현재는 각 시도교육감이 사용자이지만, 지금도 교육청마다 임금체계, 복지가 천차만별입니다.”
전국학교비정규직 노조 박미향 위원장의 말이다.
학교 비정규직엔 100여 종의 직종이 있다. 학비 노동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급식실 노동자부터, 학교 안에 1명 있는 마필 관리사, 버섯 재배사 등과 같이 나 홀로 직종도 있다. 다양한 직종들 간의 임금체계는 지역마다, 유형마다, 직종마다 다르다. ‘동일가치 노동’에 동일임금이 지급되는 것이 아니다.
‘주먹구구’식 임금체계는 정규직과의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기도 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정규직 노동자 대비 60~70%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근속이 오래될수록 정규직 대비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명절휴가비만 봐도, 정규직은 근속이 반영돼 190~400만 원 이상 지급받지만, 학교 비정규직은 근속 반영 없이 평생 140만 원 정액을 지급받는다. 차별은 확연하지만 사용자 측은 ‘연 20만 원 정액 인상’ 외에 다른 입장이 없다.
임금체계가 기본급, 상여금 등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다.
학비 연대회의는 이런 임금체계를 단일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로 바꾸기 위해 본격 협의를 요구했다. ‘임금체계 개편 노사협의체’를 구성해 임금체계 마련을 시작하자고 했지만, 사용자들이 내놓은 답변은 “임금체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방법은, 2022년 집단임금교섭 완료 후 3개월간 사측 논의, 이후 7월부터 노사 양측 2회 주관하여 협의한다” 뿐이다.
“노력한다”는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뜻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방법이라고 내놓은 것은 ‘2회 테이블에서 논의한 만큼 결론을 내거나 논의가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형식적인 절차만 제시하고 ‘이번 교섭만 지나고 보자’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학교 비정규직 차별을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 다름 아니다.
“몸에 암 덩어리가 크는지도 몰랐다”… 산재와 저임금
“급식종사자를 대상으로 폐CT를 찍었는데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저는 작년까지 튀김을 자주 맡아 했습니다. 약품 청소도 해야 하는데, 방독마스크 한번 써본 적도 없고, ‘위험하니까 써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전판(부침 프라이팬)이나 튀김솥, 오븐이 뜨겁게 달궈져 있는 상태에서 크리너로 닦으면서 수증기를 마셔가며 일했습니다. 구역질이 나고 어지럽기도 했지만 이렇게 치명적인 병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습니다.”
부산의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 확진을 받은 노동자의 얘기다.
급식실 노동자들은 요리 시에 발생하는 조리 연기와 가스에 노출돼 있다. 이를 ‘조리흄’이라 칭한다. 조리흄은 1급 발암물질로, 환기가 안 되면 폐암 발병률을 22.7배 높이는 특성이 있다.
최근 학교 급식노동자 폐CT 건강검진 결과 3명 중 1명 꼴로 폐 이상 소견이 나타났으며, 전체 검진 인원 중 폐암 의심 환자가 338명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지난 2학기엔 조리원 한 명이 그만뒀는데, 식수(급식노동자 1명이 책임지는 급식 인원)가 줄어들 거라는 이유로 대체 인력을 넣어주지 않아 720명의 식사를 5명이 만든 적도 있다”고도 했다.
2023년 신학기 학교 급식실은 ‘인원 미달’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맞았다. 최근 5년간의 조사에서 급식실 입사 1년 내 퇴사한 노동자는 25%에 달했다.
학비 연대회의는 폐암 산재와 저임금의 연관성을 거론했다. ‘폐암 및 빈번한 산재’가 ‘고강도 노동에 부합되지 않은 저임금과 차별정책’과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몸에 암 덩어리가 크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바쳐 일했지만, 돌아오는 건 저임금이고 차별이다. 이러니 급식실 퇴사율이 높고, 남은 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한다. 골병이 들고 목숨을 위협받는다.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악순환의 반복이다. 조선산업은 수주가 많아 호황인데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인해 일손이 부족한 상황과 같은 경우다.
2019년 1월 국회 김종훈 의원실(당시 민중당) 자료에 따르면, 집단급식을 하는 국립대병원, 과학기술원, 국책연구기관, 국립수련원 등 8개 기관과 군대의 1인당 평균 식수 인원은 57명이다. 이에 비해 유·초·중·고등학교 급식실 1인당 식수 인원 평균은 146명이다. 타 기관의 2~3배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이 발표한 ‘업무상 질병 역학조사’ 결과엔 “급식실 노동자의 직업성 암(폐암) 문제는 ‘식수 인원(배치기준)’과 연관돼 있다”고 밝혀져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리실무사 1인당 약 100명을 초과하는 급식인원을 담당하고 있었고, 총 조리일수 중 조리흄에 노출되는 메뉴를 조리한 일수는 81%나 됐다. 보고서에도 ‘1인이 과도한 튀김요리를 조리하며 조리흄에 장시간 노출됐고, 이로인해 폐암이 발병했다’고 적시하고 있다.
학비 연대회의는 ▲조리흄 다량 발생 메뉴 축소 ▲환기시설 개선 ▲급식실 인력 충원 ▲급식실 조리인력 법제화 ▲급식노동자 폐암 건강검진 의무화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적나라한 학교 현장… “정부가 책임져라”
이렇듯, 학교마다 천차만별인 임금, 그리고 최저임금밖에 안 되는 저임금은 급식실 폐암 문제를 가져오는 원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저임금 문제 해결이 없이 급식실 산재율도 낮출 수 없고, 이 악순환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17만 명 중 절반 이상이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다. 가장 많은 인원이다. 이들이 이번 파업의 선두에 설 예정이다.
노조는 ‘노사협의체’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현 교육감들의 임기 안에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로드맵을 만들자고 하는데, 교육청은 ‘예산이 없다’며 정부 눈치만 볼뿐 일말의 개선 여지가 없다. 그것도 모자라, 단체교섭 사용자 측 대표인 강은희 대구교육감은 몇 달째 교육청 앞에서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손가락 하트’를 보내며 비웃는 등 망동까지 한다.
학교 비정규직 예산을 통제하는 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상생 임금’을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 정규직 비정규직의 이중구조가 적나라한 현장에서, 상생은커녕 폐암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들의 신학기 사상 초유의 총파업은 시도교육청만이 아닌 윤석열 정부를 향하고 있다.